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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치맛바람, ‘成人미성년자’ 양산

대학 수강신청에서 취업준비까지 부모들이 발벗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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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31호 박성훈⁄ 2009.08.18 14:44:55

지난 학기가 끝날 무렵, 서울 시내 모 대학의 김 교수는 연구실에서 예상치 못한 연락을 받았다. 전화의 내용인 즉, “우리 아이 학점이 C+가 나왔다. 출석도 다했고 기말고사도 나쁘지 않게 봤다는데, 왜 이런 성적이 나왔느냐”고 따지는 전화였다. 전화를 건 사람은 학생이 아닌 그의 어머니였다. 지난 4월 서울의 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의 입학설명회장에서도 학부모들의 모습이 심심치 않게 발견됐는데, 한 대학생 자녀를 둔 주부는 “지난해 합격생들 중 미국 명문대 그룹인 아이비리그 애들이 많아서 우리 애가 풀이 죽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질문했다고 한다. 수강신청 대신 해주는 부모 장성한 자식들을 품에 안은 엄마들의 치맛바람이 불고 있다. 자녀의 학교 생활과 진로 등에 개입하는 부모들이 많아지면서 대학가에는 ‘나이 먹은 미성년자’ 대학생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부모들의 지나친 영향력 행사에 대학생들이 독립된 인격체로 성숙하는 시간이 유예되는 것이다. 대학생 자녀를 성인으로 생각하지 않는 학부모들이 캠퍼스에 찾아와서 ‘감 놓아라, 배 놓아라’ 간섭하기 시작했고, 대학들은 ‘우리가 이렇게 교육에 힘쓰고 있으니 믿고 도와달라’고 하소연하며 부모들에게 납작 엎드리고 있다. 학기 초에도 학부모들의 전화가 학과 사무실에 빗발치는데, ‘무슨 강의는 왜 수강신청이 안 되느냐’ ‘왜 인원이 이리 빨리 차느냐’ 등의 문의사항이 주류라고 한다. “자녀의 부탁으로 전화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부모가 먼저 나서서 수강신청을 해주고 시간표를 다 짜주기도 하더라”는 학교 관계자의 말은 부모들의 치맛바람이 대학 깊숙이 들어와 있음을 보여준다. 아이들 학교의 담임선생님을 찾듯이, 학과 행정실에서 “담당 교수님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조르는 부모들도 있다. 한 대학 관계자는 “자녀의 영어 토플 성적에서부터 사소한 것까지 학부모들이 일일이 물어온다”며 “대학에 들어왔는데도 고등학생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다”고 걱정했다. 한 대학 관계자는 “심지어 아들이 과 친구들과 싸우고 들어왔다며 학생 지도를 어떻게 하는 것이냐고 항의하는 일도 있다”고 말했다. 취업사무실은 부모들 전화로 ‘북새통’ 대학생 자녀들의 수강신청을 대신 해주는 것은 약과다. 이제는 졸업을 앞둔 자식들의 취업까지도 학부모들이 도맡아 하는 분위기이다. 취업 포털 ‘인쿠르트’가 최근 신입사원(구직자) 부모 414명을 상대로 ‘자녀의 진로 선택에 자신이 얼마나 영향을 미쳤나’라고 설문한 결과 ‘다소 미쳤다’(53.1%), ‘매우 미쳤다’(15.5%)는 응답이 70%에 이르렀다. 최근 새 학기에 대학 본부들은 ‘학부모’ 전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취업정보실·학사관리실 등에 학생을 대신하여 학부모들의 각종 문의 전화가 쇄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마포의 한 대학에서는 “신학기만 되면 신입생 학부모라며 취업률 등을 물어오는 전화를 하루에 2~3통은 받는다”고 말했다. 취업률이나 어느 직종에 취직이 잘 되냐는 등의 문의 전화가 ‘학생’이 아닌 학부모에게서 온다는 말이다. 대학교 내에서 열리는 취업진로 설명회에는 학부모들로 자리가 채워진다. 취업 준비에 바쁜 자녀를 대신해 정보를 들으러 온 학부모들과 부모와 함께 자리한 대학생들이다. ‘자기경력 관리법’ ‘나의 취업 성공기’ 등을 주제로 오후 5시까지 이어진 워크숍에서는 학부모들의 열의가 대단하다. 경희대의 한 취업설명회에 참석한 대학 3학년 외아들을 둔 송모 씨는 “간부회의가 있는데도 ‘반차’를 내고 참석했다”며 “아들은 도서관에서 공부하느라 함께 오지 못했는데, 강의 내용을 잘 정리해 전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김모(55·여·용인시 처인구) 씨도 “취업박람회나 업체별 취업 설명회 등은 빠짐없이 체크해 꼭 참석한다”면서 “내가 바빠서 못 가면 남편이 참석하기도 한다”고 했다. 최근 대기업이 모집 공고를 내면 “토익 점수는 몇 점이어야 합격 가능하냐” “대학이나 학점은 어느 수준이어야 지원 가능하냐”는 등 이른바 ‘스펙’을 알아보는 중장년층의 문의 전화가 쇄도한다. 필기 및 면접 시험장에는 도시락을 싸 들고 다니면서 자녀를 챙기는 이른바 ‘도시락 부모’들이 몰려와 ‘필승’을 기원하는가 하면, 최종 합격자 발표 이후 “불합격한 이유를 밝혀라”는 항의 전화도 걸려오는 분위기이다. 대학생 자녀들의 취업 준비는 물론, 입사 이후 적응기까지 뒷바라지를 하는 부모들도 있다. 각종 취업설명회에 참석해 정보를 모으는 것은 기본이고 분야별 수준별 ‘스펙’(학력·학점·영어점수 등 취업에 필요한 요건)도 줄줄이 꿴다. 학교들도 학부모 맞춤 설명회 열기도

최근 대학 중에는 학부모와 대화를 시작한 학교가 다수 발견된다. 대학생의 상당수가 ‘마마보이·파파걸’ 성향을 띠고 있다는 것도 대학 당국이 학부모와 대화를 시작하게 한 요인이다. 상당수 대학생이 부모가 정하는 방향에 따라 대학을 선택할 뿐만 아니라 진로까지 결정하고 있다. 전공 선택을 둘러싸고 신입생과 학부모 간의 갈등도 있다. 한 대학 관계자는 “학부모들에게 설명회를 개최하는 속내는 ‘우리가 이렇게 잘 하고 있고 학생들도 성인이니 제발 그대로 내버려두라’는 이유도 있다”며 “입학식과 졸업식 딱 두 번 학교를 방문하던 시대는 지났다”고 밝혔다. 또 대학들이 등록금 외에 학부모들에게 대학발전기금 명목으로 손을 벌리면서 과거의 관계가 역전되기도 한다. 서강대 발전후원과 관계자는 “학교가 교육 서비스에 최선을 다하면, 학부모들이 사정이 닿는 대로 10만 원부터 1억 원대까지 발전기금을 내준다”고 귀띔했다. 반수·재수 등 중간 이탈자를 막기 위해 학부모를 떠받드는 고전적 이유도 물론 여전하다. 동국대는 올해 정시 합격자 2050명의 집으로 ‘우리 대학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새해에도 여러분과 부모님 모두에게 건강과 행운이 늘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라는 합격축하 카드와 스포츠 타월을 총장 명의로 발송했다. 건국대는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정시나 수시에 지원한 학생의 부모를 대상으로 캠퍼스 투어를 운영했다. 학부모의 치맛바람이 거세진 까닭은 각 대학들이 무한경쟁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학생뿐 아니라 등록금 제공자이자 학생의 진로결정권을 쥐고 있는 학부모 중심의 ‘교육 서비스’ 만족이 꼭 필요하게 된 것이다. 한 대학 관계자는 “이제 각 대학에는 잘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홍보하는 일이 매우 중요해지고 있다. 1년에 한 번은 학부모와 함께하는 자리를 마련해 이야기를 나눌 것”이라고 밝혔다. 신입사원 때에도 엄마 치마폭에 싸인 청년 수두룩 경기도의 한 중견기업에 근무하는 박모 부장은 30살 된 한 신입사원의 어머니로부터 ‘항의 방문’을 받았다. 아들의 퇴근 시간이 너무 늦고, 사소한 실수를 해도 선배들의 꾸지람이 지나쳐 아들이 힘들어한다는 것이다. 회사 생활이란 게 상사·동료들과 함께 일하면서 업무와 사회생활을 터득해 가는 과정이다. 하지만, 회사 생활을 미주알고주알 부모에게 일러바치는 성인들이 있다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의 신입사원 김모 씨는 최근 “가족같이 기르던 강아지가 죽어 엄마랑 같이 장례식을 치러야 합니다. 엄마가 회사 앞에서 기다리는데 일찍 퇴근하면 안 됩니까”라고 말했다가 창피만 당했다고 한다. 유력 시중은행의 서울 강남지역본부장이 올해 초 강남지역 지점들에 근무하는 직원들과 가진 회식 자리에서 한 이야기이다. 이 은행은 입사 연차가 낮은 직원들은 3년 정도 지점에서 근무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는데, 강남지역 지점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대부분 부모나 친지의 강력한 청탁을 통해 ‘강남 근무’라는 혜택을 받았다는 의미였다. 이 은행 신입 직원들이 강남지역 근무를 위해 부모를 동원한 청탁까지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우선 상대적으로 실적을 올리기 좋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강남지역 주민들 가운데 재력가가 많다 보니, 다른 지역 지점에 근무하는 직원들보다 예금 수신 실적 등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강남지역 지점에 근무하는 직원은 원래 강남 출신이 많기 때문에 출퇴근이 용이하다는 점도 선호 이유로 꼽힌다. 이처럼 부모들이 각종 연줄을 동원해 자녀들의 취업이나 근무 부서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사례가 늘고 있다. 자녀가 중고교 생일 때 좋은 대학 진학에 열의를 보이던 ‘헬리콥터 부모’가 장성(長成)한 자녀들의 취업이나 보직까지 챙기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 자녀들의 취업이나 직장 생활까지 관여하려는 부모들이 늘어나는 현상은 사회 전반적으로 저출산 추세가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 자녀가 한두 명에 그치다 보니, 부모들의 관심과 기대가 소수의 자녀들에게 집중되고 있는 셈이다. 일부 부모는 이 과정에서 황당한 요구로 기업의 인사담당자를 당혹하게 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한 외국계 IT 기업의 임원이 지원서를 냈다가 떨어진 지원생의 어머니로부터 받은 전화가 대표적이다. 이 임원이 명문대 출신의 입사 지원생을 상대로 입사 동기를 집요하게 묻자, 이 지원생은 결국 “어머니가 무조건 외국계 기업에 입사해야 한다고 해서 지원했다”고 대답했고, 분을 못 삭인 지원생의 어머니가 “우리 애는 명문대 출신에 학점도 좋은데 왜 떨어뜨렸느냐”며 전화를 걸어와 거세게 항의했다는 것이다. 일부 ‘헬리콥터 부모’는 자녀들의 취업을 위한 학점관리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자녀들의 학점이 나쁘게 나올 경우 직접 학교에 전화를 걸어 항의하는 부모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대학에서 국어학을 가르치는 시간강사는 “중고등학생도 아니고 대학생이면 자기 앞가림을 할 나이인데, 부모들이 대학생 자녀의 학점까지 챙기는 것은 지나치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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