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부터 증권사의 종합자산관리계좌(CMA)지급결제 기능이 현실화됨에 따라 은행과 증권사 간에 긴장과 대립이 고조되고 있다. 우선 은행들의 견제가 한층 강화됐다. 6월 28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이달 들어 시중은행들이 증권사의 CMA 연동 서비스와 관련, 증권사와 고객 모두를 대상으로 ATM 수수료율의 대폭 인상을 결정할 태세이다. 그리고 은행 PB점들을 중심으로 고객대상 펀드 판매 권유 업무도 증권사와의 제휴 상품을 줄이고 자산운용사와 직접 제휴하는 방법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고객이 증권사에서 가입하는 펀드는 사실 증권사에서 운용하는 것이 아닌 자산운용사에서 운용 관리하는 상품이 대부분이며, 증권사는 이들 상품을 위탁받아 고객의 투자성향에 맞춰 최대한 가입을 유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은행에서 판매하는 펀드 상품도 자산운용사에서 만든 펀드를 증권사에서 받아 판매하고 있는 것. 이 때문에 은행에서 가입하는 펀드에는 은행 수수료 및 자산운용사의 운용보수 외에도 증권사에서 가져가는 펀드 수수료도 일부 포함돼 있었다. 현행법상 자산운용사들은 공모형 펀드를 생산·운용하고 있지만, 스스로 찾아오는 사람들을 제외한 불특정 일반 투자자들에게 적극적으로 가입을 직접 권유하는 영업행위는 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 지금까지 이들에 대한 영업행위는 증권사에 위탁해 왔으며, 은행과 보험회사 펀드 판매 혹은 펀드 판매 권유를 위해 자산운용사가 아닌 증권사와 제휴해 왔다. 만약 은행이 증권사를 배제하고 전국 자산운용사들과 직접 거래를 튼다면, 자산운용사의 영업 창구는 기존 증권사에서 증권·은행으로 늘어나게 되고, 상대적으로 증권업계와의 사실상 예속관계를 청산할 수도 있다. 이는 증권업계 영역에 대한 중대한 침해 행위로 규정할 수 있는 부분. 이 같은 부분에 대해 증권업계는 “은행이 CMA 지급결제 서비스의 본격 시행을 앞두고 이를 견제 혹은 방해하려는 공작”이라며 성토하고 있다. 심지어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7월부터 시행되는 CMA 지급결제 서비스 가동을 앞두고 예금자산이 CMA로 이동하는 것을 막아보려는 치졸한 시도”라고 말했다. 그러나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CMA 견제 차원이 아닌, 세계적 금융불안, 유가 및 원자재 폭등, 기업 구조조정 등 점점 악화되고 있는 은행들의 경영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자구노력의 일환”이라고 주장한다. 이 관계자는 “최근 재계 구조조정 및 세계적 금융불황 등 금융사업의 리스크 요인이 증가하고 있어 인정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안정적인 수익구조 확보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또 다른 관계자는 “우리가 CMA와 관련하여 증권사와 ‘쪼잔한’ 싸움을 벌일 이유는 없으며, 수수료 인상 등을 포함하여 현재 은행들이 시행 검토하는 모든 조치들은 일단 새로운 수익원 창출 및 기존 비용 절감 등을 통해 수익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자구노력 차원”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예전에는 이 같은 노력을 할 때에도 전력적 협력관계에 있는 다른 업체들의 입장에 대한 고려가 있었지만, 증권업계의 경우 CMA를 통해 예금의 기능을 가져가겠다고 선언한 이상 이 같은 고려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증권사, “CMA 앞세워 은행 넘어보자” CMA에 대한 증권업계의 공격적 마케팅이 한창이다. 지금까지 CMA는 증권 투자 고객들이 자신들의 돈을 특정 종목 혹은 펀드에 투입하기 전에 보관하는 예비 주머니 성격이었지만, 지금은 그것을 완전히 탈피하고 있다. 실제로 증권사는 CMA 잔고 금리를 10% 수준까지 올리는가 하면, 최근에는 카드사와 손잡고 고금리에 카드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특히 카드사와 손잡고 펼치는 CMA 공세는 은행들이 ATM 수수료 인상, 펀드 운용의 증권사 배제 고려 등 강력한 대응을 유도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이는 증권사와 카드사가 연합해서 탄생한 CMA가 일반 회사원들에게 매력적인 소비금융 운용 수단이 되기 때문. 지난해 금융감독원에 의하면, 가계소비의 40% 이상이 카드 결제라고 나타날 정도로 일반 소비자들에게 카드의 비중은 크다. 지금까지 고객들은 CMA 계좌를 증권 투자를 위한 대기소 정도로만 활용해 왔지만, 이번 카드와 강력히 연계된 슈퍼 CMA 고객은 그럴 필요가 없다. 이 같은 장점은 일반 직장인들에게 커다란 메리트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많은 직장인들이 자신의 월급통장을 은행에서 증권사 CMA로 옮기고 있는 실정.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의 직장인들은 노후대비 등의 차원에서 은행 예·적금 이상의 공격적 투자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지만, 이를 실현시키기에는 기본 예산이 부족하다”며 “만약 슈퍼 CMA에 급여를 비롯한 자신의 수입을 예치한다면 카드 등을 통해 사용한 생활비도 빠져나가고 남은 돈으로 주식에도 투자할 수 있고 그대로 가지고 있더라도 은행 예금보다 더 큰 이자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은 증권사들이 카드사와의 제휴를 강력하게 추진하게 된 배경 자체가 은행의 급여통장을 끌어들이기 위한 목적이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는 은행의 월 수신고의 상당 부분이 월급통장인 점을 감안하면 큰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월급통장 즉 보통예금 실적은 은행의 가장 중요한 안전자산이다. 예금 수신고가 줄어들게 되면 은행들은 자산운용의 지속을 위해 CD(양도성예금증서), 은행채 발행 등을 통해 부족해진 자산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지난 2004년 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을 중심으로 시작된 리딩뱅크 경쟁 당시 남발했던 은행채가 은행 부실을 가속화시킨 바 있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과 은행권은 은행채 발행 자제를 지도해 왔다. 하지만 지난 2007년에 제정된 금융산업과 자본시장에 관한 법률(이하 자본시장통합법)에서 CMA 지급결제 허용이 법적 문구로 삽입된 이후 상당수 월급통장이 은행에서 CMA 계좌로 이동하자 수신고가 현저히 줄어들면서 다시 은행채를 과다하게 발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했었다. 이 같은 경험이 은행들에게 월급통장의 CMA 이전 움직임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게 만든 것. 신영증권 박은준 연구원은 “대기업 그룹이 계열 증권사에 월급통장 거래를 시작하면 현재 38조 원 수준인 CMA 잔액이 2013년에는 100조 원을 넘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은행, “CMA 앞세운 증권사 경거망동 손봐줄 것” 이 같은 증권사 CMA의 공격에 은행들은 초반부터 강력 대응하고 있다. 자동화기기의 CMA 서비스 수수료를 증권사와 이용고객 양측 모두에게 전면 인상한다는 방침을 수립했다. 이는 현재 우리은행에서 확정된 사안. 그리고 은행권에서는 우리은행의 이번 행보에 대해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만약 우리은행의 CMA에 대한 ATM 수수료 인상에 대해 금융감독원·공정거래위원회 등의 행정적 제재가 없을 경우 국민·신한·하나·씨티·외환·SC제일 등 주요 시중은행에게로 빠르게 전이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정부가 우리은행에게 불공정 제재 처분을 내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이미 은행 보통예금 통장과 증권사 CMA 간 전쟁에서 은행권이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을 우군으로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들은 은행 예금통장에 대한 간접 지원사격도 간간이 해주고 있는 실정이다. 금융감독원은 불공정 경쟁을 방지하기 위한 미스터리 쇼핑(현장 암행감시)에 나서기로 했다. 이 같은 불공정 경쟁이란 증권과 예금을 강력하게 통합한 마케팅을 의미하며, 직접적으로 지적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CMA의 영업활동을 감시하겠다는 의미다. 이에 앞서 한국은행은 더 직접적인 발언을 했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6월 19일 시중 은행장들과의 만남에서 “CMA가 금융시장에 혼란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은행권에서는 “우리은행에서 시작된 증권사에 대한 ATM 수수료 인상은 하나의 시작”이라며 “앞으로 은행과 증권사 간 제휴를 통해 만들어진 많은 금융복합상품들의 구조가 증권사를 제치는 방향으로 바뀔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사실 증권업계가 은행·보험 등 기타 다른 업종에서 침탈할 수 없는 절대 고유의 영역은 코스피·코스닥 시장 거래 중계밖에 없다”며 “나머지 부문은 자본시장통합법 체제 아래에서 모두 개방된 것이나 진배없기 때문에 조만간 CMA 외의 모든 영역에서 은행권이 결투를 신청할지도 모른다”고 입을 모은다. 금융당국, 국공채 시장 불균형 우려해 CMA 압박 또 금융당국에서는 증권업계의 CMA의 공격적 마케팅에 대해 내부적으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우선 CMA는 예금자보호법상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에, 리스크가 상존하는 주식, 신용등급이 낮은 회사채, 선물, 현물, 옵션 등에 대한 투자가 제도적으로 금지되고 있다. 결국 CMA가 운용할 수 있는 범위는 MMF(Money Market Fund)와 함께 국공채 등 우량채권에 제한되는 셈. 자산운용 시장의 관점에서 은행의 보통예금이 CMA로 몰린다는 것은 기존 국공채 시장에 과한 자금 공급이 넘친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국공채 시장은 자산운용업계의 안전성 펀드와 은행의 MMF, 기타 안전성 기업자산 운용 등에서 투입된 자금들이 나름대로 수요·공급의 균형을 맞춰 왔다. 만약 이 같은 균형이 깨어진다면 철저한 수요·공급과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투자자산업계의 생리상 국공채 가격 폭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는 채권 발행기관인 기획재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수익적 관점에서는 대단히 환영할 만한 일이기는 하지만, 자칫 국공채 시장의 붕괴와 그에 따른 금융시장의 불안으로 이어질 경우 미국 월가의 금융위기, 일본의 버블 붕괴와 같은 불안이 제기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국가 경제 운용 면에서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될 수 있다. 그렇다고 CMA에 대한 자산운용 규제를 풀어주기도 힘들다. 금융당국이 CMA의 급격한 성장에 우려를 표명하면서 은근히 은행의 손을 들어주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