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 도요타자동차가 전 세계에서 대규모 리콜 사태로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현대자동차가 ‘더블 스탠더드(이중 기준)’ 전략을 들고 나와 주목을 받고 있다. 도요타라는 절대 강자가 내리막길인 미국·유럽 등에서 대규모 갈아타기 바람이 불 것에 대비해 ‘믿을 만한 고품질 차’를 내놓아 시장 흐름에 적극 올라타는 한편으로, 중국·인도 같은 신흥시장에서는 저가 소형차로 바람을 일으킨다는 전략이다. 현대기아차그룹 계열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박홍재 소장은 지난 2월 9일 서울 양재동 현대차 본사에서 열린 ‘자동차산업 환경 변화와 2010년 주요 이슈’ 세미나에서 이런 전략을 소개했다. 그는 “신흥시장에서는 가격 위주 전략을, 선진국 시장에서는 품질 위주 전략을 펼치는 더블 스탠더드를 적용해 시장에 맞게 접근하는 전략이 중요하고, 시장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승자가 결정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신흥시장의 경우 품질보다는 저가 소형차를 선호하는 중산층이 가장 큰 타깃이므로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이 이들을 어떻게 고객으로 확보할 것인지 중요한 과제로 부상했다”며 “선진국에서는 대량 리콜 사태로 소비자들의 자동차 브랜드 교체 가능성이 높은 시점이어서 업체 간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올해 세계 자동차 시장 전망에 대해 박 소장은 “2008년 수준으로 자동차 시장이 회복되면서 중국·인도 등 신흥시장이 시장 성장을 주도하고,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 사이의 친환경차 양산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유럽 자동차 시장 계속 침체 속 올 세계 자동차 시장 4.3% 성장 예상 우선 소형차 시장의 경우 세계 금융위기 이후 소형차의 전략적 중요성이 커진 상태다. 각국 정부가 채택한 새 차 구입 지원정책이 끝나가면서 소형차 비중이 일시적으로는 감소할 수도 있지만, 글로벌 자동차 업체는 소형차 전략을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박 소장은 “금융위기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작은 신흥시장이 위기 이후 시장 회복을 견인할 것”이라며 “신흥시장 가운데 중국은 2007년을 계기로 일본의 1960년대, 한국의 1980년대와 유사한 1가구 1자동차 시대인 ‘모터리제이션’ 단계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의 내수진작 정책과 중국 중소도시의 소득 증대가 모터리제이션 확산의 주요 원인이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세계 자동차 시장의 총 수요는 6610만 대로, 지난해보다 4.3%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세계 각국의 신차 구입 지원정책의 종료와 금리·유가 상승으로 부정적인 요인도 있지만, 중국은 올해 9.9% 증가한 1500만 대, 인도는 11.8% 증가한 253만 대, 브라질은 5.3% 증가한 317만 대, 러시아는 11.9% 증가한 165만 대 등 신흥시장에서 자동차 시장이 크게 성장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미국 시장은 최악의 침체를 맞았던 작년보다는 8.3% 증가하겠지만, 2차 오일쇼크의 영향을 받은 1982년 수준인 1127만 대 수준에 머물 것으로 예상됐다. 유럽 역시 정부의 지원정책 종료로 작년보다 10.9% 감소한 1291만 대 수준을 보일 것으로 전망됐다. 세계 자동차 시장은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크라이슬러·포드 등 ‘빅3’ 업체들이 추락하는 한편,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자동차 수요국으로 떠올랐다. 자동차 업체들은 미국발 금융위기로 직격탄을 맞았으나, 각국 정부의 신차구입비 지원정책에 힘입어 6월 이후 최악의 위기 국면에서 점차 탈피했으며, 미국의 빅3는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유럽과 미국이 주춤하는 사이 중국 자동차 업체의 시장 공략은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 베이징자동차는 스웨덴 자동차 메이커 사브를 인수키로 했으며, 중국 2위 지리 자동차는 지난해 12월 23일 포드로부터 볼보 자동차를 매입하는 문제에 대한 실제적 합의에 도달했다. 인수가는 20억 달러 안팎으로 전해졌다. 10년 전에 포드가 볼보를 인수하며 들인 돈의 3분의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중국 지리 자동차의 볼보 인수는 글로벌 강자로 부상하기 위한 전략적 성격이다. 중국 자동차 업계는 해외 브랜드 인수합병(M&A)을 통해 향후 주목받는 경차·친환경차 시장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시장 관계자들은 지리 자동차가 볼보의 기술과 판매망을 흡수해 소형차 판매 경쟁력을 한층 확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볼보가 전기차 개발을 완료했다는 점에서 지리 자동차는 친환경차 판매에서도 경쟁력을 갖출 것으로 보인다. 박 소장은 “현대기아차는 작년에 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서도 좋은 성과를 냈다”며 “글로벌 시장이 저성장·저수익 구조에 빠져 있지만 이 상황을 기회라고 판단하고 더욱 공격경영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친환경차 절대강자 도요타 삐끗하는 사이 강자들, 하이브리드·전기차 시장쟁탈전 선진국 시장에 대해 박 소장은 “올해 하이브리드차 판매가 확대되는 가운데 전기차도 본격적으로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며 “환경규제 강화와 배터리 기술 발전 등으로 친환경차는 본격적인 양산 경쟁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 소장은 이어 “도요타 리콜 사태 이후 친환경차 시장은 전 차종의 하이브리드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하이브리드차의 가격 인하로 보급이 확대될 것”이라며 “전기차도 급부상할 것이며, 하이브리드차에서 열세인 업체들 사이의 전기차 시장 선점 경쟁이 가시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대기아차는 작년 7월에 청정연료인 LPG를 기반으로 하는 LPi 하이브리드차량을 출시한 바 있다. 현대기아차는 향후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전기차, 수소연료전지 차까지 전 범위를 포괄하는 친환경차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중형 세단급 이상에도 탑재하여 쏘나타와 로체 가솔린 하이브리드를 미국시장에 올해 선보일 예정이다. 세계 최초의 양산 전기차인 일본 미쓰비시의 아이미브는 올해부터 일본 내에서 본격적으로 시판된다. 미국 GM은 전기차 ‘시보레 볼트’를 올 하반기에 시판할 계획이다. 세계적인 전기차 업체로 도약을 준비 중인 중국 비야디도 올해부터 전기차 양산에 들어가고, 닛산은 올해 전기차 ‘리프’를 일본과 미국 시장에 출시한다. 또한 프랑스 르노도 내년에 전기차 모델을 내놓을 계획이다. 리콜 사태로 타격을 입고는 있지만 여전히 세계 친환경차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절대 강자 도요타는 새로운 하이브리드 모델을 내놓고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GM은 전기차 분야의 선두업체를 지향하며 이미 하이브리드차에 플러그인 방식을 적용해 시장 거점을 확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