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구 심장내과 전문의/예술의전당 후원회장 필자는 2008년 8월에 성남아트센터 후원회원 30여 명과 잘츠부르크·브레겐츠·베로나를 여행하면서 슈베르트의 독일 가곡, 푸치니의 토스카, 베르디의 리골레토·나부코·아이다를 감상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이 여행은 KBS FM의 음악해설가 장일범 교수가 인솔하여 재미있고도 심도 있는 해설을 들으면서 세계 정상급의 오페라를 감상하고 공부할 수 있어 그 즐거움이 더했다. 무대 전체를 장식한 거대한 눈동자 브레겐츠 오페라 축제는 1946년에 시작되었지만, 현재의 수상무대는 1995년에 처음 문을 열었다. 이 축제는 2년 동안 단 하나의 오페라를 발표하는데, 2007~2008년에는 푸치니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토스카를 선택하였다. 2003년부터 이 축제의 감독은 영국 출신인 다비드 푸트니가 맡고 있는데, 그는 거의 공연되지 않는 오페라를 제작하기로 유명하다. 그리하여 브레겐츠는 상업적으로 대성공을 이루고 있는 야외 오페라뿐 아니라 소규모의 실내 오페라 극장에서 거의 매장되어가고 있는 오페라를 살려가고 있기도 하다.
우리 일행은 오페라가 시작되기 전에 아름다운 콘스탄츠 호수와 마치 그 위에 떠 있는 듯한 무대를 돌아볼 기회를 가졌다. 이 무대는 5~6층 정도의 높이로 보였으며, 그 폭도 보통 오페라 하우스 무대의 3~4배는 되는 듯하였다. 이 무대는 거대한 크레인과 최첨단 시설을 갖추고 있었는데, 무대 전체를 하나의 커다란 눈동자가 장식하고 있었다. 공연 중에 이 눈동자는 수시로 색과 모양이 변하며 열렸다 닫혔다 하면서 커튼의 역할까지 하였다. 제작자는 왜 이 눈동자 하나로 무대 전부를 장식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눈동자는 신체에서 우리의 정서를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반영한다. 주위가 어두워지거나 사람이 공포심에 빠지거나 흥분하면 눈동자가 즉시 커진다. 반면에, 주위가 밝아지면 눈동자는 즉시 작아진다. 오페라 토스카에서, 사랑하는 탓에 질투심은 심하지만 오로지 예술과 사랑만을 위해 사는 토스카, 그녀의 애인 카바라도시와 그의 친구이자 혁명가인 탈옥수 안젤로티, 그리고 예쁜 여자는 모두 겁탈하고야 마는 비밀경찰 두목 스카르피아 남작, 이 네 사람의 사랑과 질투, 헛된 희망과 배신, 그리고 죽음…이들의 극과 극을 오가는 극도의 감정 변화를 제작자는 이 눈동자로 표현하려 하였을까? 그러나 또 하나의 해설이 가능하다. 1막에서 안젤로티를 체포하려고 기다리는 스카르피아의 끄나풀의 눈, 2막에서는 비밀경찰 수반의 지하 벙커에서 감시하는 비밀경찰들의 눈동자, 그리고 3막에서는 감옥의 간수들이 카바라도시를 총살하기 위해 눈독을 들이는 눈동자가 있다. 즉, 이 거대한 눈동자는 권력과 악의 눈이 죄 없는 선량한 시민들을 감시하는 눈동자가 아니겠는가.
스카르피아는 혁명가인 탈옥수를 잡지 못하자, 죄 없는 화가이자 자신이 원하는 토스카의 애인 카바라도시를 무자비하게 고문하면서 그의 생명의 대가로 토스카에게 하룻밤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는 카바라도시를 살려주겠다는 약속마저 저버리고 그를 죽일 것을 명령한다. 스카르피아가 토스카를 겁탈하려 들자, 그녀는 옆에 놓여 있던 칼로 스카르피아를 찔러 죽인다. 이 거대한 눈동자의 위에 위치한 공중의 무대에서 스카르피아의 시신이 호수로 추락하는 모습을 볼 때 내 가슴은 잠시 멈추는 듯하였다. 원작에는 성안젤로 감옥의 간수들이 토스카를 체포하려 들자 토스카는 성 옆을 흐르는 티버 강으로 몸을 던지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이번 작품에서는 토스카가 입은 옷이 하늘로 승천하는 듯한 영상이 보였다. 토스카는 애인의 목숨을 구하고 정조를 지키기 위해 스카르피아를 죽이기는 하였지만, 하늘나라로 올라가리라는 것을 암시하려는 듯하였다. 검투사들이 싸우던 원형극장에서 관람한 ‘리골레토’ 다음날 우리는 알프스 산을 넘어 베로나로 향했다. 잘츠부르크에서 베로나로 이동하는 동안 우리는 버스 안에서 오페라 DVD를 보면서 장일범 교수의 오페라 강의를 들었다.
이 길은 기원전 218년에 한니발이 코끼리를 몰고 이태리를 정복한 길이자, 1840년에는 나폴레옹이 이집트에서 돌아와 2차로 이태리를 정복하기 위해 넘어간 산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화가 다비드는 나폴레옹이 백마를 타고 알프스의 브레너 고개를 넘는 그림을 그렸지만, 진실은 이 고개를 말로 오를 수는 없어 당나귀를 타고 넘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술을 위해 이 정도의 과장은 허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산맥을 넘으면서 필자의 뇌리에는 오래된 추억이 떠올랐다. 필자는 1964년에 처음으로 프랑스·독일·스위스·오스트리아를 여행한 경험이 있다. 이때 잘츠부르크에서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니의 콘서트를 보고, 인스부르크를 거쳐 오페라를 보기 위해 베로나로 간 기억이 생생한데, 44년 후에 다시 이 길로 베로나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베로나에는 세계에서 3번째로 큰 로마시대의 원형극장이 있는데, 로마의 콜로세움보다 더 잘 보존되어 있다. 로마인들은 이 극장에서 검투사들이 생명을 걸고 야수들과 싸우는 혈투를 보면서 인생을 즐겼다. 우리는 바로 이 극장에서 세계의 유명 오페라 가수들이 아무 음향장치도 없이 1만 명 이상의 관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땀을 흘리면서 부르는 아리아를 감상하고 있는 것이다. 베로나에서는 종종 가수가 기량 부족으로 무대에서 쫓겨나는 일들이 있었다. 이들의 운명은 로마 시대의 검투사들과 유사한 점이 없지 않다. 이 거대한 야외극장에서 아무런 음향장치 없이도 아리아는 선명하게 들려온다. 로마인들의 뛰어난 음향기술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베로나에서 관람한 첫 공연은 리골레토였다. 이날 최고의 스타는 한국의 디바 조수미와 함께 리골레토에 출연한 레오누치였다. 67세나 된 고령인데도 불구하고 1만 명의 관객들을 열광시키는데 충분하였다. 그런데 8월에는 비가 없는 베로나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공연이 몇 번 중단되었다가 다시 시작되는 해프닝이 있었다. 이때 청부살인범 스파라푸칠레가 리골레토의 딸 질다를 겁탈한 만토바 공작 대신 질다를 살해하는 장면이 나오자, 무대에서 천둥 번갯불이 터져 나왔다. 이때 마침 저 먼 곳 캄캄한 하늘에서도 천둥 번개가 번쩍거리는 게 아닌가. 이야말로 하늘이 내려준 무대효과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아마도 내 일생에 하늘에서 번쩍이는 번개를 보면서 오페라를 감상할 기회는 다시 없을 것이다. 참으로 장관이었다. “Viva VERDI, Viva Verona!” 둘째 날은 나부코 공연이 있었다. 나부코는 구약성서에도 나오듯이, 2600년 전 바빌론의 왕이 유태인들의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고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노예 삼아 바빌론으로 끌고 갔으나, 이스라엘 사람들이 끝까지 여호와와 조국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는 내용의 오페라이다.
이 무대장치는 20세기의 감옥을 연상케 하는 현대식 철조물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유태인들이 히틀러에 의해 감옥에서 무자비하게 사라진 과거를 연상시키려는 무대감독의 의도로 보였다. 공연이 끝나자 일부 관객들은 “Viva VERDI”를 외쳤다. 이것은 베르디에 대한 단순한 찬사가 아니라, 1840년대에 이태리인들이 통일 즉 독립을 외치던 구호였다. 당시 북부 이태리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하에 있었으며, 이태리의 독립운동은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태리인들이 당시 사르디니아의 왕이었던 빅토리오 엠마뉴엘(Vittorio Emmanuele)이 이태리를 통일시킬 것을 원하면서 외치던 “Vittorio Emmanuele Re D'Italia(빅토리오 엠마뉴엘을 전 이태리의 왕으로!)”의 약자가 ‘VERDI’이다. 이 오페라에서 가장 유명한 노래는 히브리 노예들의 ‘Va, Pensiero’인데, 이 곡은 당시 이태리인들이 독립을 염원하던 노래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의 음악역사가들은 당시 오페라 도중 재창이 법으로 금지되었음에도 관중들이 열광적으로 재창을 요구한 노래는 ‘Va, Pensiero’가 아니라 여호와에게 감사드리는 ‘Immenso Jehova’였다고 주장한다. 어쨌든, 당시 많은 이태리인들이 ‘Viva VERDI’를 외치면서 애국심을 불태웠음은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그때 이태리인들은 ‘Viva VERDI’로 인사를 나누면서 이태리의 독립을 다짐했다고 한다. 셋째 날 공연은 필자에게 가장 깊은 감명을 준 아이다였다. 로마인들이 서기 250년 전에 건설한 이 아레나는 아이다를 공연할 수 있는 최고의 무대일 것이다. 이번 아이다는 80살이 넘은 드 보시오가 1913년에 초연한 무대를 부활시킨 것이다. 이 로마극장에서 3,000년 전의 이집트 신전을 재현한 무대를 보고 있노라니,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나일강변의 이집트 신전으로 간 듯한 환상을 가지기에 충분하였다. 토스카의 초현대적 무대도 좋았지만, 아이다만큼은 그랜드 오페라의 전통을 지켜 그 시대를 반영한 무대를 만든 것이 더 감동적이었으며, 작곡가 베르디도 더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Viva VERDI, Viva Verona”를 중얼거리며 이 아레나를 다시 찾을 것을 기약하면서 무대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