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 지난해 연말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KB국민은행의 상황을 표현하는데 이보다 적합한 표현은 없을 것 같다. KB금융지주의 회장으로 내정됐다가 ‘관치금융’ 논란에 휩싸였던 강정원 KB국민은행장 사임 건부터 시작해, 사전조사의 강도와 내부문건 유출 등을 둘러싸고 금감원과 미묘한 갈등 분위기를 자아냈던 일, 그리고 2008년보다 70% 이상 감소한 순익과 IT팀장의 자살에 이르기까지, 지난해 연말부터 이어진 KB금융지주의 행보는 ‘KB’라는 이름이 가지고 있던 과거의 위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리고 지난달 24일 한 인터넷 매체를 통해 드러난 회계장부 불일치 사건은 KB국민은행과 KB금융이 이제는 내부적으로도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주기에 충분했다. 내·외적으로 갈지(之)자 행보를 거듭하고 있는 KB국민은행과 KB금융의 위기는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에 은행권은 물론 금융계 전체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100조 이상 될 수 있는 장부 불일치에 KB는 “계산오류” 동네 구멍가게에서도 벌어지지 않을 일이 ‘리딩 뱅크’를 자처하던 KB국민은행에서 일어났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수년에 걸쳐 벌어졌다. 규모도 최대 100조 원 이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은행가의 반응이다. 도대체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금감원의 조사 결과 드러난 바에 의하면, KB국민은행의 회계장부 불일치는 대차대조표 상의 주요 재무 계수와 전산처리 원장 내용이 일치하지 않아서 드러난 것으로 나타났다. 대차대조표는 손익계산서와 함께 재무제표의 중심을 이루는 것으로, 기업의 자산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 중 하나이다. 또한 전산 원장은 재무제표의 근거가 되는 것으로, 이 두 수치가 맞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에 의하면, 이번 종합검사 과정에서 KB국민은행 대차대조표의 현금 및 예치금·유가증권·유형자산 등 다양한 항목에서 전산원장과 차이가 있는 점을 발견하고 KB국민은행 측에 소명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KB국민은행 측은 과거에 주택은행과 통합하는 과정에서 전산 통합 도중 온라인화되지 않은 충당금, 파생상품 거래 등의 항목에서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이 같은 내용이 24일 오후 일부 매체를 통해 공개되자, KB국민은행은 25일 자정 쯤 각 매체에 이에 대한 해명자료를 배포하는 등 발빠르게 진화작업에 나섰다. KB국민은행은 배포한 자료를 통해 “‘전산 총계정 원장과 일부 비온라인 계정 보조원장잔액 불일치 금액이 100조 원대’라고 보도됐으나 계산방식의 착오에 기인된 오류”라며 “KB국민은행의 B/S 금액은 일일 현금 대사과정을 거쳐 마감되므로 회계 상 오류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비온라인 계정 관리방식을 2006년도에 온라인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고객과 직접 관련이 없고 거래 발생빈도가 낮은 업무 중 일부를 보조원장을 없애고 거래 건별(LOG DATA) 정보를 총계정 원장에 직접 반영하는 방식으로 설계했다”며 “이로 인해 2006년도 3월 이후 보조원장 없이 거래된 누적 거래의 합이 과다하게 산출된 것으로 추정되나, 외부 회계법인과 공동 실사를 통해 건별(LOG DATA) 검증을 완료하였으며, B/S 잔액의 정확성 여부도 검증됐다”고 KB국민은행 측은 언급했다. 금감원 “국민은행 소명자료 재검토할 것”
한편, 종합검사 과정에서 KB국민은행의 회계장부에 이상이 있음을 발견한 금감원 측은 지난달 25일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KB국민은행 측의 소명에 대한 추가 확인을 실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금감원은 “지난 1월 5일부터 2월 2일까지 국민은행에 대하여 실시한 IT 부문 검사과정에서 일부 계정과목 금액이 해당 전산원장 금액과 불일치한 점을 발견한 바 있다”며 “국민은행 측이 과거 은행 통합과정에서 전산화하지 못한 계정(비온라인 계정)의 관리 소홀에 기인한 것으로, 회계 상의 오류는 전혀 없는 것으로 소명했으며, 금감원은 이에 대해 추가 확인 중에 있다”고 밝혔다. 한편, 금감원은 보도자료 발표와는 별개로 지난달 25일 긴급 브리핑을 갖고 위와 같은 입장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긴급 브리핑에 참석한 금감원 관계자는 “이번 오류는 자산의 불일치라기보다는 일부 부분에 대한 업데이트와 이에 대한 관리가 소홀해서 벌어진 것”이라며 “국민은행의 소명 내용은 물론 모든 실제상황을 다시 확인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 관계자는 “이번 오류를 두고 일부에서는 회계 부정에 관련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KB국민은행과 금감원 모두 회계 부정과는 거리가 먼 사안으로 보고 있다”며 “단순히 비온라인 계정 관리를 소홀히한데서 비롯된 사건으로 보고 있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이 관계자는 “기존 종합검사 중 IT 검사는 소수의 인원이 시스템의 정상적인 작동 여부만 확인했었다”며 “이번에는 차세대 전산 시스템 가동을 앞두고 있어 전체 원장과 세부 원장의 일치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회계장부의 불일치가 발견됐다”고 말했다. ‘KB금융 효과’인가…단순 해프닝으로 끝날지 관심 ‘나비효과’라는 말이 있다. 미국의 기상학자인 에드워드 로렌츠가 1972년에 미국 과학부흥협회에서 실시한 강연의 제목인 <예측 가능성-브라질에서 한 나비의 날갯짓이 텍사스 돌풍을 일으킬 수도 있는가>에서 유래한 이 말은 작은 변화가 결과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초래할 수 있는 경우를 설명하는 표현이다. 이번 KB국민은행의 회계 불일치 사건을 두고 당사자인 KB국민은행과 금감원은 ‘단순한 해프닝’정도로 보고 있는 듯 하지만, 그 영향력은 절대 단순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KB국민은행의 작은 날갯짓이 은행권, 더 나아가 금융계 전체에 미친 반향은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KB국민은행과 금감원이 각각 자신들의 입장을 발표한 25일 금융계 전문가들은 “이번 회계 오류는 일종의 해프닝”이라며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칠 만한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이들도 KB금융이 감독 당국과 계속해서 갈등을 빚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하며, 자칫하면 신임 회장이 선출되기 전까지는 이러한 현상이 지속적으로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더구나 일각에서는 처음 해당 내용이 보도된 24일 밤 청와대가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과 진동수 금융위원장, 김종창 금감원장 등을 소집해 이러한 사건이 발생한 데 대해 강하게 질책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어, 단순한 해프닝으로 이번 사건이 마무리되기는 무리가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기도 했다. 아울러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력한 금융기관인 KB국민은행에서 회계 오류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한 해외 금융사들의 일부는 정부 측에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기도 해 이번 사건의 영향력이 우리나라를 넘어서 세계적으로도 퍼질 수 있음을 입증했다. KB금융과 금융 당국 간의 껄끄러운 관계는 해당 분야의 관계자는 물론이고 일반 국민들도 이미 알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최근 KB국민은행과 KB금융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사고들은 분명히 우리나라 경제계에 큰 파급력을 가지고 있다. 실적이 저조하고 금융 당국과 계속해서 대립을 하더라도 KB금융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금융사라는 데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또한 1인자의 자리는 결국 자신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이번 회계 오류 사건은 금융 1인자가 보여줘서는 안 되는 민망한 모습이었음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금융계 전체적으로 이번 사건에 큰 관심을 보이는 것도 바로 1인자에게 기대하는 신뢰가 무너졌다는 인식에서 기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