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주주의의 큰 두 별이 떨어진 한 해였다. 국민 대부분이 눈물을 훔치며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면을 기원했고, 혹자는 비분강개했다. 자신에게 몰아치는 사정의 칼날을 피해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진 노 전 대통령의 자살에 뒤이은 민주주의의 버팀목 김 전 대통령의 서거는 2009년을 장식한 가장 큰 정치적 사건이었다. 그들이 남기고 간 발자취, 그리고 남은 이들에게 주어진 숙제를 정리해본다.
“바보 노무현, 추모의 노란 풍선 한국을 뒤덮다”
5월 23일, 봉하마을 뒷산에서 등산객이 추락했다는 소식이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로 바뀌면서 많은 이들이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퇴임 이후 검찰 수사를 받아오던 노 전 대통령이 이날 새벽, 제2의 인생을 시작하려던 자신의 고향 봉하마을 뒷산에서 투신해 63세로 삶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이 충격적인 소식을 전한 사람은 노 전 대통령의 벗이자 정치적 동지였던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다.
문 비서실장은 이날 양산 부산대학교병원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노 전 대통령이 봉화산에서 뛰어내렸다”면서 “그 즉시 가까운 병원으로 후송했으나 상태가 위중해 양산 부산대학교병원으로 옮겨졌고, 오전 9시30분경 이 병원에서 운명하셨다”고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확인했다.
경찰 수사 자료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5시50분경 경호관 1명과 함께 사저를 출발해 뒷산인 봉화산을 등산하던 중 경호원을 뒤로한 채 오전 6시45분경 사저에서 500m 떨어진 봉화산 7부 능선 부엉이바위에서 45m 아래로 뛰어내렸다. 노 전 대통령은 그 충격으로 외상성 중증 뇌손상을 입어 서거했다.
노 전 대통령 장례식은 국민장으로 치러졌고, 영결식은 5월 29일 오전 11시 경복궁 흥례문 앞뜰에서 송지헌 아나운서의 사회로 개최됐다.
자살 직전 그가 남긴 짤막한 유서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는 그동안의 고뇌가 담겨 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그 누구도 원망하지 말 것을 부탁하며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줄 것을 당부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알려지자 정치권은 여·야를 통틀어 엄청난 충격에 빠졌고 한목소리로 그의 서거를 슬퍼했다. 국민들의 추모 열기는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였고, 전국은 그를 상징하는 노란색 풍선과 종이비행기로 수놓아졌다. 전국적으로 500만 명 이상이 조문했고, 그를 옥죈 수사의 정당성 여부를 놓고 논란을 벌였다.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따른 충격과 슬픔이 채 가시지 않은 8월 18일, 또 하나의 비보가 온 나라를 슬픔에 빠뜨렸다. 폐렴으로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치료 받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급성호흡곤란 증후군과 폐색전증, 다발성 장기부전 등을 이겨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의 서거 소식이 알려지자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한목소리로 애도의 뜻을 나타냈다. 국민의 추모 열기도 뜨거워 전국적으로 100만 명 정도의 일반 시민들이 조문했고, 북한을 비롯해 해외에서도 추모의 메시지가 쇄도했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는 우리 정치권에 화해의 기운을 불어넣기에 충분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입원하고 있을 때 김 전 대통령과 갈등 관계에 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병문안 뒤 화해를 선언했고, 정적 관계였던 전두환 전 대통령도 문병했다.
김 전 대통령의 영결식은 8월 23일 오후 2시 국장으로 거행됐고, 김 전 대통령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