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정보기관들은 아직도 19세기의 틀에 묶여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물 안 개구리 신세이다. 21세기 정보기관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각종 법 개정을 추진해도 정치권의 이해득실에 따라 한 발짝도 못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 미국 CIA, 중국 국가안전부 등 세계 강국의 정보기관들은 이제 ‘음지’에서 벗어나 경제부문을 강화하는 등 글로벌 트렌드로 육성하고 있다. 그래서 ‘정보는 밥이고 돈이며 경제다’라고까지 한다. 특히, 세계 강국의 정보기관들은 자국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자원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들 정보기관들은 마치 경제연구소와 같이 연구자료를 쏟아내면서 자원외교 첨병에 나섰다. 미국의 경우, 2025년까지 세계 정세 전망을 하면서 이미 대비에 들어갔다. 미국은 이를 토대로 정보기관의 체제를 새로 재편하고 각자의 임무수행에 돌입한 상태이다. 러시아의 KGB 후신인 해외정보국(SVR)은 경제정보 등의 싸움에 뛰어들어 위상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중국의 국가안전부(MSS)는 미국의 첨단산업과 군수기술에 집중하면서 소수 요원에 의존하기보다 인해전술로 각종 경제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특히, 해마다 수천 명의 중국 외교관·학생·기업가들이 저인망식으로 각종 정보를 모으고 있으며, 미국 국방부와 영국·독일 정부의 전산망을 해킹하는 의혹까지 받기도 했다.
■ 세계 정보기관, 글로벌 트렌드화 제임스 본드로 유명한 영국의 해외정보국(MI6)은 9.11 이후 반테러전 활동을 강화하기 위해 대대적인 구인 캠페인에 돌입한데 이어, 사상 처음으로 신문과 온라인 컴퓨터 게임에 광고를 내 대원을 모집하기도 했다. 전 세계에서 최고의 정보기관인 이스라엘의 ‘모사드’는 작은 조직에 막강한 정보력을 가지고 있어 ‘살아 있는 전설’로 알려졌다. “기만에 의하여 전쟁을 수행한”(By way of deception, thou shalt do war).” 손자병법을 연상케 하는 이 구절은 이스라엘의 전설적인 국가 정보기관 모사드의 모토다. 이스라엘의 정보공동체는 해외정보를 담당하는 모사드, 국내보안을 담당하는 신베트, 군사정보를 담당하는 아만, 외무부 산하의 정치기획·조사센터, 내무부 산하의 경찰 등으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정보공동체를 조정하는 기관으로는 최고정보조정위원회(Va’adat Rashei Hasherutim)가 있다. 여기에는 각 정보기관의 책임자와 총리의 정보·군사·정치·대테러대책 고문이 참석한다. 의장은 모사드 부장이 맡고 있다. 모사드의 정식 명칭은 ‘ha Mossad le Modiin ule Tafkidim Meyuhadim’으로, 정보 및 특수임무 연구소로 번역할 수 있다. 모사드는 이스라엘의 정보·보안체계에서 해외정보를 담당하며, 주로 인간정보(Humint)와 비밀공작(Covert Action), 대테러활동(Counterterro rism) 등의 임무를 수행한다. 이 같이 각국의 정보기관들은 외교·군사적 영향력 확대와 해외시장·자원·첨단기술 확보 등 자국의 이익과 안보를 위해 국경을 초월한 정보전쟁을 전개 중이다. 이러한 안보환경 변화에 따라 법으로 명백히 금지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국가안보와 국익을 위해 정보활동 영역을 확장하는 추세이다. 우선 미국의 경우, 정보활동은 대통령과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외교·국방·경제정책을 개발하고 집행하는 것과 관련된 정책결정에 필요한 정보와 외부의 안보위협으로부터 미국의 국가이익을 보호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대통령 행정명령에 정해져 있다. 영국의 비밀정보부(MI6) 임무는 “영국 정부와 국방·외교정책에 관계되는 국가안보, 국가이익의 보호, 영국의 경제적 번영추구”조항이 비밀정보부법에 들어 있다. 프랑스의 경우, 해외안전총국(DGSE)의 직무는 ‘프랑스의 국익 및 안보 관련 정보를 수집·분석’토록 총리령에 규정되어 있다. 독일의 경우, BND·BFV 등 정보기관들은 자국 기술의 해외유출 방지,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에 대한 정보수집과 신원조사 업무 수행을 통해 반 자유민주질서 행위자 정보수집 활동을 전개토록 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정보기관들은 아직도 19세기의 틀에 묶여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물 안 개구리 신세이다. 21세기 정보기관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각종 법 개정을 추진해도 정치권의 이해득실에 따라 한 발짝도 못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은 60년대 정보환경에서 중앙정보부 시대에 제정된 법률의 기본골격을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어 신안보위협 요소에 대응하는데 한계가 있다.
■ 국정원법 어떻게 개정되나 현행 법은 국내 정보활동 범위를 ‘대공·대정부전복·방첩·대테러. 국제범죄조직’등 5개 분야만 적시하고 있어, 그 외의 활동은 위법시비 소지를 내포하고 있다. 반면, 글로벌 경제위기, 촛불시위 등 국가안보 및 국익과 관련된 대부분의 현안들은 국내외 구분이 무의미해 정보기관으로서의 역할에 한계를 드러냈다. 따라서 국정원법을 변화된 안보환경에 맞게 개정하여 국정원이 안보 및 국익의 중추기관으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법적 토대의 마련이 절실한 실정이다. 우선, 첨단 산업기술이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대한 국내 현실에서 산업 스파이 문제는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중요한 사안이다. 또한, 산업 스파이 사건은 수사기관이 사후 적발해 처벌하는 것보다 정보기관이 정보를 사전에 입수하여 기술유출을 차단하고 피해를 예방하는 활동이 중요하다. 국정원은 지난 2004년 이후 159건의 산업기술 유출정보를 입수해 25조 원의 국부유출을 방지하는 등 독자적인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국정원법 개정을 통해 과거의 안기부로 회귀할 우려를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 국정원법상의 정치관여·직권남용 처벌조항과 정보위·언론·시민단체의 감시기능 활성화로 안기부로 회귀할 우려는 없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일부에서는 국정원법 개정을 통해 국정원이 정보를 독점하여 소위 ‘공안기관의 빅 브라더’가 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국정원법 개정안의 내용을 보면, 국정원이 국가안보와 국가이익의 보호를 위해 실제 수행 중인 업무를 국정원법에 반영하여 정보기관 본연의 업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관련 조항을 정비하는 내용이다. 또, 개정안에는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는 내용은 전혀 없으며, 국가 안전보장 관련 정보와 산업기술 보안에 대한 정보수집 기능을 추가하는 등 국민에게 봉사하는 정보기관상으로 재정립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따라, 국정원이 개정된 국정원법을 통해 정보를 독접해 ‘공안기관의 빅 브라더’가 되려 한다는 우려는 개정안의 취지 및 내용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됐다고 정부에서는 보고 있다. 국회에 계류 중인 국정원법의 주요 내용은 국정원의 정보활동 범위를 현행 ‘국외 정보 및 국내 보안정보(대공·대정부전복·방첩·대테러·국제범죄조직)’에서 국가 안전보장 관련 정보, 테러, 국제범죄조직, 산업기술 보안정보로 규정하고 있다. 또, 논란이 되는 ‘국익·정책정보’등 새로운 개념의 도입을 배제하고 위기예상정보도 삭제했다. 이와 함께 정부조직법·국가안전보장회의법 등 현행 국정원 관련 개별 법률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개정했다. 또, 정보활동은 국가안보 등 공익적 목적에 한정하고 정치관여 또는 개인적 목적으로 행할 수 없도록 하며, 개인의 사생활이 최대한 보장되도록 하고, 이를 위반하는 직원은 직권면직토록 통제장치를 추가했다. ■ 국정원 직원법도 개정, 조직·인력 운영효율 강화 한나라당은 이와 함께 국가정보원 직원법도 21세기에 맞게 개정키로 했다. 현행 국정원 직원법은 정보기관의 특수성을 적절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조직·인력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가 곤란한 상태이다. 특히, 기존에 중장기적인 인력운영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계급정년을 단축, 전문인력 조기 손실 및 승진경쟁 과열 등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국정원 직원은 최첨단의 기술과 고도의 훈련을 거쳐 배출됨에 따라 일반 공무원의 몇 배의 국고가 들어가는 상황에서 계급정년 단축은 크나큰 국가 손실이다. 또, 직무특성에 관계없이 1~9급의 직급제를 일괄 적용하고 있어, 특정 분야에 장기근무하면서 전문성을 지속적으로 제고할 수 있는 여건이 미비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국정원 직원법에는 직권면직 조항이 있지만, 저성과자·무능력자는 직권면직 대상에 해당되지 않아 능력과 성과 위주의 인사운영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에 따라, 정보기관의 조직·업무 특성에 부합하는 인력운영체계를 확립하여 성과를 창출할 수 있도록 국정원 직원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국정원 직원법 개정을 추진키로 했다. 우선, 계급정년을 4급은 1년(11→12년), 5급은 3년(15→18년)으로 각각 연장할 방침이다. 또, 수집·분석·과학기술 등 전문성과 장기근무가 필요한 직위를 전문직으로 전환, 승진·계급정년과 무관하게 연령정년까지 근무하는 방안으로 개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지속적인 업무 저성과자는 합법적인 절차인 적격심사를 거쳐 퇴출시킬 수 있도록 직권면직 사유를 추가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근무평정 결과 2회 연속 최하위 등급 또는 10년 내 3회 최하위 등급을 받은 경우에 ‘적격심사’를 받도록 하고, 부적격 판정을 받은 자는 직권면직토록 한다는 것이다. 또, 한나라당은 특수임무 수행 등 국정원 업무 특성상 위계질서와 일정수준의 신체적 조건이 요구되므로, 신입직원 공개경쟁 채용시 연령제한 근거를 마련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그 동안 ‘국가공무원법’을 근거로 연령제한이 가능했으나, 지난해 3월 28일 ‘국가공무원법’상 연령제한 근거가 폐지됨에 따라 국정원 직원법에 연령제한 근거 마련이 필요한 상태이다. 한나라당은 신입직원 채용시 애국심·성실성·신뢰성·보안성 등 정보기관 요원이 되기 위한 자질검증을 강화하기 위해 신원조사를 실시하는 근거를 마련키로 했다. 또, 직원의 청렴성 제고를 위해 금품 및 향응수수, 공금의 횡령·유용, 비밀누설, 정치관여, 직권남용의 경우 징계시효를 3년으로 강화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