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적 판매 부수 130만 부를 돌파한 신경숙의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연극 무대에 오른다. <엄마를 부탁해>는 최단기간 100만 부의 판매 기록을 세움과 동시에 지난해 ‘엄마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소설이다. 엄마의 실종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딸과 아들·남편의 기억을 통해, 무심코 지나쳐버린 엄마의 인생과 사랑을 추리소설 기법으로 하나씩 복원해 나간다. 1월 2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첫선을 보인 연극 <엄마를 부탁해>는 엄마 역의 정혜선, 아버지 역의 심양홍, 큰딸 역의 서이숙, 큰아들 역의 길용우, 작은아들 역의 조영규, 작은딸 역의 이혜원, 외할머니 역의 원로배우 백성희, 엄마의 숨겨놓은 사랑 이은규 역인 박웅의 연기로 관객과 만났다. 소설과 똑같이 엄마의 실종으로 시작되는 연극. 가족들은 잃어버린 엄마를 찾기 위해 무대 위를 휘젓는다. 큰딸은 시집가기 싫다며 울부짖는 엄마의 소녀 시절, 답답하리만치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도 늘 죄인이 되는 엄마의 초라함, 그리고 남몰래 감춰둔 엄마의 첫사랑과 대면한다. 현재에서 과거 그리고 현재로 돌아오는 동안 평생을 자식을 위해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한 여인의 인생, 그리고 그 여인에게 진 빚을 갚지 못한 자식들의 후회가 관객의 심장을 적시고 아프게 꾹꾹 누른다. 그동안 TV와 영화에서 숱한 엄마를 연기해온 정혜선과 연극배우 서이숙의 절절한 연기는 눈물샘을 자극한다. 모든 것을 희생하지만 자식을 위한 것이기에 행복한 엄마, 잘못을 알면서도 늘 못된 딸이 되어 엄마에게 상처를 입혀온 딸의 관계가 누군가의 자식인 우리에게 후회와 함께 이제부터라도 ‘내 엄마’를 찾을 때임을 깨닫게 한다. 특히 <제1,2,3 공화국> <코리아게이트> <3김시대> 같은 굵직한 드라마를 만든 고석만 PD의 진정성이 담긴 연출과 연극계 베테랑 작가 고연옥의 희곡은 신경숙 작가의 문체에 새 살과 옷을 입혔다. 이날 연극을 관람한 신경숙 작가는 “소설보다 메시지가 훨씬 더 분명하다”며 원작자가 아닌 한 사람의 관객으로서 감동받은 느낌을 전했다. 신경숙 작가와 나눈 일문일답. 연극과 소설,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제 원작이 어떻게 연극화될지 궁금했어요. 기본적으로 저는 원작을 갖고 토론할 때 ‘공연을 하느냐 마느냐’하는 원작 사용에는 깊은 고민을 합니다. 하지만 일단 원작 사용이 결정되면 원작자는 또 다른 작품 하나를 연출과 배우들을 통해 만나는 거라고 생각해요.” 공연을 본 소감은 어떻습니까?
“오늘 설레는 기분으로 잘 봤습니다. 제 소설보다 메시지가 훨씬 분명하다는 사실을 느꼈어요. 무엇보다 소설에서 언어로 일부러 애매하게 처리한 부분들이 연극에서는 분명하게 표현됐더군요. 무대는 직접 소통하는 공간이니까 당연한 일이겠죠. 그리고 원작 소설에는 내용이 4장으로 나뉘어 있어 단순해 보였는데, 막상 무대에 올라 장면 장면들이 펼쳐지는 모습을 보니 제 소설이 큰 작품처럼 느껴졌어요. 이 소설은 엄마의 이야기만을 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점들은 제 손보다 더 잘 표현한 것 같고요. 직접 경험한 일들이 한 장면으로 와서 제게 되쏘는 듯한 기분도 느꼈어요.” 원작이 연극 무대로 옮겨질 때 원작자로서 특별히 어떤 주문을 했나요? “사실 연극 때문에 작가와 연출가를 만나기 전에, 주문을 많이 하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만나서 두 분의 이야기를 20분 정도 들었더니, 주문하려던 마음이 사라졌어요. 잘할 거란 믿음이 20분 만에 발생했거든요. 그런데 딱 한마디를 했어요. 엄마를 주제로 한 기존의 연극에서 한 발짝 앞으로 나가는 연극이 되게 해 달라고요.” 원작의 느낌이 가장 잘 묻어난 배우는 누구인가요? “아직도 마음 안에서 해결되지 못한 부분들이 있어요. 관객으로 보는 관점과 원작자로서 보는 마음이 따로 있다면, 느닷없이 잠자고 수면에 가라앉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아프게 오는 순간들 말이죠. 누가 원작하고 가장 가까운 것 같으냐고 묻는다면, 저 역시 오늘 처음 공연을 봤기 때문에 뭐라고 말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그보다 원작하고는 거리가 있는 새로운 작품이 탄생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연극의 어떤 점에 놀랐나요? “정혜선 선배님의 대사량과 암기 능력에 놀랐습니다. 보는 내내 어떻게 그 많은 대사를 다 외웠을까 생각했거든요. 저는 아침에 외운 것도 서너 시간이 지나면 다르게 말하고 있어요. 그 순간이 아니면 안 되는, 그 순간 자체에 최상의 것이 나와야 하는 공간이 연극이고 무대인 것 같아요. 지나버리면 그 순간을 복구할 수 없는 게 무대에서 하는 일 같고, 얼마나 긴장하면서 연기를 할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가끔은 깊은 한숨이 나오곤 했는데요. 연극이 못마땅해서가 아니라, 어떤 부분들이 저를 아프게 했기 때문에, 차마 바라볼 수가 없어서 고개를 숙이고 봤죠. 연출가 선생님이 오늘 저를 처음 보시고는 ‘열흘 뒤쯤 오시지’ 하셨어요. 저 역시 그러고 싶었죠. 그런데 ‘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싶을 정도로 연극은 완성작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