제100호 성승제⁄ 2009.01.13 15:37:40
기축년 새해가 밝았지만, 우리 경제는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시장은 MB 정부와 강만수 장관을 신뢰하지 못한 채 거꾸로 돌아가는 모습이고,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MB 탄핵·강만수 사퇴론까지 거론되며 가뜩이나 불안한 한국경제를 더욱 어둡게 만들고 있다. 뉴스도 마찬가지다. 샅샅이 뒤져봐도 희망을 주는 뉴스는 찾기 힘들다. 은행은 물론 중소기업·대기업도 어렵다는 이야기들뿐이다. 여기에, 수출·세계경제 전망도 온통 어렵다는 분석뿐이다. 더욱이, 지금은 어렵지만 어떻게 하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 섞인 기사조차 보이질 않는다. 이 어둡고 절망스러운 미래를 단절할 방법은 역시 희망을 부여하는 일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조언이다. 다음 아고라에서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을 예측하고 미 증시폭락, 미 정부 재정적자, 금융권 파멸, 구제금융, 경기침체 등의 중장기적인 시나리오를 적중시키면서 최고의 인기를 끌다가 최근 체포된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는 지난 1월 7일 기고에서 ‘마지막 기댈 곳은 결국 희망’이라고 강조했다. 현대경제연구원도 이달 4일 ‘2009년에도 희망은 있다-국내외 10대 희망요인’ 보고서를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국내의 희망 요인으로는, 튼튼한 제조업 기반과 수출시장의 다변화, 4대강 유역 개발과 관광산업 등 한국형 녹색뉴딜정책의 추진, 연구개발(R&D) 혁신 역량의 결집과 풍부한 한민족의 해외 역량을 꼽았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이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는 튼튼한 제조업 기반을 보유하고 있다며 최근 반도체·디스플레이·조선 등 세계 1등 상품군들의 등장과 휴대폰·자동차·철강 등의 뛰어난 경쟁력이 우리 경제의 새로운 활력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수출 지역의 다변화와 수출 상품의 고부가가치화가 진전되고 있다며, 이는 주요 수출 지역의 경기침체에 따르는 수출 감소효과를 경감시키고, 신시장 개척을 가능케 해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현재 추진되고 있는 4대강 유역 개발과 관광산업 개발 등의 한국형 녹색뉴딜정책이 국내 투자와 고용을 환기시키고 신기술 및 상품 개발 등을 통해 경제성장을 견인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국외 희망 요인으로는 세계 각국의 사상 최대의 경기부양책과 세계경제 공조, 경기 사이클 단기화, 녹색 투자 붐, 국제 원자재 가격 하락, 아프리카라는 새로운 시장의 등장을 꼽았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세계 각국이 세계 명목 GDP(54.7조 달러)의 12% 수준에 달하는 경기부양책을 발표하고 있다며, 이것이 예정대로 신속히 진행된다면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한 세계 및 국내 경제의 회복 시기가 단축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또, 세계경제 공조와 경기 사이클의 단기화(Great Moderation) 현상이 일어나고 있어 위기의 단기 진정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G20 금융위기 공조 합의와 강도 높은 부실금융기관 구제, 글로벌 금리 인하 등 전 세계적인 정책 공조가 힘을 발휘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글로벌 녹색 투자 붐도 언급됐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그린 뉴딜(Green New Deal) 정책과 일본의 ‘Cool Earth 50’ 등 환경과 경제 성장이 양립할 수 있는 이러한 분위기는 우리 경제가 진일보하기 위한 좋은 조건이 될 것이란 주장이다. ■ 정부당국, 환율ㆍ물가ㆍ유가ㆍ감세 정책 강행 정부부처 및 금융기관도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여념이 없다. 우선 대표적인 변수로는 유가와 환율·물가·경상수지·감세·재정 조기집행 등 5개 항목이 꼽힌다. 이들 변수는 무작정 낙관할 수는 없지만, 작년에 비해 나름대로 우리 경제에 힘을 주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기관들은 대부분 한국경제가 올해 하반기부터 회복세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하는 가운데, 국제 유가와 환율·물가가 안정세를 지속하고 경상수지의 흑자 기조도 굳어지면 회복 속도가 생각보다 빨라질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또한, 정부가 선제적 대응 차원에서 대규모 감세와 재정 조기집행을 올해 정책 기조로 삼고 있어 그 효과 또한 기대해볼 만하다는 게 재정 전문가들의 견해다. 가장 대표적인 분야가 유가다. 지난해만 해도 국제유가는 가파르게 널뛰기를 했다. 첫 거래일인 1월 2일 서부 텍사스 중질유(WTI) 선물이 99.62달러로 마감하며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더니 이후 거침없이 상승했다. 7월 11일 WTI 선물이 147.27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뒤에는 급락을 거듭했다. 12월 들어선 30달러대로 주저앉았다. 올해 유가는 이보다는 높지만 작년보다는 낮은 수준에서 안정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석유 수요가 줄어들 것이란 게 주요 근거다. 블룸버그는 올해 유가가 60달러 선이 될 것으로 전망했고, 미국 케임브리지 에너지연구소(CERA)는 중동산 두바이유 기준으로 66달러 선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은 WTI 연평균가격을 51.2달러로 점쳤다. 정부가 재정운용계획에서 추정한 두바이유 전망치도 60달러 안팎이다. 편차는 있지만, 지난해 평균 국제유가인 94.52달러(두바이유 기준)보다는 크게 낮다. 국제유가의 하향 안정화는 원유를 전량 수입하는 한국경제에는 긍정적인 요소다. 지난해 한동안 인플레이션을 이끌던 유가가 안정되면 물가 불안도 해소되고, 원유를 수입해 직접 쓰거나 가공 수출하는 산업구조상 국제수지가 개선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환율 안정 전망도 우리 경제에 청신호다. 작년 한때 1,500원까지 치솟았던 원·달러 환율이 올해는 1,200원대 안팎에서 안정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환율의 하향 안정은 수입물가를 끌어내려 국내 소비자물가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환율의 하향 안정은 달러 사재기를 없애 외화 유동성 불안을 완화하면서 경제 주체들의 금융불안 우려를 해소하고 외환보유액의 감소를 차단하는 효과도 있다. 경제 주체들이 물가에 대해 느끼는 부담은 올해가 작년에 비해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작년엔 유가와 곡물 가격 등 원자재 가격이 폭등한데다 원·달러 환율까지 치솟으면서 물가가 한때 전년도의 같은 달에 비해 6% 가까이 오를 만큼 가계를 위협했다. 특히, 작년 7월의 경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9%로, 1998년 11월(6.8%) 이후 9년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7월 기준 전년 동월 대비 물가상승률은 등유 65.8%, 경유 51.2%, 휘발유 24.8%, 금반지 58.3%, 비스킷 37.5%, 돼지고기 25.4% 등 가히 살인적인 수준이었다. 작년 연평균 물가는 전년 대비 4.7% 올랐다. 이에 비해 올해 주요 경제예측 기관들의 물가전망치는 3% 내외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정부가 3% 내외를 전망했고, 한국은행은 3%를 제시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월 중 수정치를 낼 예정이지만, 지난해 11월 내놓은 2009년 경제전망에서는 3.6%로 예측했다. 가장 최근에 전망치를 발표한 금융연구원은 3.1%를 제시했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국내 기관들에 비해서는 다소 높은 3.9%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3%라는 수치 자체가 낮지는 않지만, 지난해 우리가 겪었던 고물가에 비하면 상당 부분 부담이 완화됐다는 의미다. 예측기관들은 국제 유가 및 곡물 가격이 하향 안정화된 가운데 경기도 침체돼 있어 전반적으로 물가가 안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 경상수지 220억 달러 흑자 가능성도 경상수지도 빼놓을 수 없다. 외화 유동성의 향배를 좌우하는 경상수지는 작년의 적자와 달리 올해에는 대폭적인 수입 감소 덕에 대규모 흑자를 낼 것으로 대부분의 연구기관들이 예측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2009년 경제운용방향을 발표하면서, 경상수지가 지난해 60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으나 올해는 이에 비해 개선된 100억 달러 내외의 흑자가 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도 신년사에서 경상수지는 수입수요 감소의 영향으로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전망에서 경상수지가 220억 달러 흑자를 낼 것으로 봤다. LG경제연구원은 수출 증가율이 작년 13.7%에서 올해 -7.3%, 수입증가율은 22.3%에서 -10.9%로 각각 마이너스로 전환할 것으로 분석했다. 올해 경상수지는 수입이 급감하고 여행수지가 개선되면서 76억 달러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추정했다. 중소기업연구원은 경상수지가 지난해 52억 달러 정도 적자가 예상되지만, 올해에는 유가 하락, 내수 부진으로 수입이 줄고 원화 절상과 소득 감소로 서비스 수지가 개선됨에 따라 113억 달러 흑자 전환에 성공할 것으로 분석했다. 금융연구원은 수출증가율이 작년 14.7%에서 올해 -6.9%로, 수입증가율은 22.9%에서 -13.0%로 각각 급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수출보다 수입이 더 큰 폭으로 감소하고 해외여행 자제 등으로 경상수지는 195억 달러의 흑자를 보일 것으로 추정했다. 이 밖에, 세계시장이 동시에 침체되면서 정부가 내놓은 사상 최대 규모의 감세 카드가 가라앉는 내수를 살려낼 수 있을지도 관심이다. 올해 세입 전망은 5% 성장을 기초로 감세가 없었다면 192조6000억 원으로 봤지만, 감세에 따라 작년 10월 2일 당초 예산안을 낼 때 179조6000억 원, 11월 3일 수정예산안에서는 177조7000억 원, 확정예산에서는 175조4000억 원으로 줄었다. 조세부담률은 감세가 없었을 경우 23.3%, 감세 조치가 대부분 반영된 당초 예산안에서는 22.1%, 추가 감세가 이뤄진 확정예산에서는 21.8%까지 낮춰졌다. 2007년에 22.7%까지 치솟았다가 2006년 이후 3년 만에 21%대로 떨어지게 됐다. 특히, 소득세 인하로 월 급여 300만 원인 근로자 가장의 근로소득세는 월 2만2810원(42.4%) 줄어든다. 또, 저소득 근로자 63만 가구에 최대 120만 원을 지급하는 근로장려세제(EITC)를 시행하면서 감세가 소비 진작을 이끌지 주목된다. 양도소득세와 종합부동산세도 세율 인하는 물론 다양한 감면 조치를 도입해 부동산시장에 온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지, 또 6월까지 승용차에 대한 개별소비세를 깎아주면서 세계적으로 대표 위기업종으로 떠오른 자동차산업에 활로를 터줄지도 관심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