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국회 들어 한나라당·민주당·자유선진당 등 원내 1. 2. 3당 사령탑을 맡았던 홍준표·원혜영·권선택 원내대표가 4월 국회를 끝으로 임기를 마치고 나란히 퇴장했다 이들은 지난해 5월 18대 국회 출범과 동시에 임기를 시작해 ‘미국산 수입 쇠고기’ 파도으로 야기된 ‘촛불사태’를 비롯하여 지난 연말 국회외교통일위에서 벌어진 폭력 사태 등 우여곡절 많은 1년 간의 임기를 뒤로 하고 평의원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특히, 비주류 출신이면서도 지난해 5월 ‘쇠고기 파동’으로 정국이 어수선한 시기에 여당 원내 사령탑을 맡아 고군분투했던 홍준표 원내대표는 취임 초기 청와대 참모진과 내각이 사퇴함에 따라 생긴 국정 공백 사태를 비교적 무난하게 메웠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얻기도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첫 해, 18대 국회 첫 여당 원내사령탑인 홍 원내대표에게 주어진 과제는 산더미였으며, 홍 원내대표의 지난 1년은 다사다난 그 자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나라당 홍준표, 실험대에 올랐던 ‘비주류 원내대표’
이명박 정부 출범과 동시에 터져 나온 인사파동, 미국산 쇠고기 수입파동에 따른 대대적 촛불집회 등으로 여권의 컨트롤 타워가 기능을 상실했다는 점에서 그 부담은 가중됐다. 그리고 10여 년의 의원생활을 ‘비주류’로 있다가 처음으로 원내대표라는 선출직 당직다운 당직을 맡았다는 홍 원내대표는 임태희 정채위의장과 함께 ▲촛불정국 수습 ▲당·정·청 시스템 정비 ▲이명박 정부 개혁법안 처리 ▲새 정치지형 속 대야(對野)관계 수립 등에 착수하는 등 초기 국정운영을 사실상 주도하면서 ‘신주류’로 급부상했다. 하지만 지난해 9월 추가경정예산안 처리가 불발되면서 ‘1차 책임론’이 불거진데 이어, 지난 1월에는 개혁입법 추진이 지지부진한 상황에 봉착하자 친이재오계 의원들로부터 퇴진 압박을 받는 등 임기 동안 두 번씩이나 퇴진 위기에 내몰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홍 원내대표는 특유의 결단력 있는 추진력과 돌파력으로 배수진을 쳐서 위기를 돌파했으며, 천신만고 끝에 종합부동산세 완화, 주택공사·토지공사 통합법 등 거의 모든 쟁점법안을 처리해냈고, 언론관계법도 야당으로부터 6월 처리를 약속받았지만 경제개혁법 중 ‘금융지주회사법’을 처리해내지 못하는 ‘옥의 티’를 남기기도 했다. 사실 4선 중진 의원이었지만 늘 비주류 쪽에서 맴돌던 홍 원내대표로서는 ‘홍준표 원내대표’ 카드가 당으로서도, 본인으로서도 일종의 ‘정치 실험’이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또한, 특유의 카리스마와 소신 행보로 인해 당 내부를 결속하고 야당을 설득해야 하는 원내대표로서의 ‘스타일’이 양립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적지 않았던 게 사실이었다. 실제로 홍 원내대표는 충분한 내부 의견 수렴 없이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한다거나 야당에 너무 양보만 한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하지만 홍 원내대표는 종합부동산세 개정안 논의 때는 정부를 정면 비판했고, 용산 참사 당시에는 주류적 견해였던 ‘선 진상규명, 후 책임론’에 반대하는 등 소신있는 제 목소리를 내 야당 측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따라서 각론에서는 평가가 다소 엇갈리지만, 총론에서는 평가가 나쁘지 않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정치적 결정에 따라 숱하게 자리가 갈리는 국내 정치 현실에서 임기를 무사히 마쳤다는 것만 해도 일단 점수를 줄 만한 게 아니냐”고 평가했다. 물론, 홍 원내대표의 공식적인 임기종료 시점은 새 원내대표가 선출되는 5월 21일이지만, 5월 국회가 열리지 않는데다 5월 6일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해외순방에 나섰기 때문에 4월 국회 폐회와 함께 사실상 업무는 종료된 것으로 보고 있다. 홍 원내대표는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방문하기 전 한 라디오 프로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1년에 대해 “촛불사태, 연말연시 폭력사태 때 참으로 힘들었다”면서도 “경제개혁 법안은 거의 다 처리가 됐다는데 만족을 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러나 홍 원내대표는 “지난 1년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국회 폭력을 비롯해 회의진행을 물리적으로 막는 후진적 행태가 불거졌다는 점”이라고 말하면서 당내 소통부족, 지각 원 구성, 폭력국회 등을 이끈 원내전략, 당·정 정책 엇박자 등은 ‘과’(過)로 꼽았다. 남아공을 방문해서 대한태권도협회 회장 자격으로 올림픽에서의 태권도 종목 유지를 위한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는 홍 원내대표는 “이제는 좀 쉬고 싶다”고 주장하지만, 당의 서울시당위원장에 도전해 새로운 정치 행보를 모색할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끌고 있다. ■민주당 원혜영, 수적 열세에도 강경투쟁 잘 이끌어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도 홍 원내대표와 마찬가지로 공식적인 임기는 5월 26일까지이지만, 5월에는 국회가 열리지 않는데다 15일 새로운 원내대표를 선출했기 때문에, 원내 사령탑 역할은 5월 1일 4월 임시국회를 끝으로 사실상 마무리했다. 지난해 5월 18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제1야당의 원내 사령탑으로 선출돼 임기를 시작한 원 원내대표는 여당이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는 여대야소의 지형 속에서도 비교적 선전했다는 평가와 함께, 야성과 원내 전략이 부족해 여당에 끌려 다녔다는 평가를 함께 받고 있다. 하지만 거대여당에 비해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12월과 1월 임시국회에서 85개의 중점법안 처리를 위한 속도전에 맞서 정세균 대표와 함께 대여 강경 투쟁을 이끌며 법안 처리를 저지한 점도 원 원내대표의 공으로 꼽히고 있다. 이에 대해 원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현재의 의석으로는 독자적으로 탄핵 건의안은 물론 장관해임 건의안도 발의할 수 없는 형편없는 숫적 열세에 처해 있지만, 뚜렷한 원칙과 함께 단호하게 노력해 MB 악법 처리를 저지했다”며 “이 성과는 4.29 재보선에서 민주당이 수도권에서 완승하는데 밑거름이 됐다고 본다”고 자평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대선 패배 이후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이 지난 2월에 합치기는 했지만 당이 화학적인 결합을 이루지 못하고 내부 반목을 거듭하는 상황에서 원 원내대표 특유의 ‘화합의 리더십’으로 당내 이견을 무난하게 관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정부·여당의 대대적인 국정 드라이브 속에서도 여당의 협상 카운터파트인 홍 원내대표를 상대로 지속적으로 협상을 벌이면서 국회의 파국을 막았다는 점도 좋은 평을 받고 있지만, 원 원내대표의 리더십은 정부·여당을 견제하기 위한 원내 전략과 야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주요 고비 때마다 시험대에 서기도 했다. 지난해 6월 ‘미국산 수입 쇠고기 파동’으로 장외투쟁을 벌인 뒤 진행된 원 구성 협상에서 당시 현안이었던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안을 상임위 구성과 연계하지 않아 당내 반발을 사는 바람에 협상이 번복되기도 했다. 그리고 원 원내대표는 지난 연말 연초 쟁점법안 협상 때도 비타협을 고수하는 당내의 강경 여론에도 불구하고 유화적 태도로 협상을 진행하는 바람에 당내 비판을 감수해야 했다. 따라서 당내에서는 당시 민주당이 극력 저지했던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이 상임위를 통과해 본회의 처리를 앞두고 있고, 미디어 관련 법안도 6월에 처리해 주기로 약속하는 등 결과적으로 “얻은 게 없지 않느냐”는 비판도 뒤따르고 있다. 원 원내대표도 “언론악법 저지를 마무리하지 못한 상태에서, 임기를 관두게 돼 착잡하다”고 말하면서 당분간 다른 당직을 맡지 않고 상임위인 환경노동위 활동에 충실하면서 내년 지방선거에서 수도권 지역의 지지세를 넓히기 위해 인재 영입과 전략 수립 등에 매진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자유선진당 권석택, 특유의 중재력으로 거대 두 당 이끌어
원내 제3당인 자유선진당 역시 5월 7일 의원총회에서 류근찬 의원을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함에 따라, 홍준표·원혜영 의원들과 같이 했던 18대 국회 1기 원내 사령탑 멤버인권선택 원내대표가 지난 1년 간 18대 국회 개원 초기의 험난했던 여정을 뒤로 하고 물러났다. 물론, 자유선진당의 의석수는 원내교섭단체에도 못 미치는 18석이었으나, 두 거대 정당인 한나라당과 민주당 사이에서 위기 때마다 중재역을 톡톡히 한 것은 상당 부분 권 원내대표의 공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권 원내대표가 지난해 불거진 ‘미국산 수입 쇠고기 협상 파동’ 당시 여야 간 국정조사특위 도입 합의를 끌어낸 숨은 공로자였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고, 개원협상 때도 한나라당과 민주당 사이에 캐스팅보트로서 민주당을 등원시키는데 일정한 역할을 했으며, 특히 창조한국당과 공동 교섭단체를 구성한 작년 8월 권 원내대표의 중재력은 더욱 빛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심지어 지난 연말 국회 외교통상통일위 폭력사태에서 빚어진 1차 입법전쟁 때 권 원내대표는 50여 차례 물밑 접촉, 8차례 공식회담, 3차례 비공식회담 등 60여 차례가 넘는 교섭단체 간 협상을 주도하고 7~8건의 중재안을 내놔 합의문의 70% 이상을 자신이 제시한 안일 정도로 ‘입법전쟁 휴전’의 일등공신이었으며, 만약 권 원대표의 중재력이 아니었다면 여야 타협안을 도출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정체성이 이질적인 창조한국당과 공동 교섭단체를 구성한 이후 일부 마찰음이 나오기도 했지만, 원만한 조정력으로 별다른 무리 없이 양당 간 이견을 최소화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따라서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는 올해 1월부터 공동교섭단체 원내대표가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로 바뀌자 “협상 파트너로 인정할 수 없다”며 권 원내대표의 협상참여를 요구하였고,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도 “선진당은 우리의 동지”라며 각별한 신뢰를 보이기도 했다. 권 원내대표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 “이제부터는 평의원으로서 의정활동에 전념하면서 그 동안 다소 소홀했던 인적 관리와 지역구 챙기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겠다”고 밝히면서, 정치권 일각에서 떠들고 있는 내년 지방선거 대전시장 출마 여부에 대해서는 “지역구와 대전지역의 여론 추이나 당내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