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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광의 아프리카 미술과 친해지기

아프리카 미술을 알면 마이클잭슨이 보인다(하)
제3부 : 경계인을 위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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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55호 편집팀⁄ 2010.02.01 16:35:57

정해광 (아프리카 미술관 관장·갤러리 통큰 대표) 1. 진동이 아닌 마음의 영역 마이클 잭슨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이 세상에 실체를 가진 것들이 아니다. 그의 노래 가사에 유달리 많이 언급되는 치유, 화해, 용서,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은 마치 이데아와도 같은 것으로, 우리가 겪고 있는 크고 작은 고통들이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열정적이기도 하지만, 어떨 때는 주문을 외우는 것처럼 최면에 빠지게 하여 소리를 의식 깊숙한 곳까지 전달한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아름다운 음색이나 완벽한 음표를 지향하기보다 이데아 내지는 신을 인식하게 함으로서 여럿의 마음을 하나의 마음으로 묶게 만든다. 세네갈의 케베(I. Kebe)는 ‘세상을 향한 노래’라는 작품에서 소리는 단순한 진동이 아니라 마음 혹은 그 이상의 울림이라고 했다. 잭슨이 음악을 통하여 인간을 현실보다 더 위대하게 만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귀에 들리는 열정적인 멜로디도 감미롭지만, 슬픈 현실을 이겨내게 하는 들리지 않는 마음의 멜로디는 더욱 더 감미롭기 때문이다.

2. 최후의 만찬은 없다. 마이클잭슨에게 있어서 죽음은 마치 안과 밖의 구별이 없는 뫼비우스의 띠와도 같다. 일상에의 도전과 시련의 끝에서 죽음을 맞이했지만, 그는 ‘살아 있는 사자(死者)’로서 우리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의 이름이 지속되는 한 그는 죽은 것이 아니다. 물론 잭슨은 현실 속에서 영원히 살 수 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줄어갈 때 그의 이름도 점차 잊혀 질 것이다. 그러나 잭슨은 잊혀짐이라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차원의 죽음을 완성할 것이다. 그것은 개인적인 불사(不死)의 상태에서 집단적인 불사의 상태로 전환되어 신적 의미로 남게 된다는 것이다. 신을 향한 여인의 몸을 ‘시간의 문’으로 표현한 에티오피아의 타데세(M. Tadesse)는 한 개인의 열정 혹은 깨달음이 집단의 염원과 일치될 때 불멸성을 얻는다고 하였다. 그것은 집단의 축적된 소망 내지는 이데아에 관한 것으로 일상을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비록 죽음이 삶의 리듬을 방해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 다른 시작이다. 그래서 잭슨의 죽음은 죽음 그 이상이 된다.

3. 경계인을 위한 노래 아직도 세상은 평화로부터 너무나 멀다. 인간은 인간을, 그리고 신을 극단으로 치닫게 하고 있다. 세상을 향해 증오의 눈빛도 확산시키고 있다. 잭슨이 더욱더 그리워지는 세상이다. 그는 자신의 음악을 이데아의 세계로 끌어올리거나 끌어내릴 때 그 중심에 인간을 두었고, 신을 두었다. 모두가 주체임을 소망한 것이다. 서로 다른 세계 간의 평화를 노래한 것이다. 두 손을 하늘 높이 치켜세우며 춤을 출 때, 신을 인간에게 향하게 했고 인간을 신에게 향하게 했다. 그는 음악을 통해 신성(神性)을 현실 세계의 이야기로 전해주었고, 심성(心性)을 하늘 세계의 이야기로 전해주었다. 마이클잭슨은 경계적인 존재였다. 그에게는 인간과 신의 구분이 따로 없었다. 인간에 대한 애정과 신에 대한 열정에 차별이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는 신에게 무릎을 꿇고 인간의 이야기를 전했고, 마음이 약한 자의 손을 붙잡고 신의 말씀을 전했다. 신은 인간에게 더욱더 다가와야 함을, 인간은 신에게 더욱더 다가가야 함을 간절히 기도했다. 키부티(M. Kivuthi)의 ‘초자연은 하모니’라는 작품에서처럼, 잭슨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그리고 인간과 신을 하모니의 세계로 이끌어가는 위대한 경계적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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