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 관련 사건들이 특정 재판부에 ‘몰아주기’한데 대해 서울중앙지법 법관들이 조직적으로 반발한 사실을 뒤늦게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 당시 서울중앙지법원장이던 신영철 대법관이 사건 처리를 재촉하는 이메일을 보낸 사실까지 공개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촛불집회 사건 5건을 잇따라 한 재판부에 배당하는 ‘몰아주기’ 배당과 관련해 지난해 7월 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단독 판사 13명이 긴급 회동하여 대책을 논의한 뒤 문제를 제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다음날 아침, 당시 신영철 법원장은 이 회동에 참석했던 판사들에게 이메일을 급히 보내 이들을 불러 배당 방식을 바꿔 앞으로 공평하게 배당하겠다며 사실상 재발방지를 약속해 반발을 무마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메일에는 자신과의 면담을 비밀로 해달라는 당부가 포함돼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기소된 안진걸 광우병국민대책회의 팀장의 재판은 박재영 판사에게 배당됐고, 이에 판사들의 반발은 물밑으로 가라앉는 듯 했으나, 3개월 뒤인 10월 9일 박 판사가 야간 옥외집회 금지 조항에 대해 위헌심판을 제청하면서 다시 문제가 불거졌던 것이다. 같은 날 열린 법원 국정감사에서는 법원장이 젊은 판사들을 좀 가르쳐야 한다는 말까지 나와 논란이 일기도 했으며, 이후 촛불재판을 맡은 일부 단독판사들이 헌재의 결정을 기다려보겠다며 재판을 중단하자, 일부 언론과 보수단체 등에서 연일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 ■신영철·대법원 감추는데만 급급 의혹 커져 당시 신 전 원장은 법원 안팎에서 가장 유력한 차기 대법관 후보로 거론되던 상황이었으며, 따라서 신 전 원장은 촛불재판을 맡은 판사들에게 사건처리를 재촉하는 문제의 이메일을 연속해서 보내 결국 두 달 뒤 대법관에 제청된 반면, 야간 집회와 관련한 위헌심판을 제청했던 박재영 판사 등 형사단독 판사 3명은 법복을 벗는 편파적이고 부조리한 인사가 자행됐다. 이와 관련, 익명을 요구한 전 서울중앙지법의 한 형사단독 판사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잘 모르겠다는 사람도 있지만, 어쨌든 현행법에 따라서 처리하라고 하면 기분이 안 좋은 사실이었다”고 토로했다. 해가 바뀌고 서울 중앙지법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세상에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지만, 신 대법관과 대법원은 감추고 덮는 데만 급급했으며, 거듭된 거짓 해명 속에 의혹이 계속 커져 가면서 사법부 전체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자, 결국 일부 소장 판사들은 신 대법관의 이메일을 언론에 공개해 사법부를 팔칵 뒤집어 놓았던 것이다. 이와 관련, 대법원이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리는 등 즉각 대처하고 나섰지만, 일부 이메일에서는 “대법원장도 같은 생각”이라고 언급해 이용훈 대법원장의 관여 사실여부도 관심의 대상이 되면서 파문이 더욱 확산될 조짐이어서, 사상초유의 사법부 파동은 일파만파 번질 전망이어서 더욱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2월 5일 대법원의 발표에 따르면, “신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법원장 시절인 지난해 10∼11월, 당시는 서울중앙지법 박재영 판사가 야간집회를 불법으로 규정한 법률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을 낸 때로, 촛불사건 재판부들이 헌법재판소의 결정 이후로 판결을 미룬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수차례 당시 형사단독 판사들에게 촛불사건과 위헌제청 상황을 언급한 이메일을 보냈다”고 전했다. 하지만 신 대법관은 같은 해 10월 14일 보낸 이메일에서 “나머지 사건은 통상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판결을 미루지 말아 달라는 뜻을 밝히면서 특히 “대법원장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할 능력도 없고, 적절치 않지만 대법원장님도 대체로 저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들었다”고 전해 이용훈 대법원장의 개입 사실을 우회적으로 시사했다. ■대법원장 “신 대법관 통상적인 업무였다” 또 ‘야간집회관련’이라는 제목으로 같은 해 11월 6일 보낸 이메일에서는 “부담되는 사건을 후임자에게 넘기지 않고 처리하는 것이 미덕”이라며 통상적인 처리를 주문했고, 같은 달 24일에는 위헌제청 사건 결정이 2009년 2월 이후로 미뤄졌다는 사실을 전하며 “통상적인 방법으로 재판을 끝내고 현행법에 따라 결론을 내달라”고 재차 당부했다. 뿐만 아니라, 신 대법관은 “제가 알고 있는 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내외부(대법원과 헌재 포함)의 여러 사람들의 거의 일치된 의견이기도 하다”고 강조하면서 “(내년) 2월 재판부 변경 전에 어려운 사건을 모두 끝내고 후임 재판부에 인계하려던 저와 판사님들의 계획이 상당 부분 차질을 빚게 됐다”며 아쉬워했다. 이 밖에도, 신 대법관은 형사단독 판사들이 ‘몰아주기 배당’ 문제를 제기한 지난해 7월 15일 ‘양형위원회’ 개최 사실을 공지하고 “비밀로 해 달라”고 당부하는 메일도 보낸 것으로 드러나, 대법원은 이날 윤리감사관 등 10명 이내의 인사가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이메일 등을 면밀히 검토한 후 징계 여부를 결정 짓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원은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며 “진상조사를 위한 기구를 구성, 신속하고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신 대법관은 “단독 판사들이 사건 처리에 혼선을 빚고 있는 것 같아 소통의 일환으로 보낸 메일”이라고 해명했다고 대법원 관계자는 전했다. 그리고 이 대법원장도 3월 6일 기자들과 만나 “위헌제청을 신청한 상태에서 이메일을 보낸 것은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위헌제청을 신청한 사람은 양심에 따라 한 것이고, 합헌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재판을 해야 하는 것”이라며 “그것으로 압박을 받는 판사가 있어서야 되겠느냐. 판사들은 더욱 양심에 따라 소신대로 할 동기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해 신 대법관의 행위에 전혀 문제가 없음을 주장했다. 또한 이 대법원장은 “신 대법관의 이메일에 대법원장도 언급돼 있는 만큼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는 “대법원장을 왜 조사하느냐”고 불쾌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한편, 이번 파문과 관련해 현직 판사들이 법원 내부 통신망에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글을 잇따라 게재, 사법권 독립과 개혁을 요구하는 소장 판사들의 집단행동이 예상되고 있어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서울남부지법 김영식 판사는 지난 3일 “사법부의 독립은 민주주의나 인권만큼 중요한 가치여서 이번 파문은 간단히 넘길 수 없다”고 주장했으며, 울산지법의 송승용 판사도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사법부 독립은 온 국민의 열망과 값진 희생으로 일궈낸 민주주의 산물”이라며 “촛불 배당과 영장에 대한 법원 상층부의 개입의혹은 사법부를 흔드는 손”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앞서, 서울동부지법 이정렬 판사와 서울서부지법 정영진 부장판사도 지난달 말에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글을 올린 바 있다. 그리고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에서도 신 대법관의 자진사퇴를 요구하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6일 확대간부회의에서 “어떻게 법원장이 판사에게 이런저런 강요를 할 수 있는가”라며 “대법원 스스로 이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고 철저한 책임추궁이 따라야 할 것이지만, 그 이전에 신 대법관이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며 자진사퇴를 촉구했다.
■야당·시민단체 사퇴 촉구 잇달아 또한 대법관 출신인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도 이날 국회에서 열린 당 5역 회의에서 “재판 진행에 관해 사법감독관인 법원장이 간섭하는 일은 있을 수 없고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지적하면서 “그 내용이 사건의 처리 지연을 걱정하는 수준이라면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위헌제청 요구 절차를 취하지 말고 그대로 형사재판으로 끝내라는 취지라면 재판에 간섭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질타했다. 법원공무원노동조합(법원노조)은 5일 오후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신 대법관이 법관들에게 보낸 대외비 서신으로 촛불사건을 임의로 배당하고 영장기각 사유 변경 등을 요구했던 정황이 드러났다”며 신 대법관의 사퇴를 촉구했다. 그리고 법원노조는 “이번 사태는 법관의 독립을 침해한 사안”이라며 “법관의 서열식 승진구조 등 사법 관료화의 폐해 개선 등 근본적 해결을 요구한다”고 덧붙였으며, 특히 법원노조는 향후 촛불집회 관련 형사사건의 인위적 배당 등 관련 의혹에 대한 조사단 활동을 벌일 예정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이날 성명을 내고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법관의 독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한 매우 중차대한 사건”이라며 “신 대법관은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하라”고 촉구했다. 이어 경실련은 “이번 사건은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기본적인 원칙을 무너뜨린 것”이라며 “권력으로부터 독립돼 헌법과 법률에 따라 판단을 내려야 할 사법부가 오히려 권력의 입맛에 맞게 재판의 결과를 조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국민적 의혹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고 비난했다. 그리고 경실련은 “대법원은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공정하고 투명한 조사 기구를 구성해 사건 전반에 대한 진상을 철저하게 규명하고 그 결과를 국민에게 낱낱이 알려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참여연대는 논평을 내고 “이번 사건은 법관의 독립을 명백하게 위협하고 침해한 중대 사건”이라며 “신 대법관이 대법관직에서 물러나야 하고,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다면 국회에서 탄핵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참여연대는 “촛불사건 몰아주기 배당 파문에 이어 이번에 드러난 재판개입 사건은 법원이 얼마나 위태로운 지경에 몰려 있는지를 보여준다”며 “이용훈 대법원장은 촛불사건 몰아주기 배당 의혹과 신 대법관의 촛불재판 개입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조사하라”고 주장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성명을 통해 “사법의 기본이 무너졌다”며 “신 대법관의 위증 등 범죄행위와 법관의 재판에 대한 압력행사의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정치적 감각이 탁월하다는 평가받아 민변은 “신 대법관은 이번 사건에 대해 이용훈 대법원장과도 협의를 했다고 하는데, 대법원장은 그 진상을 명백히 밝혀야 한다”며 “신 대법관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 대법원장도 그에 따른 책임을 스스로 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신 대법관은 섬세한 성격이지만 ‘정치적 감각’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2004년 1월 DJ 내란 음모 재심사건을 담당했을 때의 유명한 일화는 법원 내부에서 오랫동안 회자되기도 했다.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이 피고인석에 서자 직접 일어나 깍듯하게 인사한 뒤 “대법원장 비서실장 시절 인사드린 적이 있다”며 “불편하신 건 말씀해 달라.”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충남 공주 출신으로 대전고 동창인 황우석 교수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때는 “황 교수와 제일 친한 사이”라고 주변에 말해 친분을 과시하기도 했다. 서울 법대를 졸업한 신 대법관은 충청 지역 몫의 대법관 0순위로 꼽혀 왔으나, 고교 선배인 고현철 전 대법관이 퇴임하면서 이를 이어받았다. 다음은 신영철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법원장이던 지난해 7~11월 이 법원 형사 단독 판사들에게 보낸 메일들이다. ● 2008년 7월 15일 제목: 형사단독판사 간담회 <대내외비> <친전> 안녕하십니까. 법원장입니다. 형사단독 판사님들의 간담회(양형연구위원회)를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개최하고자 하오니 참석하여주시기 바랍니다. 일시: 2008. 7. 15(화). 09:20 장소: 동관4층 소회의실(법원장실 옆) 참석범위: 법원장, 형사단독 판사(영장전담, 수석부 배석 제외) 취지: 1. 양형의 통일적 운영 2. 형사재판 운영에 관한 제문제 요망사항: 법원장으로서 ‘소통과 배려’에 문제가 있었음을 말씀드리는 기회이고, 향후 형사재판 운영에 관한 속마음을 솔직하게 말씀드릴 기회를 가지고자 하오니, 모임에서 논의된 사항이나 모임 그 자체도 대외적으로는 물론 대내적으로도 비밀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법원장으로서도 모임 현장에서 언론의 자유를 얻기 위한 최소한의 요청입니다. ● 2008년 10월 14일 제목: 대법원장 업무보고 어제 회의에 참석하신 판사님들께만 전해드립니다. 오늘 아침 대법원장님께 업무보고를 하는 자리가 있어, 야간집회 위헌제청에 관한 말씀도 드렸습니다. 대법원장님 말씀을 그대로 전할 능력도 없고 적절치도 않지만, 대체로 저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으신 것으로 들었습니다. 1. 위헌제청을 한 판사의 소신이나 독립성은 존중되어야 한다. 2. 사회적으로 소모적인 논쟁에 발을 들여놓지 않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하고, 법원이 일사분란한 기관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도, 나머지 사건은 현행법에 의하여 통상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는 두 가지 메시지였습니다. 구속사건 등에 대하여 더 자세한 말씀도 계셨지만 생략하겠습니다. 참고로 우리 법원 항소부에서는 구속사건에 대하여는 선고를 할 예정으로 있는 것 같습니다(저와 상의하여 내린 결정은 아닙니다). 오해의 소지가 있으시면 제가 잘못 전달한 것으로 해주십시요. -법원장 드림- ● 2008년 11월 6일 제목: 야간집회관련 <대내외비><친전> 형사단독 판사님께 확신하기는 어려우나 야간집회 위헌 여부의 심사는 12월 5일 평의에 부쳐져, 연말 전 선고를 목표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내년 2월이 되면 형사단독 재판부의 큰 변동이 예상되기도 합니다. 모든 부담되는 사건들은 후임자에 넘겨주지 않고 처리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또 우리 법원의 항소부도 위헌 여부 등에 관한 여러 고려를 할 것이기 때문에, 구속 사건이든 불구속 사건이든 그 사건에 적당한 절차에 따라 통상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어떠냐 하는 것이 저의 소박한 생각입니다. 또 제가 알고 있는 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내외부(대법원과 헌재 포함)의 여러 사람들의 거의 일치된 의견이기도 합니다. -법원장 드림- ● 2008년 11월 24일 제목: 야간집회 위헌사건에 대하여 <대내외비> <친전> 존경하는 우리 법원 형사단독 판사님들께 야간집회에 대한 위헌제청 사건을 2009년 2월에 공개변론을 한 후에 결정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변론하지 않고 연말 전에 끝내는 것을 강력히 희망한 바 있으나, 결정이 미뤄지게 되어 저 자신 실망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위헌 여부의 결정을 반영하여 2월 재판부 변경 전에 어려운 사건을 모두 끝내고 후임 재판부에 인계하려던 저와 판사님들의 계획이 상당 부분 차질을 빚게 되었습니다. 피고인이 그 조문의 위헌 여부를 다투지 않고, 결과가 신병과도 관계 없다면, 통상적인 방법으로 종국하여 현행법에 따라 결론을 내주십사고 다시 한 번 당부드립니다. -법원장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