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박연차 리스트’ 수사와 더불어, 한나라당 이재오 전 최고위원과 민주당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의 귀국 등으로 여야의 세력판도에 변화의 바람이 몰아칠 조짐이다.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박진 의원이 소환조사를 받은데 이어, 조만간 다른 중진급 의원이 소환 통보를 받을 것으로 알려져 한나라당은 초긴장하면서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의 말 한마디에 따라 야당은 물론이고 여권 인사들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마저 나오면서, 실제로 ‘박연차 리스트’의 새로운 버전도 여의도 정가에 나돌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그만큼 박 회장의 ‘전방위 자금살포’가 광범위하게 이뤄졌다는 방증이다. 이처럼 검찰의 박연차 리스트 수사가 정치권을 정조준하면서 우선 이 리스트에는 부산·경남(PK) 지역 출신의 정치인 대부분이 올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가운데, 공교롭게도 이 지역은 친박계 인사들이 많아 친박계의 정치적 타격이 일정 부분 불가피하다는 측면에서 여권 내 역학구도의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이 당을 확실하게 장악하는 것은 물론이고 향후 국정운영의 주도권을 쥐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관측과 함께, 이번 수사로 ‘정치권이 불법 로비 자금의 온상’이란 부정적 여론이 확산될 경우 정치권 개혁작업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재오 복귀가 갖는 정치적 의미 이 같은 관측은 ‘박연차 리스트’에 이어 정대근 전 농협 회장의 정치권 로비 자금 내역이 담긴 ‘정대근 리스트’ 존재설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은 가운데, 검찰발 사정태풍이 ‘박연차 리스트’ 수사에 국한되지 않고 지속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경우 정치권의 대대적 개편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이명박 대통령의 ‘복심(腹心)’인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귀국은 한나라당의 향후 권력지형 변화의 또 다른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 탄생의 일등공신이자 여권 실세로 불리는 이 전 최고위원의 정치권 복귀 자체가 갖는 정치적 의미가 적지 않기 때문에, 향후 이 전 의원의 ‘역할’에 정치권의 관심이 쏠리는 것도 이 같은 연유에서다. 그러나 이 전 의원 측을 비롯해 상당수 의원들은 이 전 의원이 당분간 정치권과는 거리를 둔 채 ‘로-키 행보’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힘에 따라, 이 전 의원의 귀국이 당장 일대 파란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전 의원은 3월 29일 자택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현실정치는 현역에게 맡겨놓고 나는 한국의 50년, 100년 후 미래 등을 종합적으로 연구할 것”이라고 말했으나, 4.29 재보선 공천과 당협위원장 문제, 새 원내대표 선출 등 향후 당내 현안과 정치적 일정을 앞두고 이 전 의원이 모종의 역할을 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 같은 관측은, 이 전 최고위원이 가만 있더라도 복귀 자체가 갖는 정치적 중량감 때문이며, 향후 여권 내 역학구도 변화에 주요 변수가 될 것이라는 정치권의 중론 때문이다. 이 전 의원이 적극적 역할에 나설 경우 ▲‘친이’ 진영의 구심점 변화 ▲‘친이’ 진영의 주도권 경쟁 ▲‘친박’ 진영과의 갈등 재연 등이 부각되면서 이 전 의원을 중심으로 한 ‘친이’ 진영의 ‘헤쳐 모여’, 즉 그동안 구심점 부재로 갈지자 행보를 계속해온 ‘친이계’가 이 전 의원을 중심으로 대오를 새롭게 갖출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관측이 가시화될 경우, 그 동안 물밑에서 친이계의 큰형님·큰어른으로서 ‘조정자’ 역할을 맡아 온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과의 ‘역할’이 중복되기 때문에 친이 내부의 주도권 다툼과도 밀접하게 연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당내의 한 중진급 의원은 “이 전 의원이 정치활동을 하든 안하든 여권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있는 만큼 조그마한 행동도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라며 “나무가 제아무리 가만히 있으려고 해도 바람이 이를 가만히 놔두겠느냐”고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따라서, 만에 하나라도 이 전 의원이 적극적 행보에 나설 경우 친이(친 이명박)계의 구심점 변화, 친이계 내부의 주도권 경쟁, 친박 진영과의 갈등 재연 등 여권 내 세력균형의 변화로 이어질 공산이 클 것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와 관련,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검찰의 수사 결과와 이 전 의원의 귀국 등 여권내 세력판도에 상당한 변화가 불가피하다”면서 “이 같은 구도변화는 어차피 그 동안 예고돼 온 게 아니었느냐”고 말해 피해 갈 수 없는 사실임을 시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권 내의 이러한 분란 자체가 경제위기 극복에 머리를 싸맨 이 대통령에게 큰 부담을 안길 수 있다는 점 때문에라도 이 전 의원이 ‘조용한 행보’를 할 것이라는 전망과 아울러, 친이상득계·친이재오계 등 친이 내 소그룹 간 교집합이 적지 않고, 이 전 부의장 스스로 “귀국 후 이 전 의원의 활동을 기대한다”고 밝힌 만큼 ‘당내불화’는 기우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또한, 이 전 최고위원이 최근 측근들에게 “더 이상 친이·친박을 얘기해서는 안되며, 앞으로는 과거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미래를 얘기하자”고 당부한 점 또한 굳이 친박과의 대립각을 세우지는 않겠다는 각오로 해석되고 있다. 이 전 의원은 이러한 정치적 오해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당분간 저서 집필 및 특강에 주력할 방침이며, 특강의 경우에는 ‘한반도 미래’ 등 지난 10개월 간 미국·중국에서 연구한 과제와 관련된 주제에 한해 나설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 강한 리더십 주문 목소리 높아 한편, 민주당도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4.29 재보궐 선거 출마 의사를 밝히면서 귀국함에 따라, 당내외에 미치는 파장과 함께 당내 권력 구도 재편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어 정치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 민주당은 정세균 대표가 지난 연말부터 1·2차 입법전쟁을 치르면서 1인 지도체제에 가까울 정도로 당 운영의 주도권을 장악했으며, 특히 당내 주류도 정 대표 측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입법전쟁에서 미디어관계법의 2월 임시국회 통과를 막아내는 등 나름대로 소기의 성과를 달성했음에도 당 지지율이 10%대에 머물자, 당내에서는 정세균 체제에 대한 불만이 커지면서 보다 강력한 리더십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정 전 장관 측에서는 정 대표가 이러한 부담 때문에 당 지도부를 통해 정 전 장관을 공천에서 배제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정 대표는 정 전 장관의 출마를 환영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선당후사(先黨後私)의 원칙이 중요하다”며 불편한 심기를 우회적으로 내비친 바 있으며, 만약 당이 4.29 재보선에서 개혁공천을 명분으로 외부 인사를 영입해 승부수를 띄우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다면 정 전 장관의 입지는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 경우 정 전 장관 측에서는 전주 덕진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더라도 압승이 예상된다며 정면돌파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 무소속 출마 여부가 주요 관심 사항으로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어서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