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의 밤을 밝히는 <2009 ‘수상’ 산대희>가 9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서초동의 국립국악원 예악당 및 광장에서 펼쳐졌다. 산대희(山臺戱)는 서울 한복판 수십 미터에 이르는 거리에 걸쳐 광화문을 다 가릴 정도로 높은 삼신산(봉래(蓬萊)·방장(方丈)·영주(瀛州) 등 신선들이 산다는 산)을 설치하고 600여 명의 광대들이 온갖 재주를 보였다는 나라의 대축제이다. 신라 진흥왕으로부터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 중기에 가장 화려하게 꽃피우며 독자적으로 자리매김했다. 산 모양의 무대에서 벌이는 연희라는 뜻의 산대희는 삼신산을 만들고 그 위와 아래에서 광대와 기생들이 노래하고 춤추는 ‘가무백희’(歌舞百戱)이다. <고려사>에 따르면, 산대희는 정월 대보름날 연등회를 거행하면서 궁궐 마당에 산대를 세우고 산대악인들이 공연을 했던 국가 차원의 큰 행사였다. 국립국악원이 수차례에 걸친 자문과 오랜 연구 끝에 무대예술로 완성시키며 지난해 처음 선보인 이 공연은 전석매진의 기록을 세우며 많은 관심을 받았다. 지난해 공연에서 춘하추동(春夏秋冬: 변화하는 아름다운 산의 모습 속에 펼쳐지는 모습)을 봤다면, 물에 배를 띄워놓고 백희를 연행하는 수희(水戱)를 기반으로 구성된 올해 공연에서는 선상(船上)의 객석이 물 위에서 펼쳐지는 연희를 감상하는 듯한 환상적인 체험을 느꼈을 것이다. ■ <수상 산대희>는 어떤 행사? <수상 산대희>는 <고려사>에 기록된 “왕이 수희를 구경하려고 오십여 척의 배에다 색이 고운 돛을 달고 악기와 채붕과 고기잡이 도구를 싣게 했다…”와 <연산군일기>에 기록된 “경회루 연못가에 만세산(萬歲山)을 만들고, 산 위에 월궁(月宮)을 짓고 채색 비단으로 꽃을 만들어 온갖 꽃이 산중에 난만한 모습을 꾸몄다. (중략) 임금은 연못 위에 용의 형상을 꾸민 ‘황룡주’를 띄워 타고 다니며 만세산을 구경했다. 경회루 아래에는 붉은 비단 장막을 치고서 흥청과 운평 3,000여 명을 모아 연주하고 노래하게 했다…” 등의 여러 문헌과 자문을 토대로 국립국악원이 기획한 공연이다. 국립국악원 정악단·민속악단·무용단과 남사당놀이 보조회, 사자놀이연구회 등 총 100여 명의 출연진이 준비해 그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실내에서 이뤄지는 1부 <궁정 산대희>는 동물 흉내 내기 연희인 <어룡지희>(물고기가 용으로 변화하는 연희)를 시작으로 학춤과 연화대춤이 연결되는 <학연화대무>와 십장생 달연으로 밝고 화려하게 꾸며진 무대에 갖가지 동물들이 나와 연주와 춤을 펼치는 <만연지악>(동물 탈을 쓴 연희자가 악기를 연주하는 연희)으로 이어진다. 가야금 명창 <사철가>를 끝으로 2부 공연은 환하게 등을 밝힌 야외 광장에서 펼쳐진다. 풍물패의 흥겨운 가락과 화려하고 그윽한 전통 등(燈)의 점화로 열리는 2부는 풍물패의 주도 아래 야외를 무대로 삼은 <달맞이 산대놀이>로 구성된다. 지난해의 묵은 액을 풀고 새해의 만복을 비는 <비나리>에 이어, 다양하고 신기한 각종 기예로 관객의 눈을 사로잡으며, 악귀를 쫓고 복을 구한다는 의미의 사자탈을 쓰고 관객과 호흡하는 <사자와 호랑이 놀이>, 그리고 보름달처럼 둥근 춤 <강강술래>로 모든 출연진과 관객이 하나가 되어 상생과 화합의 장을 만든다. 보는 것, 참여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다 함께 먹고 즐기는 재미도 유발한다. 일 년 동안 귓병을 앓지 않고 좋은 소식만 듣기를 바라면서 마시는 술인 ‘귀밝이술’과 부스럼이 나지 않고 한해의 건강을 기원하는 의미의 ‘부럼 깨기’ 등 우리의 전통풍습을 체험하는 행사도 마련된다. ■ [리뷰]다섯 가지 감각이 동(動)하는 축제 한마당 남녀노소ㆍ외국인 할 것 없이 관객으로 꽉 메운 국립국악원 예악당은 객석의 양 측면에 거대한 돛 모양의 조형물을 설치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선상에 앉아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연희의 시작을 알리는 큰북이 울리면서 “수명이 창성할 것을 바란다”는 의미의 <낙양춘>이 연주되고, ‘취위’에서 “수명이 하늘과 같게 한다”는 내용의 <수제천>이 연주되면 왕이 황룡주를 타고 신하들과 등장한다. 이어, 모든 연희 참석자들이 영원토록 번성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만세삼창’을 외치면 <경풍년>이 연주된다. 정월 대보름 날 저녁 궁궐에서 서왕모의 송수를 위한 노래와 함께 불로장생의 열매인 복숭아를 바치는 춤을 추고, 불로장생의 염원을 담은 <보허자>가 불리워진다. 이때 산대를 둘러싼 소리꾼들의 가야금 병창 <사철가>가 이어지면 거북이 등껍질을 등에 이고 모자를 쓴 무용수가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태평무>를 춘다. 비목어가 물을 뿜으면서 용으로 변화하는 연희가 눈앞에 현란하게 펼쳐지고 처용무가 이어진다. 알록달록한 색을 곱게 칠한 배를 중심으로 무용수가 패를 나눠 배의 줄을 잡고 배 가는 시늉을 하며 춤을 추는 뱃놀이 형식의 궁중무용도 펼쳐지는데, 춤을 추며 내는 이상한 소리는 아이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이날 가장 흥을 돋운 장면은 백발의 산신과 까치를 어깨에 멘 동자,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 쓴 연희자가 등장하는 신이다. 특히, 객석으로 난입한 호랑이가 산신ㆍ까치와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의미의 놀이를 펼치는데, 그 내용이 요즘의 한심한 정치인들을 비꼬는 것이어서 관객의 공감을 자아냈다. 객석 이곳저곳에서 “얼쑤” “그 말이 정답이다” 등의 추임새가 쏟아져 나온다. 신기한 분장의 연희자들을 눈앞에서 본 아이들의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또한, 12지신이 악기를 연주하고 동물의 탈을 쓴 잡상광대들이 버나를 돌리며 관객과의 호흡을 시도하는데, 흥이 고조에 다달은 관객은 잡상광대들에게 장난을 걸고 버나를 뺏어 돌리기도 하는 등 공연은 축제의 한마당으로 변하고, 이윽고 왕과 신하들이 황룡주를 타고 퇴장하는 모습으로 1부가 마무리된다. 1부 공연이 끝나고 예악당을 빠져 나오면 관객에게 정월 대보름의 술과 부럼(땅콩)을 나눠주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차례로 술과 부럼을 받아 전통을 환하게 밝힌 야외광장에 나오면 잔디광장을 뺑 둘러 자리한 화로가 관객을 반긴다. 화로는 야외 공연에 얼어붙은 관객의 몸을 따뜻하게 하는 기능과 처음 마주하는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는 등 교감을 나누게 하는 기능을 한다. 야외광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연등점화-비나리-사자놀이-기예-강강술래 순으로 펼쳐진 2부에서 관객들은 풍물굿패의 흥겨운 판소리와 화려한 기예들을 즐기며 저절로 몸을 들썩인다. 이날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참석해 덕담을 남겼다. 유 장관과 함께 ‘귀밝이 술’을 높이 들고 다함께 ‘건배’를 외치자 분위기는 한껏 고조됐다. 이날의 클라이막스는 <강강술래>. 알록달록 무희들이 나와 둥그런 원을 그리며 추던 춤은 이내 관객이 끼어들고, 노인과 아이, 외국인 등 모두가 손에 손을 잡고 화합하는 장으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