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6호 박성훈⁄ 2009.07.14 15:22:02
7월 7일부터 7박8일 간 이루어진 이명박 대통령의 폴란드-이탈리아-스웨덴 등 3국 순방은 다양한 외교적 성과에 대한 기대를 모으며 진행됐다. 이번 유럽 순방의 주된 목적은 9일 이탈리아 중부 라퀼라에서 열리는 선진 8개국(G8) 확대정상회의 참석이다. 지난해 일본에 이어 2년 연속 G8 주최국 초청을 받은데서 우리나라의 높아진 위상을 알 수 있다. 기후변화 등 세계 공통으로 주어진 현안에서 우리나라 외교 역량을 한층 극대화한 것으로 평가된다.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여부도 이번 순방의 큰 관심사로 떠올랐다. 유럽 순방 최대 관건 ‘한·EU FTA’ 특히 눈여겨볼 부분이 한-EU 자유무역협정(FTA)이다. 정부는 이 대통령의 순방 마지막 날인 14일 협상 타결을 목표로 막판 협의를 벌였다. 독일의 경우 이 대통령의 순방 직전에 긍정적 입장으로 돌아섰다. 이탈리아도 이 대통령이 총리를 만나 설득하면 동조 입장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이 대통령은 EU 의장국을 맡게 된 스웨덴을 방문, 13일 프레드리크 라인펠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화룡점정’을 이룬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이 대통령의 마지막 유럽 순방지인 스웨덴에서 13일 프레드리크 라인펠트 총리와의 정상회담 때 구두 타결선언을 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으나 실현 여부는 확실치 않다. 정부로부터 최종안을 전달받은 EU 집행위원회는 마지막 쟁점인 관세환급 등의 문제를 가지고 내부 협의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한-EU FTA 협상은 대부분의 사안이 이미 합의점을 찾아 사실상 합의 직전 단계”라며 “관세환급 등에 대한 EU 집행위 내부의 합의가 도출되면 곧바로 타결을 선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희망하는 협상 타결 시기는 8월까지이다. 이 대통령은 7월 7일 <유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EU FTA 협상과 관련, “오랫동안 서로 협의해 왔으므로 대략적인 내용은 합의됐다”고 공개하고, “몇몇 국가의 의견을 종합하는 일이 남았다. 가능하면 7,8월 중에 최종합의를 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우리 정부와 EU와의 FTA 협상은 여러 국가 협의체와의 협상인 만큼 이해조정이 쉽지 않다. 우리 정부에서 EU 측과 최종협의를 진행하는 동안 EU에서는 회원국들을 접촉해 각 나라의 최종 입장을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김은혜 부대변인은 “일부 국가가 완전히 동의 입장을 표명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지속적인 설득과 설명 과정이 병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폴란드·헝가리·이탈리아 등 FTA 설득 시도 지난 4월 초에 이 대통령은 런던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한·EU FTA 협상 타결을 기대했지만, 일부 조항에 대한 최종 의견 조율에서 막혀 FTA 타결 발표를 연기한 바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이 EU 의장국을 새로 맡은 스웨덴을 이번 유럽 순방의 마지막 방문국으로 선택하고 13일 정상회담을 하는 것은 한·EU FTA와 무관하지 않다. 폴란드와 이탈리아는 관세환급 등의 문제로 한-EU FTA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양측 간 마지막 쟁점인 관세환급은 원자재나 부품을 수입해 완성품을 수출할 경우 해당 원자재에 대한 수입관세를 돌려주는 제도이다. 원자재 수입과 공산품 수출을 많이 하는 한국으로서는 이 제도의 허용을 원하지만, EU 국가들은 대부분 이를 꺼리고 있다. 헝가리도 한·EU FTA에 대해 소극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와 관련하여 “현재 폴란드와 이탈리아·헝가리가 FTA에 대해 강하게 지지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라고 언급했다. 이번 유럽 순방에서 이 대통령의 설득 행보가 주목받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대통령이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G8 확대정상회의 참석을 위한 유럽 순방을 폴란드·이탈리아, 그리고 EU 의장국인 스웨덴 순으로 계획한 것도 결국 FTA에 부정적인 EU 회원국을 설득하기 위한 작업이라는 설명이다. 이 대통령은 이탈리아 10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이 문제를 집중 설득했다. 헝가리는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별도로 설득의 특임을 맡았다. 폴란드, FTA에 전향적 입장 그 결과, 폴란드의 레흐 카친스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FTA에 대한 폴란드의 전향적인 입장을 끌어내는 성과를 만들어냈다. 7월 8일 오전 한-폴란드 정상 간 단독·확대회담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한·EU FTA 체결에 폴란드가 협력해줄 것을 적극 설득했고, 카친스키 대통령은 “한·EU FTA 체결이 양국 간의 경제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한·EU FTA가 디테일에 있어 합의돼야 할 사항이 있겠지만”이라는 단서가 달렸으나, 폴란드가 FTA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으로 돌아선 것은 최종 협상까지 거쳐야 할 관문 하나를 넘은 성과로 해석된다.
도날드 투스크 폴란드 총리도 이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긍정적인 메시지를 보냈다. 투스크 총리는 양국 간의 긴밀한 경제협력 관계가 한·EU FTA를 통해 더욱 활발한 투자와 교류 증진으로 이어질 것이라는데 의견을 같이 했고, 특히 “앞으로 양국의 투자환경이 격상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정상회담 하루 전인 7일 한·폴란드 경제협력포럼에서 우리나라 기업이 폴란드에 매우 활발하게 진출해 있고 2만여 개의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있다며, 한·EU FTA가 체결되면 한국과 폴란드의 경제협력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폴란드에 대한 수출이 41억1000만 달러, 수입이 3억 달러여서 우리나라가 절대적으로 우위에 있다. 폴란드는 EU 회원국이지만 유로존에는 가입돼 있지 않은 상태이다. 2010년을 목표로 유로존 가입을 시도하고 있지만, 향후 3∼4년은 더 걸릴 것이란 게 현지의 시각이다. 따라서 물가 수준도 다른 EU 회원국보다 낮아 가격경쟁력 면에서는 우위에 있다. 우리 기업들은 대부분 폴란드 내수시장보다는 여기에 진출한 우리의 기업 공장에 납품하는 형태로 사업을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폴란드는 우리나라가 큰손 투자자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기업은 앞으로도 유럽 시장 공략의 생산기지로서 폴란드에 추가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FTA가 체결되면 한국 기업들의 폴란드 투자 효과는 반감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특히 마지막 쟁점인 관세환급이 이뤄질 경우 더욱 그렇다. 부품 등 원재료를 수입할 때 낸 관세를 완제품으로 만들어 수출할 때 돌려받는 관세환급을 허용할 경우, 우리나라에서 부품을 수입해 완제품을 만들어 파는 우리 기업 입장에서 생산 기지를 둘 유인은 더 적어진다. 유럽 서비스 업계 〃한-EU FTA 조속히 타결해야〃 한-EU FTA가 발효될 경우 최대 수혜자가 될 것으로 기대되는 유럽 서비스 업계에서는 FTA 협상의 조속한 타결을 촉구하고 있다. 은행과 보험·통신·관광 등 역내 서비스 산업을 아우르는 이익단체인 ‘유럽 서비스 포럼’(ESF)은 7월 6일 주제 마누엘 바로수 집행위원장에게 서한을 보내 한-EU FTA의 조속한 체결을 촉구했다. 서비스 업계에서 한-EU FTA가 일부 제조업계의 반대로 교착상태에 빠진 상황을 “더는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다”며 행동에 나선 것이다. ESF는 서한에서 “양자 간 통상 장벽이 없어지면 한국에 대한 서비스 수출이 크게 증가할 것이며, 지금과 같은 경제 상황에서는 특히 FTA 체결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서한은 “EU는 한-EU FTA 협상을 종결할 현재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하며, 유럽 경제에 도움이 될 ‘분명한’이득을 상실하지 말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협상 주체(집행위)와 회원국들은 미해결 상태인 쟁점들을 만족스럽게 해결할 방법을 조속히 찾는 동시에, 규모가 더 크며 협정 체결로 더 큰 경제적 이득을 볼 산업분야를 최우선시해야 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EU 27개 회원국 전체 국내총생산(GDP)에서 서비스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71%, 고용에서도 67%를 차지하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집행위와 회원국들은 서비스 업계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 대통령, 유럽 자동차 업계 설득 시도 반면, 한-EU FTA 협상을 가장 꺼리고 있는 산업분야는 자동차 부문이다. 자동차 산업은 한국과 유럽연합(EU) 간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막바지 단계에서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폴크스바겐·BMW·피아트 등 유럽의 대표적 자동차 업체들을 대변하는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는 7월 8일 한·EU FTA가 사실상 값싼 한국 제품이 유럽에 들어올 수 있는 문을 열어주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ACEA는 특히 원자재나 부품을 수입해 완성품을 수출할 경우 해당 원자재에 대한 수입관세를 돌려주는 관세환급 제도에 반대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들은 이 제도가 인정되면 한국의 자동차 업체들이 중국 등 다른 아시아 국가로부터 싼 값에 부품을 사들여 완성 자동차를 더 싸게 판매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한국이 유럽 자동차 제조업체에 적용되고 있는 국제 기술표준 등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만큼, 이번 협정은 한국 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충분히 향상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ACEA는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에 5억 명이 넘는 유럽 시장을 개방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세계 최대 규모인 유럽 자동차 산업은 지난해부터 극심한 불황으로 수요가 급감하여 고전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생산하는 자동차의 73%를 수출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유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유럽 자동차 시장의 우려에 대해 “한국 차는 값싼 차가 아니며 가격 면에서 유럽 차와 비슷하다. 가격으로 경쟁하던 시대는 지났다”면서 “한·EU FTA가 체결되면 한국의 유럽 차 수입도 더 늘어날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한·EU 양쪽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폴란드와 에너지·방산 사업 협력키로 이 대통령은 에너지·방산 산업분야에서도 폴란드의 실질적 협력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7월 8일 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과 가진 단독 및 확대 정상회담에서 LNG(액화천연가스)·원자력발전소·재생에너지 등의 분야에서 실질적인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데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폴란드가 오는 2013년 완공을 목표로 추진 중인 최초의 LNG 터미널 건설 사업과 2020년 완공 목표인 원자력발전소 1∼2호기 건설 사업에 우리 기업의 참여를 요청했고, 카친스키 대통령은 이 대통령의 요청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양국 정상은 또 올해 말이나 내년 초로 예상되는 폴란드의 고등훈련기 16대(10억 달러 규모) 도입 사업에 한국 방위산업체가 공급자로 참여하는 방안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등 방위산업 분야의 협력도 한층 강화키로 했다. 온실가스 감축 등 국제협력 기여의지 피력 이 대통령은 이탈리아의 로마 인근에 있는 라퀼라에서 열린 G8 확대정상회의에서 첫 세션인 기후변화주요국회의(MEF)에 참석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202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발표하기 위해 국내에서 컨센서스 도출을 진행하고 있으며 올해 중에 이를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어려움이 있더라도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동참하겠다”며 “한국은 국제협력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11월까지 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온실가스 감축계획 수립 시점을 밝히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기후변화 개발도상국 중에서도 최초이다. 이와 함께 ▲스마트그 리드(지능형 전력망) 기술의 선도국이 된 점과 ▲녹색성장 5개년 종합계획, ▲지난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각료 이사회의 한국 ‘녹색성장 선언문’ 채택, ▲지난 1월부터 시행된 녹색뉴딜 정책 등 기후변화와 관련한 우리 정부의 노력을 알렸다. 이 대통령은 또 무역 세션에선 세계 각국의 이해가 엇갈려 진전을 멈춘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이 12월 제네바에서 개최되는 WTO 정례각료회의를 계기로 타결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국제교역의 촉진을 위한 최선의 처방은 도하라운드 협상의 조기타결”이라면서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도하라운드 협상 타결에 대한 정상들의 정치적 결의”라고 강조했다. 이 밖에도 이 대통령은 이탈리아 방문 기간 중 캐나다와 러시아·호주·이탈리아의 정상들과 양자 정상회담을 갖고 북한의 핵 도발을 막기 위한 공동 대처 방안을 논의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환담 이 대통령은 G8 확대정상회의 첫날 바티칸의 교황청을 방문해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접견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현직 대통령으로선 세 번째였다. 이 대통령은 교황에게 선물로 김 추기경의 시신이 안치된 관 옆에서 정진석 추기경과 김옥균 주교가 기도하는 모습을 담은 액자와 ‘원죄 없는 성모마을’에서 수도자가 묵상하는 모습의 사진을 증정했다. 교황은 이 대통령에게 17세기 성 베드로 성당과 베를리니 기둥을 그린 스케치화를 선물했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지난 2월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 미사를 교황 성하 명의로 거행하도록 배려해준데 대해 고마움을 표시했다. 교황은 고 김 추기경에 대해 “30여 년 전에 독일에서 같이 공부한 친구이자 훌륭한 천주교 지도자”라고 평가했다. 이 대통령은 “가톨릭 교회가 남북통일과 분단국가의 화해, 한반도 정세 안정을 위해 많은 기도를 해 달라”고 요청했고, 베네딕토 16세는 “굶주리고 있는 북한 주민들과 남북통일을 항상 마음에 두고 기도하겠다. 남북평화 문제는 함께 노력해 나가자”고 말했다. 또, 이 대통령과 교황은 세계 각 나라 안팎에서 빈부 격차가 벌어지는 괴리에 대한 선진국의 역할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