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들의 가장 큰 소망은 고른 영양섭취로 자녀들이 건강하게 성장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편식습관으로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 편식아동들이 가장 기피하는 음식은 채소이다. 채소가 식탁에 오르면 얼굴을 찌푸리거나 손으로 코를 막는 아이들도 많다. 어린이들 중 비타민·미네랄·식이섬유 등 건강에 유익한 성분이 채소에 많이 들어 있다는 사실은 알아도 채소를 먹는 것은 거부하는 아이가 많다. 채소가 포만감을 주는 음식이 아닌 것은 사실이다. 대다수의 채소는 맛이 쓰거나 씹는 감촉이 거칠어 아이들이 좋아하는 맛과는 거리가 멀다. 자녀의 식습관에 대해 고민하는 부모들조차도 어릴 때부터 쓴맛을 좋아했던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채소를 제외하고도 맛있는 음식이 많다. 그렇다고 햄버거나 초콜릿 등 서구형 음식만 먹어 비만·당뇨·고혈압 등 어린이 성인병이 급증하고 있는 현상을 보면, 자녀가 원하는 음식만 먹도록 내버려둘 수 없다는 것이 부모의 고민이다. 예전에는 음식이 풍족하지 않았어도 어린이들이 만성 성인병에 걸리는 일이 없었다. 채소를 많이 먹어서라고 볼 수 있다. 과일로 채소를 대체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과일은 당분이 많아 과다 섭취하면 비만을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채소는 과일에는 없는 영양소와 건강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기도 하다. 녹황색 채소에 든 카로티노이드를 섭취하면 체내에서 비타민 A로 전환돼 아이들의 성장과 눈의 기능 향상을 돕는다. 푸른 잎 채소에 든 엽산은 세포의 합성·분열에 관여하며 적혈구 생성에도 필수적이다. 시금치와 순무·콩 등에 든 칼슘은 뼈의 성장을 돕고, 식이섬유는 변비 예방과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효과가 있다. 채소에 들어 있는 마그네슘은 효소의 구성 성분으로 신경 안정 작용도 한다. 이같이 여러 영양분을 함유한 채소를 편식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먹일 수 있을까? 1. 꾸준히 먹이려는 ‘뚝심’ 자녀들이 채소를 먹지 않으면 일단 식사를 시키기 위해 금세 고기나 소시지 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내놓는 부모들이 있다. ‘일단 밥부터 먹여놓고 보자’는 식이다. 또 맞벌이 부부가 많은 가정 현실에서 손이 많이 가는 채소 음식을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른 포기는 금물이다. 채소를 거부한다고 부모들이 포기하면 자녀들의 식습관은 오히려 악화될 수 있다. 참을성을 가지고 계속 자녀에게 권하면 그 채소에 익숙해지게 마련이다. 국민대 정상진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많은 부모들이 편식아동에게 채소 먹이기를 쉽게 포기한다”며 “어린이에게 다양한 채소를 계속 맛보게 하면 채소에 대한 거부감은 확실히 줄어든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직장생활을 하는 엄마들이 많아 아이들에게 번번이 채소 반찬을 만들어주는 일이 쉽지 않다. 한국의 전통 반찬인 나물도 영양가는 많지만 의외로 수고로운 음식”이라며 “식품회사에서 파는 야채 반찬이나 반조리 형태로 파는 음식을 골라 먹이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채소 반찬을 노출시키는 방법도 중요하다. 애니메이션을 활용하는 것도 또 다른 방법이 될 수 있다. 인기 만화 주인공 ‘뽀빠이’가 시금치를 먹고 힘이 세져 착한 일을 하는 모습은 이를 보는 아이들이 시금치를 인식하는 데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2. 채소 섭취도 조기교육이 중요 어릴 때 채소를 먹는 식습관을 갖게 해주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엄마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채소를 이유식의 형태로 먹이는 것이 자란 뒤의 편식 예방에 효과적이다. 이유식 때 채소를 맛보지 않은 아이는 커서도 채소를 기피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채소를 많이 먹어봐야 한다. 우리 어른들도 태어나면서부터 채소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웰빙 열풍으로 건강을 생각하는 풍조 덕분에 야채를 많이 먹기도 하지만, 기호는 많이 먹어본 식품에 대해 생기게 마련이다. 어릴 적부터 마늘 냄새에 익숙한 한국인들은 김치를 좋아하지만, 외국인들은 처음 한국 음식을 접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기호가 발달하지 않은 것은 많이 먹어보지 않아서 그렇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영아기에는 좋은 식습관을 들이기가 더욱 쉽다. 특히 만 1세 전후의 아이는 아직 특정 식품에 대한 기호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이다. 정상진 교수는 “2살 이후부터는 자아가 생기면서 새로움을 두려워하는 이른바 ‘네오포비아(neo phobia)’가 생긴다. 그 이전의 아이들은 주변에 있는 것은 무조건 입에 넣기부터 할 정도로 자극을 받아들이는데 적극적이다. 그때 좀더 다양한 입맛에 길들여 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오이·당근을 스틱처럼 썰어 아이의 손에 장난감처럼 쥐어줘서 아기가 채소의 향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3. 과학적으로 설득한다 자녀가 학습을 할 수 있는 연령이 됐다면 채소를 먹어야 하는 이유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방법도 활용될 수 있다. 아이가 자주 보는 신체 백과사전을 이용해 채식의 장점을 알려주거나 채소와 관련된 놀이를 하는 것도 채소에 대한 거부감을 누그러뜨리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정 교수는 “식탁에 자주 오르는 채소가 식물의 뿌리·줄기·잎·씨앗·꽃 중 어떤 부분인지 아이가 분류하도록 하는 놀이를 하거나 장을 볼 때 자녀에게 직접 채소를 고르게 하고 조리에도 참여시키면 채소에 친근감을 갖는다”고 말했다. 호박·당근·브로컬리·계란·흑미 등을 이용해 알록달록한 음식을 만들면 아이의 흥미·호기심을 이끌어낼 수 있다. 특히 붉은색·주황색은 어린이의 식욕을 북돋워준다. 채소용 식기는 아이가 좋아하는 캐릭터 식기로 바꿔본다. 영양 전문가와의 일대일 상담을 주선하는 것도 시도해볼 만한 방법이다. 4. 같이 키워보기 아이들과 함께 화단에서 직접 채소를 재배해보는 것도 편식을 없애기 위한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화단에 간단하게 키울 수 있는 상추나 고추·들깨 등을 심어 아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키운 것에 대해 긍지를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여력이 된다면 교외의 주말농장을 방문해 아이들이 자연과 놀면서 채소들에 익숙해지도록 할 수도 있다. 정 교수는 “아이들이 스스로 만든 것에 대한 성취감을 느끼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뿌듯하게 만들면 동기가 부여된다. 채소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갖도록 해서 편식 탈출을 유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녀에게 채소를 무조건 먹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다. 수원대 식품영양학과 임경숙 교수는 “강요하면 그 순간엔 억지로 먹지만 채소에 대한 거부감·불쾌감은 더욱 커진다”며 “싫어하는 채소를 먹이기 위해 아이가 선호하는 아이스크림·초콜릿 등 다른 음식으로 보상하는 것도 잘못된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아이가 채소를 먹었을 때 최선의 보상은 칭찬과 환한 웃음이다. 싫어하는 채소 대신 다른 채소를 먹자고 자녀와 ‘타협’을 하는 것은 괜찮다. 아이가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어서이다. 5. 작게 썰어서 숨겨 먹이기 가능하면 생채소를 먹게 하고, 애들이 안먹으면 섞어서 먹이는 볶음밥 등을 활용한다. 서울 강서초등학교 김남주 영양교사는 “채소를 잘게 다져 비빔밥·주먹밥·볶음밥에 넣거나 채소에 튀김옷을 입혀 본모습을 감추는 방법도 있다”며 “눈에 보이는 채소는 다 골라내지만 야채전·비빔밥·채소주스 등은 맛있게 먹는 아이가 의외로 많다”고 조언했다. 이런 아이는 대부분 채소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먹는다. 자녀가 ‘채소가 너무 질기다’(식이섬유가 많이 들어 있어서)고 불평하면 나물·국·죽 등을 만들 때 잘 익히는 것이 좋다. 채소를 숨겨서 어린이의 기호도를 높인 음식 메뉴로는 오징어 통구이(마늘·생강)와 어묵 채소 튀김(시금치·당근·대파), 생떡국(배추·대파·마늘), 신김치 스파게티(신김치·양파·피망·마늘), 삼겹살 깻잎 초회(깻잎·당근·대파·마늘·고춧가루) 등이 있다. 익히거나 데치면 식이섬유가 끊어져 씹는 느낌이 좋아진다. 채소의 강한 냄새는 튀김을 하면 약해진다. 어린이는 음식을 뭔가에 찍어 먹기를 좋아한다. 자녀가 익힌 나물을 싫어하면 생채소와 쌈장·소스 등을 식탁에 함께 올려 찍어 먹게 한다. 채소에 된장·간장·고추장·카레 등을 넣어 찌개를 끓이거나 조림 음식을 만들어도 어린이의 기호를 높일 수 있다. 어린이가 좋아하는 토마토 케첩, 마요네즈, 간장 소스로 샐러드를 만드는 것도 채소 기피증을 완화시키는 데 유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