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증권·사채 등 자금시장에서 회자되는 재계의 현금소진 문제가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이달 초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주요 10대기업들의 현금성 자산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0대그룹 현금성 자산 축소 삼성·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LG·SK·금호아시아나·GS 한화·롯데·한진 등 시가총액 기준 국내 10대그룹 중에서 현금성 자산이 10조 원을 넘어서는 곳은 13조4000억 원의 삼성그룹 한 곳. 그나마 전년대비 1.5% 낮아진 수치다. 현금성 자산이란 순수한 현금을 뜻하는 것으로, 회사 금고에 보관된 현금과 수표, 혹은 금융권 예치금, 양도성예금증서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자산은 현금 외에 주식·채권·어음 등의 유가증권과 건물·비품·상품·지적재산권·지적사용권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하지만 직원에 대한 급여 지급, 거래처 대금 지급, 사채의 상환 등 기업활동으로 발생되는 모든 비용은 현금으로 지급해야 한다. 이 때문에 기업은 보유현금이 많을수록, 그리고 보유자산을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현금성 자산으로 전환할수록 안전성이 높다고 평가된다. 반면, 기업의 매출액이 증가했어도 어음결제 증가 등으로 실질 현금유입이 감소됐다면 기업의 불안정성이 그만큼 높아지게 된다. 일반적으로 은행 금융권은 해당 기업의 현금성 자산이 2년 이상 연속 감소할 경우 대출금 조기회수 등의 조치에 착수해 왔다. 삼성을 제외한 기업집단의 경우 현대차 8조6000억, 현대중공업 6조4000억, LG 3조, SK 2조6000억, 금호아시아나 1조3000억, GS 3조6000억, 한화 2조3000억, 롯데 2조, 한진 1조2000억 원 순이다. 이를 계열사당 평균으로 나눌 경우 현대중공업그룹이 9143억 원으로 가장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그 외 현대자동차의 계열사별 평균 현금성 자산이 2389억원을 기록했으며, 그 다음으로 삼성 2271억, LG 1903억, 금호아시아나 1026억, SK 983억, GS 750억, 한화 677억, 한진 480억, 롯데 455억 원을 기록했다. 이와 관련, 금융 당국의 한 관계자는 “대체로 대기업일수록 매출 및 현금 등의 보유 규모가 주력사 10%에 90%가 집중돼 있는 것이 일반적 현상”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관점에서 살펴보면, GS그룹은 상위 5개 계열사가 평균 6480억 원의 현금율 보유한 반면, 나머지 43개 계열사의 보유현금은 평균 84억 원에 그친다는 것이다. 또 삼성은 전자·생명·물산 등 상위 6개사가 평균 2조100억 원 상당의 현금보유액을 자랑한 반면, 53개 계열사는 평균 253억 원의 현금보유액에 불과하다.
특히 삼성그룹은 삼성전자의 적자전환, 세계 금융시장의 불안 등의 영향으로 전체 그룹의 현금성 자산이 1.5% 감소했다. 롯데그룹도 2008년 현금성 자산이 2조 원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전년 대비 4.8% 감소한 것. 롯데그룹은 올해 신동빈 부회장의 후계승계 완료, 서울 잠실의 초고층 빌딩 건립 등의 일정을 앞두고 천문학적인 자금을 필요로 하고 있다. ■부채비율, 한진·한화 폭증 반면, 부채비율은 금호아시아나와 롯데를 제외하고 전반적으로 증가세를 보였다. 선박제조업을 영위하고 있는 현대중공업을 제외한 삼성·현대차·LG 등 9개 재벌그룹의 평균 부채비율은 2007년 대비 25.8% 늘어난 141.2%를 기록했다. 10대그룹 중 부채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한진그룹으로 278.7%를 기록했으며, 그 다음은 금호아시아나 169.1%, 한화 165.5%, SK 118.8%로 그 뒤를 이었다. 한편 한진그룹의 부채비율이 2007년 대비 가장 높게 올랐고, 한화가 28.6%p, SK 25.9%p, 삼성 18.6%p로 그 뒤를 이었다. 2007년 대비 부채비율이 87.9%p 급증한 한진그룹은 현금성 자산 감소율도 10대그룹 장 가장 높은 것으로 기록됐다. 한편, 선박제조업을 영위하는 현대중공업그룹의 부채비율은 2007년 178.8% 대비 135.4%p 증가한 314.2%를 기록, 명목상 10대그룹 중 재무구조가 가장 불안한 듯 보인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의 부채증가는 지난해 선박수주 호황에 따른 것이어서, 여타 제조업의 부채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 조선업계의 설명이다. 조선업계는 선박제조를 의뢰받으면 발주처의 선금, 계약서 등을 바탕으로 금융기관에서 자금을 조성해 배를 만들고, 발주자에게 배를 넘기고 받은 대금에서 금융기관 차입금을 상환하게 된다. 이 때문에 배가 많이 만들어질수록 명목상 부채비율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특히 GS그룹의 경우 지난해 3분기 이후 경영권 위기설에 휩싸인 바 있다. 당시 GS그룹 경영권 위기설의 근거가 바로 상반기 재무제표. GS그룹에서 공시한 제무제표에 따르면, GS홀딩스가 유동부채 3000억 원을 기록, 유동자산의 360%에 달했었다. 또 GS홈쇼핑도 유동부채가 유동자산을 훌쩍 넘어섰었다. ■10대 이하 기업, 심각성 더해 이들 10대기업은 국내에서 가장 돈이 많은 기업집단의 경우. 한편, 이들보다 못한 중견 재벌그룹과 상장사 하위 500대 기업의 경우 그 정도가 심하다. 사실 중견 재벌그룹의 현금소진 문제는 지난해 내내 증권가의 이슈로 떠올랐다. 코오롱의 경우 지난해 3분기 코오롱패션의 보유현금이 1000만 원, FnC코오롱은 3000만 원에 불과했으며, 주식회사 코오롱도 유동자산이 유동부채의 46.6%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또 동양매직·한진 등도 비주력 계열사의 현금소진 현상이 심화됐었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 같은 현상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며 “앞으로 2~3개월이 고비”라고 밝혔다. 한편, 명동과 여의도 일대 사채시장의 한 관계자는 “코스피 상장사들 중 상당수의 경영진들로부터 대출타진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코스피와 코스닥 상장사들 중 상당수 기업들이 하루하루 운영자금이 없어 피를 말리고 있는 것이 작금의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