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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24시]가뭄에 단비

이명박 대통령-잘랄 탈라바니 이라크 대통령 정상회담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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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07호 박성훈⁄ 2009.03.04 09:59:39

■가뭄의 단비#1 “서울·경기, 강원 영서, 충남은 아침에 비가 조금 온 뒤 오후에 그치겠다. 그 밖의 지방은 대체로 흐리고, 오전에 약한 빗방울이 떨어지겠다. 제주는 밤부터 다시 비가 내리겠다.” 2월 24일의 일기예보이다. 이 예보에 맞춰 전국에는 오전 한때나마 가랑비가 내려 마른 땅을 적셨다. 전국이 기나긴 겨울 가뭄으로 몸살을 앓고 있던 상황이었다. 기후변화로 인해 13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가뭄사태로 곳곳에서 생활용수난에 시달리고 있다. 댐이나 대규모 하천에서 상수도를 공급받는 도시지역의 주민들보다는 계곡 등 지표수를 용수로 쓰고 있는 농촌지역이 더 큰 타격이었다. 특히, 강원도와 낙동강 일대는 극심한 물부족 현상으로 분쟁마저 일고 있는 지역도 있다. 이번에 반나절 동안 내린 가랑비는 물부족 사태를 해결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랐지만, 사막의 물 한 모금 같은 단비여서 한반도는 모처럼 잠시나마 목을 축였다. 보리농사가 한창인 전라도 지역에서는 농부들이 비를 맞으며 즐거운 마음으로 보리밭 정리를 했다. 영남지방에서도 비닐 하우스를 걷어 안에서 말라 가던 재배작물에 물을 주었다. ■가뭄의 단비 #2 여러 모로 ‘처음’ 일어난 일이 많았던 하루였다. 2월 24일은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잘랄 탈라바니 이라크 대통령이 ‘처음’ 만난 날이다. 탈라바니 대통령 공식환영식은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야외에서 진행되기로 예정돼 있었지만, 우천으로 실내 국빈 응접실인 영빈관에서 진행됐다. 청와대 잔디밭에 깔리던 레드 카펫은 이날만큼은 피할 수밖에 없었다. 이 대통령과 탈라바니 대통령은 실내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이라크 대통령을 환영하러 나온 어린이들에게 답례를 하며 단상에 올랐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이 대통령 취임 이후 국빈 방한행사를 영빈관에서 열기는 처음”이라고 전했다. 국빈 환영식이 거행되는 날 비가 오기는 이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이다. 이동관 대변인은 “이 대통령의 ‘날씨불패’ 신화가 이날 깨진 것”이라고 말했다. 크고 작은 대통령 참석 행사에서도 비가 온 날은 많지 않았다. 2008년 2월 25일 이 대통령의 취임식 날에도 소나기가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있었다. 취임식 거행 장소가 국회 앞 잔디밭이기 때문에, 때아닌 겨울비로 행사를 망칠까봐 주최 측은 바짝 긴장했다. 다행스럽게도 행사 간에는 비가 오지 않았고, 취임식이 끝나고 내외빈이 빠져나간 직후에 비가 쏟아진 일이 있었다. 이날 영빈관에서는 ‘처음’으로 이라크 국가가 울려 퍼졌다. 양 정상의 만남은 1989년 7월 한-이라크 국교 수립 이후 처음이다. ‘사람 대 사람’이 아닌 ‘국가 대 국가’로 처음 성사된 만남이었다는 뜻이다. 양국 사이에는 한·이라크 공동위원회라는 협의체가 1988년에 만들어져 2007년까지 5차에 걸친 회담이 진행돼 왔지만, 정상이 참석한 자리는 아니었다. 1991년 걸프전, 2003년 발발한 이라크 전쟁 등 서방 국가와 중동 사이에 벌어진 무력충돌 사이에서 제3자의 위치에 선 한국은 어느 쪽의 손도 적극적으로 들어줄 수 없는 애매한 입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이툰 부대의 적극적인 구호 및 재건복구 활동으로 이라크는 서서히 다시 제 모습을 찾아 가고 있다. 의장행사 날에 비가 오는 것은 그리 반길 만한 일은 아니지만, 이날 비를 원망한 관계자는 없었다. 오랜 가뭄을 해갈한 단비였기 때문이다. 또, 물부족 지역인 중동에서 온 대통령의 환영식 날에 비가 내린 것은 그리 나쁜 일 만은 아니었던 듯싶다. ■가뭄의 단비 #3 이날 이명박 대통령과 탈라바니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통해 이라크 유전개발과 우리 측의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을 연계하는 사업 진행에 합의하고 양자 간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 사업은 한국 측이 발전소 건설 등 이라크의 SOC 건설에 참여하는 대신, 이라크 남부 바스라 지역의 유전개발권을 얻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약 35억5000만 달러에 이르는 사업으로, 이사업을 통해 확보할 수 있는 원유는 20억 배럴이다. 바스라는 이라크 남부 걸프만에 인접한 무역항으로, 이라크 산유량의 대부분이 생산되는 지역이다. 주요 유전으로는 웨스트 쿠르나(150억 배럴), 루메일라(170억 배럴), 마즈눈(110억 배럴), 할파야(38억 배럴), 주베이르(37억 배럴) 등이 있다. 우리나라의 연간 석유수입 규모는 약 8억7000만 배럴로, 이번에 양해각서가 체결된 유전 20억 배럴 규모는 수치로만 따져도 약 3년 수입분에 해당하는 양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라크 측이 SOC와 바스라 인근의 생산광구를 연계하는 사업을 제안한 것은 이라크 대통령 방한 전에 누리 알 말리키 총리와 합의된 내용으로, 2월 23일 지식경제부 2차관과 석유공사 사장 등이 이라크 관계자들과 만나서 논의된 내용이라고 한다. 이번 양해각서 체결은 현재 중남부지역의 유전·가스전 개발 1·2차 입찰에도 선전효과를 줄 수 있다는 평가이다. 1981년 5월에 우리나라의 코데코 에너지가 인도네시아 마두라 유전개발에 참여한 적이 있지만, 중동지역의 생산광구(이미 석유가 생산되고 있는 광구)에 대한 계약을 체결해서 개발하는 사업은 처음이다. 이동관 대변인은 “자원외교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요즘, 우리가 먼저 요청한 것도 아닌 이라크 측의 요청에 의해 즉각 현물수입이 가능한 생산광구와 SOC 사업을 연계하는 외교적 성과를 이룬 것은 어려운 경제를 극복해야 하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가뭄의 단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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