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요구해서 가방에 500만 달러를 넣어 청와대로 보내 직접 노 전 대통령이 건네받았다는 검찰 수사내용이 새롭게 드러나면서 노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중 최대 무기로 내세웠던 도덕성·청렴성에 상처를 입게 됐다. 더욱이 ‘박연차 로비 의혹’에 대한 본격 수사가 시작된 이래 연일 터져나오는 ‘박연차 쓰나미’에 ‘노무현의 남자들’이 속수무책으로 휩쓸리면서 친노(親盧) 진영이 최대의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박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된 민주당 이광재 의원과,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조사받고 있는 민주당 안희정 최고위원은 ‘좌희정·우광재’로 불릴 정도로 20여 년 간 노 전 대통령을 보좌한 왼팔이자 오른팔이었다. 또한, 역시 박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소환돼 불구속 수사가 예상되는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스승’으로 통하고 있다. 오랜 후원자인 강금원 회장 또한 9일 횡령혐의로 구속됐으며,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과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 역시 구속됐다. 그리고 비서 출신의 민주당 서갑원 의원과 집사로 불리는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 측근들이 줄줄이 사법처리되거나 조사를 받고 있는 등 친노진영이 ‘멸문지화’에 가까운 궤멸 상태에 처하면서 당분간은 재기가 힘들 것이라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을 정도이다. ■‘박연차 쓰나미’에 친노 재기 힘들어 친노진영은 지난해 18대 총선에서 유시민·김형주·유기홍·김태년·이광철 전 의원 등이 여의도 재입성에 실패함으로써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서는 듯했으나, 살아남은 인사들을 중심으로 정세균 대표체제를 떠받치는 핵심세력으로 부상해 당내 주류로 발돋움하면서, 지난해 노 전 대통령의 홈페이지 개설 등과 맞물려 다양한 모임 내지 단체를 발족, 활발한 물 밑행보에 나서는 등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는 듯했다. 그러나 지난해 정권교체 후 “‘친노’ 꼬리표가 붙은 인사는 모조리 먼지떨이식으로 뒤진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검찰의 사정권이 친노진영을 압박하면서 이들의 활발한 움직임은 수면 아래로 잠복했으나,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헤쳐모여’식의 영남권 중심의 친노신당 창당 시나리오도 나도는 등 본격적인 재기를 모색할 것이라는 관측도 꾸준히 나돌았다. 하지만 ‘박연차 쓰나미’가 일파만파 확산되면서 친노의 부활은 기약하기 힘들게 됐으며, 내년 지방선거에서의 약진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정치권에서 ‘친노’라는 말은 한나라당에는 공격의 소재로, 민주당에는 ‘떼내고 싶은 꼬리표’로 전락하기에 이른다. 특히, 민주당이 ‘성역 없는 수사’를 촉구하며 노 전 대통령과 거리 두기에 나선 점이나, 이종걸 의원이 “민주당에서 노 전 대통령의 색깔을 빼야 한다”고 주장하며 당 지도부의 총사퇴를 요구한 점 역시 ‘친노’ 딱지에 대한 부담감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번 사건의 중심에는 노 전 대통령 부부가 있어 자칫 전직 대통령 부부가 동시 소환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도 없지 않은 가운데, 노 전 대통령이 ‘포괄적 뇌물죄’ 적용으로 구속되는 극한상황까지 배제할 수 없어 보이는데다, 검찰의 10일 조사결과대로라면 노 전 대통령이 특유의 정면돌파 승부수를 던진 사과문도 거짓으로 드러나, 도덕성과 정치개혁의 기치는 이미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채 땅에 떨어진 상태이다. ■‘정대근 리스트’ 새 뇌관 되나 ‘포괄적 뇌물죄’는 대가성이 명확하지는 않더라도 포괄적으로 직무와 관련해서 돈을 받았을 때 적용되며, 직무 범위가 넓은 정치인을 처벌하는 잣대로 주로 활용돼 왔다는 점에서, 만약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중에 청와대에서 돈을 받았다면 국가 원수로 모든 직무를 관장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받은 돈이 직무와 관련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이 사과문에서 검찰이 적용을 검토하고 있는 혐의와는 전혀 다른 사실을 밝혔기 때문에, 검찰이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보고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워, 만약 노 전 대통령이 포괄적 뇌물죄로 구속된다면 전직 대통령으로는 3번째로 구속되는 사례가 된다. 앞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각각 1995년 12.12사건, 5.18 쿠데타 관련 특별법 제정으로 구속돼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1997년 12월 사면됐으며, 특히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재임시 조성한 비자금과 관련해 1997년 4월에 ‘포괄적 뇌물죄’가 적용되어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17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한편, 정치권은 박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100억대의 뇌물을 챙긴 것으로 드러난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장의 로비 의혹에도 손을 대기로 한 것으로 전해져, 여야 또는 신·구 정권 가릴 것 없이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가고 있는 ‘박연차 리스트’에 이어 ‘정대근 리스트’가 새 뇌관이 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 대검찰청 홍만표 수사기획관은 최근 “구속된 이광재 의원, 이강철 전 특보 외에 정대근 씨가 다른 정치인에게 준 돈이 있는지 주목해서 살펴보겠다”며 “정 전 회장이 최근 박 회장과의 대질 후 돈을 받은 사실 등을 자백했으며, 앞으로도 수사에 협조하기로 약속했다”며 앞으로의 수사를 낙관했다. 구속 수감 중인 정 전 회장이 과거 농협에서 일하는 동안 각종 이권에 개입해 수수한 뇌물은 박연차 회장이 준 해외비자금 250만 달러 등 100억 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돈이 정치권으로 흘러들었을 것으로 보고, 검찰이 겨눈 사정의 칼이 ‘박연차 리스트’에서 ‘정대근 리스트’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우선, 검찰은 정 전 회장이 3년 전에 구속된 이후 구치소와 교도소로 정 전 회장을 면회 갔던 30명 가량의 정치인들을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면회를 간 정치인 명단에는 이광재 의원뿐 아니라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 국회 부의장을 지낸 이용희 의원 등 거물급 정치인들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