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금융위기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중소기업이 설을 앞두고 2중고에 빠졌다.시중은행들의 높은 금리로 투자자금이나 운영자금을 제때 제공받지 못해 경영의 어려움을 느끼고, 심지어 직원들 월급조차 제때 주지 못하는 현상이 초래됐기 때문이다. 신용등급이 높은 중소기업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대출을 받을 수 있어도 높은 금리를 감당할 엄두를 못 내는 중소기업이 주류였으며, 무엇보다 ‘키코’ 사태로 있는 자금마저 허공에 날리는 일도 나타났다. 특히, 최근 ‘먹튀’(먹고 도망가다의 준말) 논란이 일고 있는 쌍용자동차 협력업체는 더 죽을 맛이다. 쌍용자동차가 경영위기를 느끼고 있어 협력업체들이 제 때 돈을 받을 수 있겠느냐는 부정적인 시각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직접 나섰다. 정부는 우선 특단의 대처방안으로 금리인하 정책을 강행했다. 지난해 초 5.00%대의 금리를 1월 절반수준인 2.50%포인트로 낮췄으며, 특히 설을 맞아 수조 원의 자금을 풀기로 했다. 하지만,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얼마만큼이나 유동성 부족히 해결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금융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개입한다고 해도 은행에서 대출문을 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며 “일부 중소기업들은 혜택을 받을지 몰라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단기적으로 이번 자금이 중소기업들에게 단비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은 전문가들도 부인하지 않는다. #. 경기도 평택시에서 자동차 부품업체를 운영하는 김모 사장은 요즘 밤잠을 설치고 있다. 자재 구입비 결제일이 1월 말로 예정돼 있고 설을 맞아 직원에게 조금이나마 상여금을 주기 위해 20여억 원의 운전자금을 마련해야 되기 때문이다. 2006년에 정부와 시로부터 우수중소기업으로 선정됐지만 별 효력이 없다. 김 사장은 “전에는 은행 지점장이 직접 찾아와 저금리로 대출해준다고 부탁할 정도였는데, 지금은 지점장은커녕 직접 찾아가도 쉽지 않다”며 “막상 대출해주겠다는 곳은 천문학적인 고금리여서 도저히 감당할 여력이 없어 결정을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 경기도 평택시의 또 다른 자동차 부품회사. 10여 년 전부터 쌍용자동차의 협력업체로 매년 80억 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한 이 회사는 최근 30억 원의 자금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쌍용자동차에서 받은 1억5000만 원짜리 어음이라도 할인하기 위해 은행을 찾지만 번번이 거절당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지난해 쌍용차가 연초 에 5000대 가량으로 생산계획을 잡아놔 이에 맞춰 원자재를 대량으로 사 놓는 바람에 이달 말에 자재비를 결제해야 된다”며 “대출을 알아보고 있지만 시중은행에서 쌍용차 협력업체에 대출을 해줄 리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자금 수요가 몰리는 설을 앞두고 중소기업들이 자금마련을 위해 총력전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경기침체로 판매량 자체가 급감한데다 은행 대출조차 쉽지 않아 돈줄이 마른 중소기업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담보가 있어 은행대출을 받을 수 있는 업체들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최근 법정관리를 신청한 쌍용자동차 협력업체들의 경우 당장 직원들의 임금 지급조차 감당하기 힘든 실정이다. 설을 앞둔 중소기업들의 자금난은 중소기업중앙회가 531개 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알 수 있다. 조사 결과 중소기업 10개 중 7개(69.0%) 업체가 자금사정이 곤란하다고 응답해 최근 5년 동안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다. 이들은 자금난의 원인으로 매출감소(68.4%)를 가장 많이 꼽았으며, 이어 판매대금 회수지연(57.8%), 원자재가격 상승(48.5%), 금융권 대출곤란(38.4%) 등을 지적했다. 또 이번 설에 업체당 평균 2억1,600만 원 정도의 자금이 필요하며, 이 중 1억2500만 원을 확보해 자금확보율이 지난해(72.9%)보다 훨씬 낮은 57.8%에 머물렀다. 이같이 기업들의 자금 수요가 급증하자 중소기업청 등 관련기관들도 자금난 해소에 팔을 걷어붙였다. 홍석우 중소기업청장은 최근 서울 여의도 렉싱턴호텔에서 열린 금융지원위원회에서 윤용로 기업은행장과 이종휘 우리은행장 등 금융기관장들에게 설 자금 공급을 차질없이 진행해 달라고 특별히 당부했다.김용환 금감원 수석부원장 역시 7개 은행장 간담회를 갖고 “은행권의 중소기업대출이 작년 말 대비 2100억 원 줄었다”며 “중소기업 대출이 4조 원 이상 증가할 수 있도록 영업점을 독려해 달라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 중소기업 살아야 금융도 산다… 장기적 지원 나서야 이에 대해 은행들도 화답하는 분위기다. 우리·광주·경남은행 등 우리금융지주 산하 은행들은 모두 2조6000억 원의 설 특별자금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부동산 가격 하락에 따라 역전세난을 겪고 있는 가계와 직장인, 생계형 소액연체자 등이 주 대상이다. 유동성 위기에 처해 있는 건설 및 조선사도 자금지원 대상에 포함됐다. 기업은행은 줄도산 위기에 몰려 있는 쌍용자동차 협력업체를 챙길 계획이다. 중기 유동성 지원자금을 1조 원으로 늘리면서 쌍용차 협력업체에 대한 지원을 늘리기로 했다. 윤용로 기업은행장은 “법정관리를 신청한 쌍용차 문제로 매출이 줄어드는 협력업체들에 운영자금을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은행은 경기침체로 일시적인 유동성 부족에 시달리는 건설사와 중소 조선사, 자영업자 등을 지원하기 위해 모두 1조 원 규모의 설 긴급자금을 지원키로 했다. 은행권의 전체 설 자금지원은 국민은행 1조5000억 원 규모를 비롯해 5조4950억 원이다. 이는 지난해 실적보다 3배 많다. 지난해 지원 실적이 거의 없던 씨티은행과 외환은행도 올해 각각 1000억 원과 8000억 원을 푼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그 동안 정부와 여론의 몰매를 맞은 은행들의 ‘보여주기식’ 대출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중소기업이 한창 어려울 때는 꽁꽁 숨어 있다가 정부의 지원과 압력이 강화되면서 ‘찔끔’ 풀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중소기업청의 한 관계자는 “은행들이 여론의 몰매를 피하기 위해 시행하는 것이 아닌 중·장기적으로 중소기업을 지원해야 한다”며 “중소기업이 살아야 금융도 활성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