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김윤식 그런데 지금은 금정에서 천불정이나 만불정으로 가려면 관광용으로 설치한 모노레일을 무조건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은밀히 사람들 눈에 안 띄도록 하여 전에 만들어진 길로 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금정에서 길을 나서 천불정 쪽으로 한참을 가다 보면, 쭉 평평하던 길 옆자락으로 갑자기 푹 꺼진 폭 좁은 골짜기가 나타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곳을 무심코 지나치도록 길이 나 있다. 골짜기 언저리로 다가가 유난히 깊게 파인 곳의 안쪽 벽면을 유심히 살펴보면, 어른 한 사람이 간신히 내려갈 수 있을 정도의 급경사 내리막길이 어렴풋이 보인다. 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거칠고 미끄러운 경사지를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여 80여 미터 정도 내려가면, 골짜기 벽 안쪽으로 약간 넓은 평탄한 공간이 나타난다. 여기서 겨우 한숨 돌리려고 하는 찰나에, 어디에선가 쏟아져 들어오는 오색찬란한 빛이 순간적인 황홀경을 만들어낸다. 골짜기 벽 안쪽으로 휑하니 뚫린 제법 큰 동굴에서 강렬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이다. 일직선으로 곧게 뚫린 동굴은 세 사람이 횡렬로 동시에 들어가도 될 만큼 충분한 여유가 있다. 맑은 날 낮에 동굴 속으로 접어들 때에는, 햇빛에 너무 눈이 부셔 손으로라도 얼굴을 가려야 시야를 확보할 수가 있다. 동굴 안으로 진입하여 불과 50여 미터 지점에 다다르면, 마침내 아득하고 광활한 창공이 눈앞에 시원하게 펼쳐진다. 말 그대로 아미산 절벽과 하늘이 맞닿은 곳이다. 이곳은 누가 그 쓰임새를 미리 정해놓기라도 한 듯, 동굴이 끝나는 지점에서 바깥 쪽을 향해 장방형 모양으로 돌출된 제법 널찍한 공간이 형성되어 있다. 대략 30여 명 정도가 비교적 여유롭게 머물 수 있는 규모인데, 흡사 인공(人工)으로 절벽 중간에 구멍을 내어 만든 테라스 형태의 하늘광장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아미산 정상을 오가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눈에 띄지 않는 시야각(視野角) 구조로 되어 있다. 여기가 바로 오랜 옛날부터 소리 소문 없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극히 일부 사람만이 알고 있는 피안(彼岸)의 절벽 ‘석양의 낭떠러지’이다. 아미산의 정기가 최고조로 발산되는 석양의 낭떠러지는 보현보살에 얽힌 신화가 어려 있고, 아미산의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황홀한 대자연의 장관이 펼쳐지는 곳이다.
석양의 낭떠러지의 은밀한 비밀을 알게 된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목적은 대략 3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어떤 말 못할 사연이 있어 스스로 이승과 영원한 작별을 하기 위해서이다. 두 번째는 세속적인 삶에 한계를 느껴 출가(出家)하거나 혹은 방외지사(方外之士)로 살아보겠다는 새로운 인생 출발을 결심하기 위해서이다. 마지막으로는 진정한 제세안민(濟世安民)과 경국대업(經國大業)의 야망을 다지며 지혜로운 안목으로 사리 분별을 제대로 하고 사심(私心)을 갖지 않는 국가 지도자가 되기 위한 경각심과 깨달음을 얻고자 함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이승과의 작별을 위해 석양의 낭떠러지를 찾는 사람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 이유로 이곳을 찾는 방문객은 지극히 미미한 비중이라고 전해진다. 다만 최근에 들어와서는 세속을 떠나 구도(求道) 중인 수행자들의 발걸음이 잦아지고 있다. 자신의 수행을 뒤돌아보고, 자신의 깨달음을 시험하고, 자신의 정진(精進)을 결심하는 ‘수행 과정 성찰지(省察地)’로서 석양의 낭떠러지가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승과의 영원한 작별’을 굳이 석양의 낭떠러지까지 찾아와서 도모하는 데는 3가지 이유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이승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떨쳐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낙양과 월출이 아미산의 운해와 어우러져 펼쳐지는 대자연의 황홀경을 바라보노라면, 더 이상 세속의 삶에 대한 의미나 가치를 느끼지 못하게 되고,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해탈(解脫)을 맛보게 된다. 이를 순간적인 깨달음을 통한 득도(-미혹(迷惑)의 세계에서 깨달음의 피안(彼岸)으로 건너가는 것-)라고 한다. 다만 이러한 돈오돈수(頓悟頓修: 단박에 깨닫고 단박에 수행을 완성하는 것)의 깨달음과 득도는 특별히 정해진 날과 때에 일정한 기상 조건을 갖추어야만 이뤄질 수 있다고 전해오고 있다. 날이 맑은 음력 보름날에 석양과 월출이 겹쳐지는 황혼 무렵이 적기(適期)라고 한다. 특히 낙양이 서쪽 하늘에 막 잠겨 스러지기 시작하는 그때가 바로 성불(成佛)의 기(氣)가 최고조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다. 둘은, 결심은 섰지만 막상 용기가 나질 않아 자살을 시도하지 못 하는 겁쟁이들도 이곳에서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전혀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금정에서도 불광이 영롱한 아름다운 구름폭포의 장면에 감동하여 순간적으로 도취된 사람들이 막무가내로 운해로 뛰어들어 자살 아닌 자살을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하물며 석양의 낭떠러지는 금정에 비해 천 배 만 배 황홀한 오색영롱한 장관이 펼쳐지는데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때문에 운해로 뛰어드는 순간 오히려 천당이나 극락에 들어가는 듯한 안락과 행복에 빠져든다고 한다. 셋은, 석양의 낭떠러지에서는 비록 자살하더라도 그 ‘죄업에 대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서이다. 자살 예비자들이 스스로 생을 포기하겠다고 결심한 마당에도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하나 있다. 즉, 종교가 있든 없든 ‘자살은 큰 죄를 짓는 악행’임을 본능적으로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사후에 혹시 지옥에 떨어져 무서운 벌을 받지나 않을까 염려하게 되는 것이다. 한데 석양의 낭떠러지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면 그 ‘자살의 죄’를 용서받음은 물론 극락왕생할 수 있다는 전설이 현실적인 믿음으로 전해오고 있다. 이러한 믿음은 이곳에서 세상을 등지는 사람들이 다른 무엇보다도 큰 위안을 받을 수 있는 요체이다. 특히 유교나 불교적인 도덕규범의 테두리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스스로 이승과 작별을 고(告)하려는 경우에는, 적잖은 의미와 용기를 가져다주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중국은 차치하고 한국이나 일본에서도 자살을 결심한 사람들이 머나먼 석양의 낭떠러지까지 찾아오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인생지사에서 큰 악행의 하나인 자살의 죄업을 구원해준다는 전설이 생겨난 배경에는 석양의 낭떠러지에 그 숨겨진 사연이 있었다. 아미산은 보현보살의 도량이요 영장이다. 보현보살이 깨달음을 얻고 열반에 들기 위해 기나긴 세월 하루도 빠짐없이 좌선 수행을 통해 정진(精進)하던 장소가 바로 그 넓고 깊은 아미산 중에서도 석양의 낭떠러지이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