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년 전 저축은행업계는 분주했다. 체크카드 발행이 가능해졌다는 점이 저축은행 활성화의 시작이라는 기대감이 있었고, 이러한 시기에 맞춰 다양한 금융상품을 팔 수 있도록 정부가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또, 각 저축은행별로 지점을 확대한다는 보도자료도 심심치 않게 기자들의 메일함을 채우기도 했다. 이른바 몸집 불리기에 주력한 것이다. 이 외에도 영화·부동산·기업 등에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이 봇물을 이뤘으며, 나름대로 서민대출 지원에도 총력을 기울였다. 광고도 급증했다. 당시 ‘러시앤캐시’, ‘산와머니’, ‘리드코프’ 등 대부업계에서 ‘무이자~ 무이자~’를 강조할 때, 위기의식을 느꼈는지 신문·잡지는 물론 지상파·케이블 등에 앞다퉈 대부업보다 저이자로 빠르게 대출을 해주겠다는 CF 로고송을 내보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가 국내시장을 본격적으로 뒤덮은 시기쯤 와서 저축은행 CF 로고송은 예년보다 듣기 힘들어졌다. 서민들에게 1분, 2분 안에 대출을 해주겠다는 광고도 찾아보기 어려워졌고, 저축은행이 서민금융이라는 단어도 생소해졌을 정도다. 물론, 기자회견이나 보도자료도 구경하기 힘들어졌다. 굳이 찾아본다면 신상품 소개 정도뿐이다. PF 대출 리스크(위험)가 크다는 언론보도가 잇따르면서 이 역시 규제가 강화됐다. 작년에 저축은행중앙회가 체크카드 발급이 가능해지면서 향후 수익창출에 큰 기여를 할 것이라는 기자회견을 냈지만, 이마저 수요는 기대만큼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작년 11월 말 현재 전체 여신규모는 54조8000억 원으로 10월 말보다 5000억 원 늘어나는데 그쳤으며, 여신 순증 규모는 작년 8월 1조3000억 원에서 9월 6000억 원, 10월 7000억 원이나 감소했다. ■ 신용카드ㆍ할부금융사ㆍ대부업도 자금줄 ‘닫혀’ 신용카드사와 할부금융사 등 여신전문회사는 ‘돈가뭄’이 심각한 수준이다. 2003년 카드사태 이후 꾸준한 하락추세를 보이던 카드사의 연체율이 작년 4분기부터 상승세로 돌아섰고, 급증세를 타던 카드 결제금액도 올해 들어서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 의하면, 신한과 삼성·현대·비씨·롯데 등 5개 전업카드사의 작년 말 연체율이 3.43%로 작년 9월 말에 비해 0.15%포인트 상승했다. 분기 말 기준으로 전업카드사의 연체율이 높아진 것은 2003년 카드사태 이후 5년 만에 처음이다.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하면 연체율이 아직 낮은 수준이나, 경기가 급격히 침체되는 상황에서 상승 반전함에 따라 가계부실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03년 말 카드대란으로 인해 28.3%로 치솟았던 전업사 연체율은 카드사들이 부실채권을 매각하고 위험관리를 강화하면서 꾸준히 하락세를 보여 2006년 5.53%, 2007년 말 3.79%로 떨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어닥친 작년에도 3월 말 3.52%, 6월 말 3.43%, 9월 말 3.28%로 분기기준 하락세를 이어가다가, 경기침체가 본격화된 4분기에 상승 반전한 것이다. 은행계 카드사의 연체율은 작년 상반기부터 상승세로 돌아서 2007년 말 1.39%에서 작년 말 1.88%로 0.49%나 뛰어올랐다. 특히, 작년 1~9월 카드 결제액은 222조7780억 원으로 전년 대비 20.66% 급증했지만, 10~12월에는 78조1280억 원으로 11.29% 늘어나는데 그쳤다. 대출규모도 작년 4분기부터 줄어들고 있다. 삼성카드의 현금 서비스와 카드론, 일반대출 잔액은 작년 9월 말 4조6000억 원에서 작년 말 4조3000억 원으로 3000억 원 줄었다. 현금 서비스는 1조5000억 원으로 1000억 원 늘어난 반면, 카드론과 일반대출은 1조7000억 원, 1조1000억 원으로 각각 2000억 원이 줄었다. 신한카드의 대출잔액도 작년 3분기 말 6조3000억 원에서 4분기 말 6조1000억 원으로 2000억 원 줄었다. 현금 서비스 잔액은 3조7600억 원에서 3조8000억 원으로 늘어난 반면, 카드론 잔액이 2조5400억 원에서 2조3000억 원으로 줄어든 결과다. 카드사 전체적으로 한도 내에서 자동대출이 가능한 현금 서비스는 늘고 있지만, 소정의 심사를 거쳐야 하는 카드론은 줄어들고 있는 셈이다. 또, 올해 들어서는 카드결제금액 증가세가 더 둔화되고 경기하강폭도 커짐에 따라 연체율이 가파르게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여신금융협회의 관계자는 “여신전문 업계의 유동성이 악화될수록 서민 대상 신규대출과 할부신용 제공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카드사는 신용도가 낮은 고객들을 대상으로 신용한도와 현금 서비스 한도를 낮추고 있다”고 말했다. ■ 대부업 대출 절반으로, 불법사채 극성 제도권 대부업체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대부업체들의 주요 자금줄이던 저축은행이나 캐피탈 업체로부터의 자금조달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대부소비자금융협회에 따르면, 45개 중대형 대부업체들의 작년 12월 대출 취급실적은 846억 원으로, 작년 7월의 1886억 원에 비해 55.2% 급감했다. 분기별로 살펴보면, 이들 업체의 월 평균 대출실적은 3분기 1539억 원에서 4분기 886억 원으로 42.5% 감소했다. 월 평균 대출건수도 3분기 5만5857건에서 4분기 3만4948건으로 37.4%나 줄었다. 대부협회 관계자는 “대출 취급실적 대부분이 기존 고객에 대한 만기연장이며, 신규 대출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중대형 등록 대부업체들이 대출규모를 크게 줄이면서 생계형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의 불법사채 피해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저축은행은 물론 등록 대부업체에서도 대출을 받지 못한 고객들이 결국 불법 사채시장을 기웃거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금융감독원이 운영하는 사금융피해상담센터에서 접수한 불법사채 상담건수는 작년 475건으로 전년에 대비 19.1% 늘었다. 대부업체 관계자는 “저축은행 등에서 대부업체에 대한 대출이 확대되지 않는 한 이 같은 대부업계의 돈가뭄은 지속될 것”이라며 “이는 결국 서민들의 대출 고통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이 최근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성인 5명 가운데 1명은 사실상 제도권 금융기관을 이용하기 어려운 금융소외자로 분류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내용을 보면, 작년 12월 기준 전체 국민 중 816만 1000여 명이 개인 신용등급이 최하위권인 7~10등급에 속한 것으로 나타났다. 10등급 중 7~10등급으로 분류되면 사실상 시중은행의 일반 신용대출 등은 불가능하다. 이달 기준으로 전국 20세 이상 성인인구가 3761만 9000명인 것을 고려하면 성인 중 21.7%, 5명 중 1명은 대부업체 등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금융소외자는 지난 2007년 말 766만 여명이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등의 여파로 1년 사이에 약 50만 명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와 금융업계가 이번 설문조사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