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개각’의 가장 큰 특징은 이명박 대통령의 ‘젊은 복심(腹心)’들, 이른바 ‘왕의 남자’들이 대거 중앙부처 차관으로 전격 발탁된 점이다. 이로써 집권 2년차를 맞이한 MB의 친정체제 구축이 공고해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향후 ‘차관(次官)정치’가 국정운영의 한 축으로 부상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과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제1차관은 각각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과 교육과학문화수석으로 청와대 1기 참모진에 합류했다가 낙마한 뒤 불과 7개월여 만에 화려하게 복귀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이들 차관에게 ‘힘’이 쏠리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커지고 있다. 청와대 1기 참모진 가운데 ‘왕비서관’으로 통했던 박 국무차장은, 이 대통령의 친형인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을 10년 가량 보좌한 후, 지난 대선 당시 싱크탱크 사무실인 ‘안국포럼’에 깊숙하게 참여하였으며, 이명박 정부 탄생의 일등공신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리고 박 국무차장은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새 정부 조각 작업에 깊숙이 참여했고, 청와대에서 기획조정비서관을 지내다가 인사전횡을 했다는 정두언 의원의 이른바 ‘권력 사유화’ 발언으로 청와대 참모진에서 물러났다. ■ ‘왕비서관’의 화려한 부활 그러나 ‘왕의 남자’로 불릴 만큼 이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는 박 국무차장은 사표를 낸 후에도 “멀리 가 있지 말라”는 대통령의 특별 당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 국무차장은 지난 20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가진 취임식에서 “청와대가 두뇌면 총리실은 심장”이라며 “총리실이 심장 역할을 해 대통령의 국정철학이 내각과 전국의 구석구석까지 미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서 박 국무차장은 “심장이 잘 뛰고 피가 세포 하나하나까지 미쳐야 인체가 제 기능을 발휘한다”고 말해, 앞으로 대통령의 철학과 뜻이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국무조정의 전면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박 국무차장의 이 같은 발언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등 진보정권에서 10년간 잔뼈가 굵은 현재의 고위 공무원들 때문에 이명박 정권의 정책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고 있다는 정권 핵심 실세들의 비판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사실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은 비록 차관급이지만 정부 각 중앙행정기관 지휘·감독, 주요 정책 조정, 사회 위험·갈등·현안과제 관리, 정책 분석 평가, 규제개혁 등 국무총리실의 주요 업무를 관할하는 핵심 요직으로 알려졌다. 또한, 국무차장은 관계부처 합동의 각종 회의를 주재하고, 정부 주요 정책을 조율하는 한편, 청와대·당과의 ‘통로’ 역할도 해야 하기 때문에, 박 국무차장의 임명이 이 대통령의 국정장악력을 높이기 위한 ‘차관정치’의 핵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일단 총리실은 박 국무차장의 입성을 반기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이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 국무차장을 맡은 만큼 총리실의 국정조정 기능에 좀 더 힘이 실리고, 청와대·한나라당과의 접촉면도 넓힐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총리실의 한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의 최측근이 국무차장으로 왔으니 총리실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며 “청와대·당과도 좀 더 유기적으로 협력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행정 경험이 없는 박 국무차장이 중앙행정기관을 지휘·감독하고 각 부처 간의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어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또한, 권력 사유화 비판으로 박 국무차장을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에서 물러나게 한 정두언 의원과 절친한 친구인 조원동 사무차장과의 관계설정 문제도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실세차관’들 ‘조직 2인자’ 뛰어넘는 역할 기대 이주호 교육부 차관은 인수위 시절 사회교육문화분과 간사를 맡아 ‘대입 3단계 자율화 방안’ 등을 주도하며 이명박 정부 교육 정책의 밑그림을 그린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물론, 이 교육 차관은 지난 인수위 시절 ‘영어 몰입교육’ 등 설익은 정책을 내놓아 많은 지탄과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교육을 통해 가난의 대물림을 끊겠다”는 이 대통령의 철학을 체득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따라서 이 교육 차관은 지지부진한 교육개혁 문제를 진두지휘하는 한편, 전교조 문제를 해결하는데도 적극 앞장설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교과서 파동’ 때 교육부가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불만이 청와대 안팎에 있는 만큼 ‘이주호 투입’으로 인한 노림수는 교육부에 대한 확실한 장악과 MB 교육철학 착근에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렇게 볼 때, 박 국무차장과 이 교육 차관은 기존 의 ‘조직 2인자’ 자리를 훨씬 뛰어넘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사실 그 동안 여권 내부에서는, 장관들 가운데 상당수가 업무에 대한 전문성은 갖추고 있지만 이 대통령의 통치철학을 꿰뚫고 이를 국정에 반영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만큼, 측근들을 차관으로 앉혀 장관을 보필하고 국정을 주도적으로 이끌게 할 필요가 있다는 측면에서 ‘실세차관’의 중앙부처 전진배치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해 왔다. 이는 ‘장관은 외부 전문가 또는 측근, 차관은 실무관료’로 구성되는 기존의 내각 구성의 틀을 깨는 구도로, 여기에는 과거의 스타일로는 새 정부의 개혁 작업을 제대로 뒷받침할 수 없다는 현실적 판단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차관정치’와 관련해서는 직속상관인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의 적절한 역할분담을 통해 언론사태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하여 소신 있는 목소리를 내면서 이 대통령의 의중을 잘 받들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이 이미 좋은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는 분석이 다. ‘1.19 개각’의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는 ‘비핵개방 3000 구상’ ‘MB 독트린’ 등 이 대통령의 외교안보 정책을 총괄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현인택 고려대 교수의 통일부 장관 발탁이다. 류우익 전 대통령실장과 함께 이 대통령의 두뇌집단인 ‘국제전략연구원(GSI)’에서 활약하며 능력을 인정받은 현인택 통일부 장관 내정자는 이명박 정부의 초대 외교통상부 장관, 외교안보수석 물망에 올랐으나, 캠프 멤버들 간의 권력투쟁 과정에서 낙마하고 교단에 복귀한 바 있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꼬일 대로 꼬인 현 시점에서 현인택 내정자의 전진배치는 ‘선(先) 비핵화 후(後) 대북지원’이라는 대북 기조 강화를 예고한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 ‘용산참사’ 관련 MB의 선택에 주목 기획재정부 1차관으로 임명된 허경욱 전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 국책과제비서관은 재정경제부 국제기구과장, 금융협력과장, 국제금융과장,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 국제금융국장 등을 역임해 청와대 입성 전부터 ‘국제금융통’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이 대통령의 국정철학 및 이른바 ‘MB노믹스’를 관할했던 경험을 부처에 전파할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리고 곽승준 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도 1월 20일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장에 내정되면서 ‘쇠고기 파동’ 여파로 청와대를 떠난 지 7개월 만에 이 대통령 곁으로 귀환했다. 이 대통령의 정책 산파인 국제전략연구소(GSI) 정책기획실장을 역임한 곽 전 수석은 한반도 대운하, 나들섬 프로젝트 등 핵심공약을 디자인한 인물로서 이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관심을 모았던 청와대 참모진의 교체는 비서관급 인사이동 및 대통령실 조직 일부 개편으로 갈음됐다. 박병원 경제수석을 제외한 수석비서관급은 모두 유임된 대신, 국정기획수석 산하에 지역발전비서관을 신설해 지역발전 정책, 4대강 살리기 정책, 수도권 정책 등 지역 관련 업무를 강화키로 했다. 또한, 경제수석 산하에는 비서관급 인사가 이끄는 ‘금융팀’을 신설해 금융 및 구조조정, 오는 4월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G20금융정상회의 관련 업무를 맡길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지난 설 연휴 직전에 단행된 일련의 인사에는 집권 2년차를 맞이한 이 대통령의 심중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여당에서 그렇게 갈망했던 정치인의 입각을 철저히 배제하고 최측근들을 재기용한 점은 ‘여의도 정치’와 거리를 두려는 이 대통령의 속내를 드러낸 것이라고 풀이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통 관료 출신들을 대거 기용한 점도 금융위기 돌파에 대한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며, 특히 측근들을 대거 각 부처의 차관으로 내려보내 관료사회를 장악하겠다는 복안도 ‘차관정치’ 부활을 예고하고 있어 성공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다만, 이번 인사의 최대 변수는 설 직전에 터졌던 용산 철거민 사망사건이 될 전망이다. 하필이면 개각 다음날 대형 악재가 터지면서 각각 국정원장과 경찰청장에 내정되었던 원세훈 행정안전부 장관과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이 지휘선상에 있었기 때문에 용퇴론이 대두됐다. 취약 계층인 철거민들이 사망했다는 점에서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면키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김석기 청장의 경우 내정 철회를 놓고 청와대 안팎에 강온기류가 교차하는 가운데 새 출발을 다짐한 이 대통령이 어떤 선택을 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