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3호 심원섭⁄ 2009.04.13 14:15:53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청와대 경내에서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의 비자금 100만 달러를 직접 건네받았다는 검찰 수사내용이 새롭게 드러나면서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중 최대 무기로 내세웠던 도덕성에 상처를 입게 됐다. 여기에 ‘박연차 달러 폭탄’을 맞은 ‘노무현 패밀리’들은 사건의 중심에 있는 노 전 대통령 부부를 비롯하여 장남 건호 씨도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 연철호 씨와 함께 박 회장으로부터 500만 달러를 투자받는 과정에 관여했다는 의혹으로 수사선상에 올랐고, 형 건평씨는 지난해 말 세종증권 매각비리에 연루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노 전 대통령 내외에 대해서는 자칫 전직 대통령 부부가 동시 소환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도 없지 않으며, 노 전 대통령이 ‘포괄적 뇌물죄’ 적용으로 구속되는 극한상황까지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9일 검찰의 조사결과대로라면 “저의 집(부인)에서 부탁하고 그 돈을 받아 사용한 것”이라는 지난 7일 노 전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문도 거짓으로 드러나게 되는 셈이다. 노 전 대통령은 직접 소명에 나서며 특유의 정면돌파 승부수를 던졌지만, 도덕성과 정치개혁의 기치는 이미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채 땅에 떨어진 상태다. 10일 오전, 박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을 수사 중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검사장 이인규)는 경기 분당에 있는 연철호 씨의 자택에 수사팀을 보내 전격적으로 체포하는 동시에 자택과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 관련 자료를 확보하는 등 본격적으로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검찰의 발표에 의하면, 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 퇴임 직전인 지난해 2월 홍콩 APC 계좌에서 500만 달러를 연 씨의 계좌로 송금했으나, 이 돈의 마지막 종착지와 용처를 둘러싸고 갖은 의혹이 제기돼 왔다고 한다. ■연철호·노건호, 베트남으로 박연차 찾아가 특히, 이 돈 거래에는 박 회장으로부터 4억여 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은 물론, 건호 씨도 깊숙히 개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지난 2007년 8월 박 회장, 정 전 비서관과 9일 대전지검에 구속된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등 ‘3자회동’에서 노 전 대통령의 퇴임 후 활동에 대해 논의하던 중 박 회장이 “홍콩에 비자금 500만 달러가 있으니 가져가라”고 말했다고 밝혔었다. 검찰은 2007년 12월 정 전 비서관이 박 회장의 비서실장인 정승영 정산개발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연 씨가 투자문제로 박 회장을 찾아갈 것”이라고 다리를 놓았고, 비슷한 시기에 건호 씨가 연 씨와 함께 베트남으로 박 회장을 찾아가 만난 점에 주목해 돈의 성격을 규명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앞서 연 씨 측은 2007년 12월 박 회장에게 먼저 연락하여 해외 창투사 설립 투자를 해달라고 부탁해, 2008년 1월 타나도 인베스트먼트를 설립한 뒤, 다음달 홍콩 계좌로 500만 달러를 ‘투자금’ 명목으로 송금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검찰은 연 씨를 상대로 돈이 노 전 대통령의 몫으로 건네진 것인지, 노 전 대통령이 이를 알고 있었는지를 규명하는데 초점을 맞춰 이 돈의 명목과 용처 등을 조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은 4월 7일 홈페이지에 게시한 사과문에서 “퇴임 후 조카사위가 박 회장한테 돈을 받은 사실을 알았지만 특별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 특별히 호의적인 동기가 개입한 것으로 보였지만 성격상 투자이고, 저의 직무가 끝난 후의 일이었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박 회장으로부터 4억여 원, 정대근 전 농협회장으로부터 수천만 원을 받은 혐의로 정 전 비서관에 대해 청구된 구속영장이 법원에 의해 기각되어 검찰 수사에 차질이 예상된다. 정 전 비서관은 박 회장과 연씨 간의 돈 거래에는 물론, 박 씨와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 간의 돈 거래에도 개입한 것으로 확인돼 이번 수사에서 핵심인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정 전 비서관의 조사 여부에 따라 권 여사에 대한 검찰 조사가 불가피하고 자칫 사법처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어, 권 여사가 역대 영부인 중 검찰 조사를 받는 첫 사례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 ■500만 달러 송금에 노건호 깊숙이 개입 한편, 검찰은 건호 씨가 타나도 인베스트먼트의 대주주라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 “해외 상황이라 아직 확인하지 못한 부분”이라고 설명하면서도, 10일 체포한 연 씨뿐만 아니라 미국에 체류 중인 건호 씨도 조사한 뒤 최종적으로 노 전 대통령을 소환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지면서 ‘노무현 패밀리’의 검찰 소환이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노 전 대통령의 가족 4명 중 딸 정연 씨를 제외하고, 지난 2004년 알선수재 등 혐의로 재판을 받은데 이어 이번에는 세종증권 매각비리에 연루된 혐의로 구속기소된 노 전 대통령의 형 건평 씨를 비롯한 3명이 어떤 형태로든 수사를 받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이 중 가장 주목할 인물은 연철호 씨가 2008년 2월 박 회장으로부터 500만 달러를 투자받기 위해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동행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노건호 씨인데, 연루 여부가 검찰 수사의 또 다른 변수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가 박 회장의 돈을 받은데 이어 아들마저 구설수에 휘말리면서 ‘박연차 게이트’는 그야말로 ‘노무현 패밀리’로까지 번지는 형국이다. 사실 ‘박연차 리스트’가 처음 거론됐을 때만 해도 건호 씨는 관심권 밖이었다. 건호 씨는 동국대 화학과에 입학했다가, 군 제대 후 연세대 법대에 들어가 한때 고시공부를 하다였으며, 노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시절이던 2002년에 공채로 LG전자에 입사하여, 대통령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샐러리맨의 길을 걷는 듯했다. 뿐만 아니라, 역대 대통령의 아들들과는 달리, 건호 씨는 2006년 9월에 LG전자를 무급휴직하고 자비로 미국으로 건너가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에 입학하는 등 극도로 몸을 조심하는 처신을 해 왔다는 평가도 나온 게 사실이다. 지난해 10월 유학생활을 끝내고 LG전자에 복직하여, 올해 1월 미국법인 과장 발령을 받아 현재 샌디에이고에서 근무하고 있는 건호 씨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마음이 여려 돈을 줘도 받을 사람이 아니다”라는 평가까지 나올 정도였다. 실제로 건호 씨는 노 전 대통령의 대통령 당선 다음날인 2002년 12월 20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평범하게 사는 선례를 만들겠다”고 공언했으나, 정치권과 검찰 안팎의 얘기를 종합하면 위법 여부를 떠나 노 씨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게 중론이다. 우선, 2008년 2월 건호 씨가 비슷한 연배이자 사촌매제지간인 연 씨와 함께 베트남을 찾아가 박 회장을 만난 부분이 석연치 않다는 시각이 강하다. 이에 대해 건호 씨는 이에 대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500만 달러 투자문제를 얘기하지 않았다”면서 “해외에서 어떻게 사업에 성공하는지 배우기 위해 박 회장을 찾아갔다”고 해명했다. ■박연차, 참여정부에서 사세 크게 확장 특히, 대기업에 근무하다 사업에 뛰어든 연 씨와 한때 창업을 꿈꾸기도 한 것으로 알려진 건호 씨 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질 가능성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노 전 대통령 측은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500만 달러의 실체가 노 전 대통령의 당선축하금이나 대선잔금이라는 의혹마저 나도는 상황에서, 일각에서는 건호 씨의 역할론을 거론하는 추측마저 나오고 있다. 그리고 건호 씨가 2007년 말에 미국 스탠퍼드대 동문들과 실무 견학 차원에서 박 회장의 베트남 공장을 방문했다고 밝힌 것으로 볼 때 간단한 사이는 아니라는 짐작을 가능케 한다. 따라서 정치권에서는 건호 씨가 미국 유학 시절 박 회장의 도움을 받았다는 설까지 나오고 있지만, 건호 씨는 “개인적으로 10원도 쓴 일이 없다. 한 푼 두 푼 주겠다는 사람이 많았지만, 부모님을 생각해서 안 받았다”고 강하게 부인했으며, 노 전 대통령 측도 “건호 씨가 이번 일과 무관하고, 검찰 조사과정에서 진상이 모두 드러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더욱이 봉하마을에 정통한 한 인사는 “연 씨가 검찰에 출두해 500만 달러의 성격이 순수한 투자였다는 점을 입증하면 건호 씨 문제는 아무 것도 아닌 일이라는 점이 밝혀질 것”이라며 “건호 씨가 연 씨와 친척관계인데다 비슷한 나이이다 보니 여러 의심을 하는데,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 하나의 의문점은, 노 전 대통령이 재임기간 중 기자회견에서 “청탁·로비하다 걸리면 패가망신하도록 하겠다”고 말한 바 있으나, 참여정부 핵심 인사들에 이어 본인마저 금품을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노무현-박연차’간의 추가 돈 거래는 없었는지에 대한 관심이다. 특히, 2004년 10월 노 전 대통령이 베트남을 국빈방문할 때나 2007년 9월 남북 정상회담을 할 때 박 회장을 수행원에 포함시킬 정도로 특별히 박 회장을 챙기는 모습을 보이는 등, 참여정부 시절 사세를 크게 확장했다는 점으로 미뤄볼 때 추가로 돈이 전달됐을 개연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뿐만 아니라, 정치권 일각에서는 권 여사가 정대근 전 농협회장에게서 돈을 받았다는 의혹까지 나오고 있지만, 노 전 대통령이 입을 열기 시작한 박 회장을 믿지 못하고 먼저 ‘고해성사’까지 한 만큼, 만약 추가 돈 거래가 있었다면 사과문을 발표할 때 다 했을 것이라는 면에서 추가 돈 거래는 없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결국 ‘노무현-박연차’를 비롯하여 ‘노무현 패밀리’들 사이에 추가 돈 거래가 있었는지를 규명하는 작업은 검찰 몫으로 남게 돼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