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서울에서 열린 ‘이슬람 금융 국제 컨퍼런스’에는 국내외 경제 전문가 200여 명이 모였다. 말레이시아 이슬람 금융위원회(MIFC: Malaysia Islamic Finance Centre)와 한국거래소가 공동 주최한 이 자리에서 참가자들은 세계 금융위기의 돌파구로 이슬람 금융의 가능성을 타진했다. 컨퍼런스가 개최된 지 정확히 8일 만인 11월 27일. 이슬람 지역 경제성 장의 상징인 두바이를 만들어낸 두바이월드가 모라토리엄(채무 상환일정 연기 선언)을 선언했다. 다행히 국제 금융계는 잠시 휘청하다가 빠르게 회복 중이지만, 이슬람 금융을 바라보는 시선이 싸늘해진 것이 사실이다. 이자 금지에 리스크 공유까지…이슬람 금융은 달라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종교가 이슬람교이며, 이에 따라 이슬람 금융도 주목받고 있다. 이슬람 금융의 가장 큰 특징은 율법이 허용하는 활동만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이슬람 율법이 ‘가난한 자의 구제’를 강조하기 때문에, 이슬람금융에는 서구식 금융 활동의 핵심인 ‘이자’ 개념이 없다. 대신, 금융기관이 자본을 투입하고, 자금을 이용하는 사람은 기술이나 노동을 제공하는 개념으로 시장이 형성된다. 이슬람계 은행들의 예금·채권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 방식은 일반 은행과 큰 차이가 없으나, 이자 수수가 없고, 이윤을 창출하는 운용 수단에 투자해 거기에서 발생한 이윤을 투자자들에게 배분한다. 그래서 이슬람 은행 투자자는 실물자산이 매개된 상품에 투자한다는 개념을 가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충고한다. 덧붙여 이슬람 은행은 예금 수취 때 원금 보장이 되지 않는다는 점과 운용 성과에 따라 이윤이 배분된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은행과 차이를 보인다. 이슬람 금융이 취급하는 상품은 은행의 경우 신탁금융인 무다라바(Mudharabah), 출자 형식인 무샤라카(Musharakah), 실물자산매매 방식의 무라바하(Murbahah), 리스 형식의 이자라(Ijarah) 등이 대표적이다. 일반인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이슬람금융 상품인 ‘수쿡(Sukuk)’은 채권의 일종으로, 일반기업·공기업, 금융기관 등이 주로 이용한다. 오일 머니 급등으로 국제시장에 편입…아시아에서 활발 무디스의 발표에 따르면, 11월 현재 이슬람 율법에 따라 운영되는 금융자산은 8220억 달러로, 지난해보다 28.6%의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전통적 금융권의 자산이 같은 기간에 6.8% 성장에 그쳤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슬람 금융의 상승세는 놀랍다. 아울러 수쿡 채권은 11월 현재 1000억 달러 상당의 잔액을 기록하고 있다. 이슬람 금융의 급성장은 2007년부터 시작됐다고 경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슬람 율법을 적용한 금융 상품의 태동은 1960년대부터지만, 최근 몇 년 새 연 15% 이상의 성장세를 꾸준히 보이다가, 2007년 유가 폭등을 기점으로 이슬람 금융은 전 세계 시장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세계 50개국 이상의 300여 개 금융기관에서 현재 이슬람 금융에 대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현재 이슬람 금융에 대한 법안이 제출돼 있다. 중동 지역을 제외하고 현재 이슬람 금융이 가장 활성화된 국가는 말레이시아로, 말레이시아 국내 시장을 발판 삼아 이슬람 금융의 중심지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이슬람 금융 국제 컨퍼런스 참석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다토 유슬리 유소프 말레이시아 거래소 이사장은 컨퍼런스에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펀드와 이슬람 금융 상품 기술을 결합한 이슬람 금융이 새로운 자금 조달 창구로 활용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함께 참석한 말레이시아 중앙은행 이슬람 금융국장인 샤리푸딘 칼리드도 “금융위기 상황에서 ‘오일 머니’의 영향력이 급속히 커졌기 때문에 이슬람 금융 도입은 위기 속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말레이시아 외에, 홍콩·싱가포르 등에서도 최근 이슬람금융에 대한 관심이 높다. 홍콩 금융당국은 2007년 11월부터 이슬람 금융 관련 지수 연동 펀드를 출시하고 수쿡을 발행했다. 특히 홍콩은 기존 금융상품과 이슬람 금융상품의 형평성을 유지하기 위해 건별로 예외조항을 적용할 예정이어서 더욱 활발한 거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싱가포르는 올해 5월 이슬람 금융에 대한 종합적인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직접적으로 이슬람 금융 시장에 뛰어들었다. 싱가포르는 자국 화폐단위가 찍힌 수쿡에는 싱가포르 국채와 동등한 세금 및 규제, 유동성을 보장해 이슬람 금융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내 도입에는 넘어야 할 산 많아
19일 컨퍼런스에선 한국에 이슬람 금융을 도입하기 위한 논의가 심도 있게 진행됐다. 한국외국어대 안수현 교수는 ‘이슬람 금융 상품 및 서비스를 위한 한국의 규제 정비 과제’라는 주제발표에서 이슬람 금융 도입과 관련한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실제로 수쿡의 경우 이자 수수를 금지하는 이슬람 율법에 맞춰 형식상 실물거래를 이용해 발행되는데, 이것이 국내법상 ‘채권’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외화표시 채권 이자에 대한 면세 적용이 어렵고, 형식적 자산이전 거래 등이 수반돼 양도세, 부가가치세, 취득·등록세 등 1.5%에서 최대 3.4%의 추가 세금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기획재정부는 9월 29일 이슬람 채권 지원 방안을 발표하고 ‘이자라 수쿡’과 ‘무라바하 수쿡’ 등 대표적인 이슬람 채권에 대해 전통적 채권과 똑같은 세제 혜택을 부여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이 부분은 앞으로 희망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이슬람 금융이 우리나라에 연착륙하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은 법적인 부분이 아니라 정서적 부분이라는 분석이 이슬람 전문가들 사이에서 꾸준히 제시되고 있다. 안수현 교수는 “이슬람 금융의 발생 토대가 율법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친밀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이슬람금융에서는 하이리스크와 하이리턴이 발생할 수 없어 투자자의 재량이 제한될 수밖에 없는 등 기존의 금융과 이질적인 요소가 상당히 많기 때문에 이를 충분히 알고 접근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현재 한국의 이슬람 신도 숫자는 10만 명가량이며, 이 중 국내 신도는 3만 명에 불과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렇게 적은 신도 숫자는 국내에 이슬람 금융을 도입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다. 두바이발 폭풍에 이슬람 금융 흔들리나 지난달 27일 발생한 두바이 사태는 단 하루 동안이었지만 전 세계 금융계를 쥐락펴락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이슬람 금융에 대한 관심이 다소 수그러들었고, 두바이 사태를 이슬람 금융이 해결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들이 힘을 얻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12월 1일자 신문에서 두바이월드가 14일까지 35억2000만 달러 규모의 수쿡을 상환해야 한다고 소개하고, 두바이월드의 채무 상환일정 연기 선언은 수쿡을 발행하려던 전 세계 기업들이 발행 의사를 철회 또는 연기하도록 했다고 꼬집었다. 또한 채무 상환일정 연기를 선언한 두바이월드가 실상 수쿡의 가장 큰 거래처였음을 지적하며, 두바이월드 자회사 중 나킬 등 막대한 규모의 수쿡을 가진 업체 중 한 곳이라도 디폴트를 선언하면 이슬람 금융 사상 초유의 사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이슬람 금융은 자본 조달의 제3수단 수준이기 때문에 수쿡의 수요자가 일시적으로 줄어들 수는 있어도 이슬람 금융에 대한 수요는 계속해서 발생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슬람 금융의 지속적 성장을 예측하는 이들은 “두바이 사태는 건설·부동산 분야에 대한 지나친 외자 유입 때문에 발생했지만, 이슬람 금융은 크게 활성화된 금융상품이 아닌 대안적인 자본 조달 수단이라 장기적 영향은 없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수쿡을 받는 수요자는 줄어들 수 있지만 이자를 금지하는 율법 때문에라도 수쿡은 투자수단으로서 가치를 가진다”며 “이슬람 신도뿐 아니라 중국·아시아·미국·유럽 등지에서는 전통적인 금융수단 외에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기 위해 수쿡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부에서는 이슬람권 국가 사이의 원조가 활발하게 이뤄져 이슬람 금융의 위기를 막아낼 것이라는 예측도 제기됐다. 안수현 교수는 사견임을 전제로 “EU처럼 비슷한 지역 혹은 정서를 가진 지역끼리 경제권역을 맺는 경우가 많다”며 “두바이를 제외한 이슬람권 국가들이 하나의 그룹을 형성할 수도 있고 그들 안에서 이슬람 금융의 가치를 보존해 나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