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컬레이터 역주행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피해자에게 롯데역사(주) 등이 11억6000여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최근에 나와 주목받고 있다. 이 사고뿐 아니라, 에스컬레이터에서 사망 사고까지 발생한 경우도 있어 에스컬레이터 이용에 주의가 요망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3부(부장판사 김용석)는 서울 영등포구 롯데백화점에서 에스컬레이터 역주행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김모(29·여) 씨와 김 씨의 가족이 에스컬레이터 소유 업체인 롯데역사(주)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김 씨 등에게 11억6000여만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1월 24일 내렸다. 재판부는 “에스컬레이터 주요 부품인 드라이빙 체인이 파손돼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에 관리·보존에 과실이 있다”며 “롯데역사는 에스컬레이터의 소유자로서, 오티스엘리베이터 회사는 안전관리를 게을리 한 책임이 있어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김 씨가 손잡이를 잡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다는 오티스 사의 주장에 대해서도 “손잡이를 잡지 않았다는 증거가 없고, 설령 잡지 않았더라도 20여 명이 굴러 넘어진 사건 경위를 볼 때 김 씨의 과실과 상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며 일축했다. “에스컬레이터 소유·관리 업체 모두 책임” 서울중앙지법 김성수 공보판사는 “이번 판결은 승강기 하자로 손해가 발생했으면 유지관리 책임을 전문 업체에 맡겼다 하더라도 소유자 역시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취지”라며 “대법원도 최근 이와 비슷한 취지의 판결을 내렸으며, 따라서 에스컬레이터 소유자와 유지보수 업체들의 철저한 관리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에서 원고는 4명이며, 이 중 김 씨에 대한 배상액은 11억6119만9229원이고, 또 다른 2명은 각각 400만 원씩, 나머지 한 명은 50만 원씩을 받게 된다. 김 씨는 2008년 9월 서울 영등포구 롯데백화점 1층과 영등포역 대합실 3층을 연결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대합실로 가던 중 에스컬레이터가 역주행하는 바람에 8m 이상 굴러 하반신이 마비됐다. 김 씨는 롯데역사가 “에스컬레이터는 우리 소유지만 안전점검·수리 등은 용역업체 책임”이라고 책임을 미루고, 에스컬레이터 관리업체는 “김 씨가 난간(핸드레일)을 잡지 않아 피해가 더 커진 것”이라며 책임을 미루자, 이들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이날 사고가 일어난 에스컬레이터에는 50명이 넘는 시민이 타고 있었는데, 운행 중 갑자기 반대 방향으로 작동해,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던 김 씨 등 22명이 에스컬레이터 끝 부분에서 한꺼번에 중심을 잃고 넘어지면서 밑으로 굴러 떨어져 중경상을 입었다. 특히 김 씨는 제일 아래쪽에 있어 피해가 컸다는 게 원고 변호사 측의 설명이다. 이번 판결과 관련해 롯데쇼핑 관계자는 “법원의 판결에 대해 업체가 코멘트 할 내용이 아니다”라며 “아직 법원에서 판결문이 도착하지 않았다. 판결문이 도착하면 관련 업체들과 논의해 추후에 어떻게 할지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롯데, 사고 나면 책임 피하는 데만 급급 롯데는 유통기업의 골리앗으로 불리지만, 지난 몇 년 사이 에스컬레이터 사고가 빈발해 시민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사고가 날 때마다 롯데 측은 책임을 피하는 데만 급급했다.
지난 2004년 7월 울산 롯데백화점에서 엘리베이터 사고가 났을 때 롯데 측은 ‘땜질식 처방’만 한 뒤 다시 운행토록 해 1주일 사이에 두 차례나 운행이 중단되는 사고가 났었다. 그해 2월엔 울산과 대구에서 각각 정전과 엘리베이터 운행이 중단되는 사고가 나 고객이 큰 불편을 겪었고, 이어 2004년 10월에는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명품관 리모델링 공사 도중에 승강기가 떨어져 인부 1명이 숨지고 3명이 크게 다치는 대형 사고가 났다. 또 지난 2005년 3월 2일 서울 영등포역사 안 롯데백화점의 에스컬레이터가 급작동해 79세 할머니가 뒤로 넘어져 사망한 사고는 롯데백화점 주차요원 조모(55) 씨의 과실로 드러났다. 안전·관리에 전혀 전문지식이 없는 주차요원이 임의로 복제한 작동열쇠로 에스컬레이터를 작동한 것으로 밝혀졌다. 조 씨는 사고 당일 내린 폭설로 작업을 하던 중 에스컬레이터를 작동해 달라는 이용객들의 요청을 받고 자신이 갖고 있던 열쇠로 에스컬레이터를 작동했다. 조 씨는 경찰에서 지난 2004년 6월 롯데백화점 안전요원으로부터 열쇠를 건네받아 임의로 복사해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롯데백화점은 당시 사고 뒤 에스컬레이터 관리 계약이 그 전달에 끝났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으나, 경찰 조사 결과 이런 주장은 거짓말로 드러났고, 롯데 측에 도덕적 비난이 쏟아졌다. 뿐만 아니라, 롯데호텔에서는 지난 2007년 1월 5일 건설인 신년 인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이 호텔을 찾은 한명숙 전 총리 일행이 탄 호텔 에스컬레이터가 갑자기 3m쯤 아래로 역주행한 뒤 멈춰 서 총리실 간부와 수행원 일부가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넘어지는 아찔한 사고를 겪기도 했다. 당시 호텔 측은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타면서 기계가 하중을 이기지 못해 사고가 발생했다”며 총리실 측에 사과의 뜻을 전달했다. 전문가들은 수많은 인파가 찾는 유동업소 또는 호텔의 특성상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한 그룹 차원의 철저한 관리가 필요한데, 이를 총괄하는 그룹 ‘정책본부’의 대응 방식이 너무 소극적이며, 사고가 나면 책임을 이용자 또는 관리업체에 전가하는 태도는 옳지 않다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