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cm보다 작으면 루저(낙오자)”라는 미모의 여대생 발언이 방송을 탄 뒤 한국에서 ‘루저 대란’이 벌어졌다. 키 큰 남자에 대한 여자의 선호는 남자의 경제력, 사회적 지위로 만회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이미지를 파는’ 정치판에서 정치인의 키 차이는 정치생명을 살리거나 죽이는 위력을 발휘한다. 미국 신문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대선 토론 TV 중계가 시작된 1952년 이후 치러진 14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키 큰 후보가 10번이나 승리를 거뒀다. 키 큰 후보가 승률 78%로 압도적인 우위다. 지난해 공화당의 존 매케인 후보(174㎝)보다 16㎝나 더 큰 버락 오바마 대통령(190㎝)의 압승에도 키 차이가 적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한 것으로 분석됐다. 평균에 못 미치는 단신에 팔다리가 짧은 매케인에 비교한다면, 긴 팔다리를 휘저으며 연단에 오르는 오바마의 경쾌한 모습은 똑똑함과 섹시함으로 유권자에게 어필했다는 것이다. 최근 14번의 대선에서 키 작은 후보가 키 큰 후보를 이긴 경우는 리처드 닉슨과 지미 카터, 조지 W 부시 대통령(두 번)으로 한정된다. 부시 직전 대통령은 2000년과 2004년에 두 번 자기보다 키가 더 큰 앨 고어, 존 켈리 민주당 후보를 각각 물리쳐 작은 남자의 매운 맛을 보여줬다. 그러나 두 선거 모두에서 부시는 박빙의 승리를 거두었으며, 미국식 선거인단 투표가 아니라 한국식 직접선거였다면 고배를 마셨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리처드 닉슨은 국민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대통령이었다가 워터게이트 추문으로 중도하차했으며, 카터 대통령은 재임 중 ‘가장 인기없는 미국 대통령’이란 오명을 썼었다. ‘키 작은 대통령’을 미국인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증거들이다. 1976년 미국 대선에서는 공화당의 장신 현직 대통령 제럴드 포드와 민주당의 제럴드 카터 후보 사이에, 필사적으로 카터 옆에 서서 키 차이를 과시하려는 포드의 ‘인파이팅’과 키 큰 남자의 접근을 필사적으로 피하려는 카터의 ‘아웃복싱’ 작전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기려면 커 보여라” 2004년 대선에서 TV 토론에 나온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강한 어머니에게서 무엇을 배웠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말할 때 똑바로 서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 치라도 더 커 보이기 위해 허리를 꼿꼿이 세우느라 애를 썼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키 키우기’ 작전도 유명하다. 1992년 대선을 앞두고 클린턴 후보 진영은 그의 키를 6피트 2.5인치(약 189.2㎝)라고 밝혀 공화당 후보 조지 부시(아버지 부시)의 6피트 2인치(187.9㎝)보다 우위를 지켰다. 백악관 입성 뒤 주치의는 클린턴의 키를 6피트 2인치로 기록해 부시와 같았던 것으로 드러났지만, 재선을 1년 앞둔 시점에서 그의 키는 다시 6피트 2.5인치로 ‘자라났다’. 이듬해 그는 또 한 번 6피트 2인치로 그보다 키가 0.5인치 작은 공화당 밥 돌 후보를 물리쳤다. 당시 <워싱턴포스트> 신문은 “클린턴 후보가 밥 돌 후보와 TV 토론에서 고개를 꼿꼿이 쳐들고 자세를 똑바로 하기 위해 특별히 힘썼다”고 보도했다. 대통령 후보의 정견만큼이나 TV 화면에 비치는 이미지가 당락을 좌우하는 미국에선 후보 진영에 ‘키 담당’ 보좌관이 따로 있을 정도다. 한국에서도 키 큰 후보가 승리를 거둔 경우가 많고, 최근 들어 이런 양상은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TV 정치’의 영향이다. 2007년 대선에서 당시 이명박 후보는 키 172cm로 경쟁자 정동영 당시 민주당 후보보다 4cm 컸다.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도 상대 후보였던 이회창 후보보다 키가 더 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2년 대선에서 정몽준 후보와 잠시 연합했을 때 정 후보의 손을 맞잡으며 “우리가 더 키 큰 팀”이라고 말했다. 당시 노무현 후보의 키는 168cm, 이회창 후보는 163cm, 정몽준 후보는 182cm이다. 노 대통령은 “키가 큰 순서대로 뽑았다면 영락없이 떨어질 뻔했지만 그래도 제가 이회창 후보보다는 조금 키가 크다”며 “키가 큰 정몽준 후보와 손을 잡았으니 우리는 키 큰 팀”이라고 말했다. 키 차이에 신경을 썼다는 반증이다. 올라서기·까치발 등 눈물겨운 노력 키 작은 지도자들은 진실을 감추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한다.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키높이 구두에서부터 연단 뒤 상자에 올라서기, 발뒤꿈치 들기까지 다양한 작전을 구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자동차 부품 공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그는 키 작은 여성 노동자들을 들러리 세워 사진을 찍었다는 의혹이 나오면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그의 키는 대략 170㎝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대통령궁 대변인조차 정확한 수치를 모른다는 프랑스의 일급 비밀이기도 하다. 사르코지가 자신의 미녀 가수인 부인 카를라 브루니와 사진을 찍을 때, 또 지난 4월 스트라스부르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사진을 찍을 때 까치발을 했던 사실은 유명하다. 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의 실제 키가 얼마인지도 논란거리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이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도 단신 지도자로 유명하다. 나폴레옹은 정말 작았을까 작은 키 영웅의 대명사인 나폴레옹의 키는 158cm부터 167cm까지 설이 분분하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키는 그가 살던 시기에는 그리 작은 키가 아니었다고 한다. 그가 단신으로 알려진 이유는 참모들의 키가 190cm 이상의 장신이라 상대적으로 작아 보였다는 설이 있다. 또 다른 설로는 영국이 그를 깎아내리기 위해 키보다 훨씬 큰 칼을 찬 난쟁이 같은 모습으로 그림을 그려 유포시켰다는 설이 있다. 러시아 일간지 <아르구멘트 이 팍트>는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이 후계자를 지목할 때 푸틴의 작은 키 때문에 고민했다고 보도했다. 옐친은 188cm여서 러시아 사람 중에서도 큰 편이지만, 푸틴은 170cm 정도로 단신이다. 정치 지도자들의 심리를 연구한 장피에르 프리드먼에 따르면,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은 193㎝의 거구인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와 나란히 설 때마다 말 못할 콤플렉스를 느꼈다고 한다. 작은 지도자의 카리스마적 리더십 키에 따라 정치인의 리더십도 달라진다는 분석도 있다. 나폴레옹을 비롯해 칭기즈칸·등소평·모택동·루스벨트·무솔리니·레닌·처칠·스탈린·푸틴은 모두 170cm를 넘지 않는 상대적 단신인데, 이들은 대개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나폴레옹과 칭기즈칸은 강력한 리더십으로 넓은 땅을 정복했고, 등소평은 아담한 체구와는 달리 결단력 있는 정치로 중국의 개혁을 이끌었다. 반면, 키가 큰 정치가들은 부드러운 리더십을 보인 경우가 많았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 중 키가 큰 편인 최규하·노태우·김대중 전 대통령은 부드럽다는 평을 들었다. 외국 정치 지도자도 마찬가지로 링컨·드골·헬무트 콜·보리스 옐친 등은 온화한 리더십으로 국가의 안정과 지속성을 중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키 큰 남자가 상대적으로 온화하다는 것은 남녀 애인 사이에서도 드러난다. 키 큰 남자는 여자에게 버림받을 걱정을 덜 하기 때문에 애인에 대한 관리를 키 작은 남자보다 덜 하는 것으로 조사 결과 밝혀졌다. 김성훈 우석대 신경정신학과 교수는 “역사의 중요한 전환기에서는 키 작은 남자들의 활약이 항상 두드러졌다”며 “이는 키와 힘으로는 이길 수 없었던 키 작은 남자들이 지적 능력 같은 다른 수단을 동원해 콤플렉스를 보상받으려 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기본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서는 작은 남자가 이를 만회하려고 피나는 노력을 하면서 역사가 만들어졌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