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11월 27일 오후 특별 TV생방송 ‘대통령과의 대화’를 통해 세종시 문제에 대한 견해를 직접 밝힌 것은 정치권을 비롯해 시민·지역사회에서 세종시 논란이 점점 거칠어지고 있는 것과 관련하여 자신이 직접 나서 세종시 수정 필요성을 설명하고 대국민 설득에 나서는 정공법으로 현 국면을 돌파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되고 있다.
세종시 논란은 여야 갈등뿐 아니라, 여·여 내부 갈등을 촉발시킨 것은 물론, 지역 간의 대결로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 ‘친이-친박’ 계파는 ‘수정추진-원안고수’라는 입장으로 갈려 첨예하게 맞붙고 있고, 비수도권 의원들과 지자체장들은 ‘역차별’을 우려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 대통령은 ‘대통령과의 대화’라는 의사소통 형식을 빌어 세종시 수정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역설하면서, 지난 대선 과정과 대통령 당선 후 세종시 원안 추진 약속 취지의 발언을 한 데 대해 사과의 뜻을 밝혀, 세종시 논란을 불식시키겠다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이런 자세에 따라 앞으로 정치권과 지역의 반발이 수그러들지는 미지수라는 관측이 많다.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직 시절부터 세종시에 행정부처를 이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지난해 2월 새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이를 공론화해해서 본격적으로 풀어 나가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나,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둘러싼 촛불시위가 확산되면서 세종시 문제를 끌어내는 데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촛불시위가 가라앉자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금강산 관광객 사망사건 등 북한의 도발이 연속적으로 일어나 세종시 문제가 파고들 틈이 없었다.
올해 들어서도 언론이 세종시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으나,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로 또다시 세종시 문제가 덮이는 듯했다. 그러나 집권 2년차 중반을 넘기면서 이 대통령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판단을 했고, 지난 9월 3일 개각으로 정운찬 국무총리를 기용하면서 잠겨 있던 이 문제를 끄집어내, 결국 취임 1년 반을 넘긴 후에야 수면에 떠오르는 형국이 됐다.
청와대 안에서는 올 2월부터 세종시 놓고 격론
사실 청와대 안에서 세종시 수정 논의가 본격화된 것은 이명박 대통령 취임 1년을 맞은 지난 2월 당시 박재완 국정기획수석이 이 대통령에게 세종시 수정 문제를 공론화할 필요성이 있다는 요지의 보고를 공식적으로 함으로써 불거지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하여 여권의 한 핵심 인사는 11월 25일
그러나 서울시장 재직 시부터 세종시 수정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던 이 대통령이 박 수석의 보고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청와대는 정정길 대통령실장 주재로 수정안과 관련된 논의를 본격적으로 거듭하기 시작했다. 깊숙한 토론 끝에 국정기획수석실은 수정안을 마련하고, 오래 전부터 여권 핵심부에서는 박근혜 전 대표가 세종시 수정에 가장 큰 난관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무수석실은 박 전 대표 측을 설득키로 하는 등 업무를 분담하기에 이르렀다. 아울러 국정기획수석실은 6월을 전후해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유치+공대 및 연구소 유치+교육과학기술부 이전+일부 기업 유치’를 골자로 하는 세종시 1차 수정안을 마련해 내부적으로 적극 검토에 들어갔다. 즉, 중이온가속기·기초과학연구원 등 3조5000억 원이 투입되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를 세종시의 핵심으로 삼고, 여기에 KAIST 등 대학과 관련 연구소, 기업 연구소 등을 유치하는 과학교육중심도시를 건설하겠다는 구상이며, 행정부처는 과학과 교육이 중심인 만큼 교육과학기술부만 이전하고 나머지 부처 이전은 백지화하는 안을 마련한 것이다. 6월에 이미 수정안 마련 하지만 4·29 재·보선에서 여당이 참패하자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인적쇄신론이 불거졌으며, 또한 6월부터는 미디어법 논란이 가열됐다. 일부 청와대 참모를 중심으로 친박계 및 충청권을 정치적 기반으로 하는 자유선진당을 상대로 하여 물밑 설득 작업을 시도했지만, 구체적 성과는 없었다는 후문이다. 수정안이 정치권 전면에 부상한 계기는 정운찬 국무총리가 총리로 지명된 9월 3일 기자회견에서 “세종시를 원안대로 한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원안보다는 수정안으로 가지 않을까 본다”고 밝히면서였다. 물론 정 총리 지명 전부터 청와대와 정 총리 사이에는 세종시 수정에 대한 교감이 있었지만, 총리 지명 첫날부터 세종시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할 줄은 청와대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는 게 내부의 전언이다. 그리고 세종시 수정론에 대한 결심이 어느 정도 굳어진 이 대통령은 9월 16일 대통령 특사로 유럽을 순방하고 돌아온 박근혜 전 대표와 43분 동안 단독으로 만나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속내를 처음으로 털어놓고 협조를 요청했다. 이 대통령이 11월 27일 생방송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밝힌 내용은 사실상 이때 처음 박 전 대표에게 설명했던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이에 동의하지 않고 오히려 10월 23일 기자들과 만나 “세종시는 당의 존립에 관한 문제”라며 확고한 수정안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등 비난 수위를 높였다. 그러자 청와대는 ‘올 것이 왔다’는 표정이었으며, 한나라당 내에서는 예상대로 수정안을 둘러싼 친이·친박 간, 충청·비충청 간 논란이 가열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정면돌파를 선택하고, 우선 총리실이 전면에 나서기로 방침이 정해졌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세종시는 총리실 어젠다’라고 말하기 시작하는 등 수정안 마련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총리실은 민관합동위원회를 구성했고, 이후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특히 청와대에서 마련한 1차 수정안에 녹색기업단지, 특목고, 각종 첨단기업 유치 등을 추가한 민관합동위의 수정안 윤곽도 드러났다. 11월 27일 ‘국민과의 대화’ 형식을 빌은 사실상의 대국민 사과를 결정하기까지 이 대통령은 세종시 문제와 관련해 7번의 고민과 갈등을 지나왔으며, 이러한 고비마다 입장을 밝히겠다는 이 대통령과 이를 만류하는 참모진의 줄다리기가 이어졌다는 후일담도 들린다. 정 총리가 취임 후 첫 주례보고를 한 10월 6일 대통령에게 세종시 건설 사업에 대해 보고하고 본격적인 드라이브를 걸 예정이었지만, 당·정·청 협의를 통해 여권 내 의견 통일을 먼저 이루는 게 좋겠다는 판단에 따라, 주례보고를 하루 앞두고 세종시 사업은 보고 안건에서 제외됐다. MB, 결심 굳히고 박근혜 설득했으나 동의 못 구해 충청 민심을 생각해서 10·28 재보선 이후로 발표를 미뤄야 한다는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의 건의도 의사결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당시 청와대에서는, 먼저 대안을 마련하고 여론이 정리된 다음 대통령이 직접 나서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과, 대통령이 먼저 국민 앞에 사과하면서 여론을 주도해 나가는 게 더 바람직하다는 의견들이 엇갈리고 있었으며, 이후에도 수정 불가론과 불가피론이 엇갈리면서 혼란이 일었다. 따라서 10·28재보선 전이었지만 급기야 이 대통령이 직접 세종시에 대한 정리 작업에 나섰다.
이 대통령은 10월 17일 경기도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신임 장차관 워크숍에서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정책에는 적당한 타협이 있어선 안 된다. 정권에는 도움이 안 될지라도 국가에 도움이 된다면 한때 오해를 받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을 택해야 한다”고 말해, 세종시 수정론에 대하여 이 대통령이 직접 분명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셈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세종시에 대해서 대통령이 굳이 앞에 나설 이유가 없다’는 청와대 핵심 참모진의 건의에 따라 다시 한 번 고민에 빠졌다. 따라서 이 대통령은 11월 2일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와의 당·청 오찬회동에서 “세종시는 충분히 숙고해서 하는 게 좋다”며 한 발 물러섰으며, 심지어 이날 오전에 정 총리가 대독한 국회 새해 예산 시정연설에서도 세종시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 정무 라인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이 세종시 문제를 직접 언급할 경우 정 총리의 리더십이나 노력이 반감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세종시 문제를 이 정권이 부담을 무릅쓰고 제기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처럼 이 대통령이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자, 이번에는 세종시 원안 추진에 반대하는 쪽에서 대통령이 더 이상 총리의 뒤에 숨거나 피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나서는 등 비판 여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이에 청와대 이동관 홍보수석은 “추호도 숨거나 피할 생각이 없다”고 반박했으나, 여론은 대통령의 직접적인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이에 이 대통령은 11월 4일 정 총리의 주례보고를 받은 직후 ‘9부2처2청을 이전하도록 한 세종시 원안을 대체할 대안을 마련하라’는 취지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그리고 이 대통령은 정 총리에게 “늦어도 내년 1월 중 국민과 국회에 최종안을 제시할 수 있도록 서둘러 달라”고 당부하면서 “적절한 시점에 내 견해를 국민에게 직접 밝히겠다”고 공언했지만, 그 시점이 언제가 좋을지는 또 다른 문제였다. 야당과 일부 여당에서도 반응 싸늘 이 대통령은 “어차피 대통령이 나서서 해야 할 일이면 하루라도 빨리 떳떳하고 당당하게 얘기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으나, 청와대 참모들은 어차피 입장 발표를 할 거라면 그냥 ‘세종시를 잘 만들겠다’고 할 게 아니라 구체적인 안을 갖고 국민을 설득하는 게 좋겠다는 주장을 펴면서 대통령을 만류했다. 이 대통령은 수없는 고심과 갈등을 겪은 탓인지 11월 6일 외교안보자문단을 만난 자리에서 “나라의 기초를 튼튼하게 닦아서 다음 정부가 탄탄대로를 달리도록 하겠다는 것이 내 철학이지만 생색은커녕 욕먹는 일만 손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는 푸념 섞인 고백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민주당 등의 야당과 일부에서는 이 대통령의 ‘대국민 대화’와 관련해 싸늘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어설프게 국민을 상대로 변명하고 사과한다고 해서 국민은 공감하지 않으며 저항만 야기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정 대표는 “국민과의 토론과 대화·소통이 아닌, 일방적으로 정권을 홍보하고 자신들의 주장을 국민에게 주입하는 방식으로 일이 추진되고 있다”며 “모든 언론을 총동원해 정권을 홍보하려는 태도는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대변인도 “이 대통령은 ‘다른 지역의 산업이 세종시로 갈 일은 없으며 세종시에는 신산업 위주로 기업을 유치하겠다’는 이른바 ‘세종시 블랙홀’ 논에 쐐기를 박겠다는 것이지만 아닌 밤중에 홍두깨인 것은 사실”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세종시 수정에 강한 우려를 나타내온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은 최근 한 라디오에 출연하여 “세종시에 정부 부처가 안 가면 모든 것을 희생해도 좋다는 식이나 또는 국책사업을 결정하는 원칙을 파괴해도 좋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국정이 어려워진다”고 비판했다. 친박계의 한 핵심 의원은 “이 대통령의 얘기는 사실상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 추진을 분명히 하는 것이어서 이후 논란은 더욱 가중될 수 있다”며 “박 전 대표나 친박 의원들에게 이 대통령의 설득이 통할지도 의문”이라고 회의적으로 내다봤다. 이 대통령이 11월 27일 TV 생방송 ‘대통령과의 대화’를 통해 세종시 문제에 대한 견해를 직접 밝힘에 따라 세종시 논란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이 대통령이 직접 세종시를 둘러싼 논란의 전선(戰線)에 나서는 것은 위험부담이 클 수도 있으나, 현 정부의 명운이 걸린 사안인지라 정면돌파하는 길을 택한 것으로 정치권은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