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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처럼 타버린 마음, 이제는 예술이 됐죠”

연탄을 주재료로 과거의 아픔에서 이제 위로-용서를 담는 유진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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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61호 김대희⁄ 2010.03.15 16:02:37

그림을 그리는 데 필요한 재료는 멀까? 당연히 가장 먼저 물감을 떠올리지만, 물감만이 재료는 아니다. 유화, 아크릴, 포스터, 연필, 색연필, 마카, 수채화 등 미술의 재료는 다양하고 기법 또한 다채롭다. 여기서 퀴즈 하나. 연탄으로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있을까, 없을까. 정답은 ‘있다’다. 강동구 명일동 작업실에서 만난 유진숙 작가의 작업 주재료는 바로 연탄이다. 새까만 연탄이 아닌 다 타버린 연탄재다. “연탄은 나 같다. 대학 때 무언가 새로운 재료를 쓰고 싶었는데 마침 너무 힘든 사랑을 했다. 그때 연탄이 눈에 들어왔고 타버린 내 마음처럼 느껴졌다. 이후 연탄을 캔버스에 붙이기 시작하면서 연탄을 주재료로 쓰기 시작했다. 지금은 연탄재를 갈아서 물감과 함께 섞어 쓰기도 한다.”

힘든 지난 시절이 유 작가에게 준 선물이었을까?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좋아했고 소질도 뛰어났던 유 작가는 유독 많은 방황과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어릴 때 특별한 미술교육도 받지 않고 혼자서 그림을 그렸는데 주위에서는 어느 미술학원을 다니냐고 자주 물었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당황스럽고 부끄러웠다. 물론 지금은 당당하게 미술학원에 다닌 적이 없다고 말한다”고 그녀는 웃었다. 이어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고등학교에 입학한 순간 사춘기가 왔고 두 달 만에 학교를 그만뒀다. 그래서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에 진학했다”고 덧붙였다. 유 작가는 대학에 진학해 더 큰 방황을 했다. 대학을 10년 만에 졸업했다니 사정을 알 만하다. “지금 생각하면 그 경험이 내게는 너무나 큰 재산이 된 것 같다. 방황했던 만큼 그림을 더 그렸고 내가 나를 치유하는 방법이 됐다. 그림 때문에 그 시절을 이겨낼 수 있었고 그림이 내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그 때문인지 당시 그림은 일차적 시선으로 표현이 직접적이고 강하다. 그런 시절을 다 이겨낸 지금은 그림도 한결 부드러워지고 많이 걸러지면서 직접적이라기보다는 상징화되고 형태와 소재도 달라졌다. “예전 그림이 힘들었던 시절의 한풀이었다면 지금은 그 시절에 대한 위로와 용서에 집중돼 있다”고 설명했다. 연탄재를 주재료로 사용하는 독특함 때문인지 그림은 강렬하면서 미묘한 기운을 내뿜는다. 언뜻 보면 다소 무거워 보이는 분위기를 풍기며 색감도 원색과는 다른 특별한 느낌의 효과를 준다. “사실 연탄재가 무거워 보이는 재료는 아닌데 특유의 가라앉는 분위기를 낸다. 무언가 걸러지면서 탁한 느낌을 주기 때문인 것 같다. 밝은 분위기도 어두운 분위기도 모두 표현할 수 있다. 그림의 내용을 알면 밝은 내용이지만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어두운 가운데 희망이나 행복의 여지를 남겨둔다. 반대로 슬픔은 밝은 모습 중 소외감을 주는 등 반어법으로 비틀어 표현한다.” 이러한 유 작가의 최근 작품에는 노인이 많이 등장한다. “나 자신이 직접 노인의 처지에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자 그렸다. 그러다보니 세월의 모진 굴레를 다 견뎌낸 그분들이야말로 시간이나 여유를 가진 모델인 걸 알게 됐다. 현재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그 동안의 상처와 아픔, 그리고 깨달음과 용서, 위로를 주제로 노인 모델 그림을 그리겠다.” 무엇보다 주재료가 연탄재다 보니 힘든 점도 많다. 특히 그림을 그리던 중 수정을 하려면 고치는 것보다 오히려 다시 그리는 게 빠를 정도며 여기저기에 먼지가 많이 날리는 등 애로사항이 이만저만 아니다. 연탄이라는 독특한 재료로 관심도 많이 받았지만 주위에서는 이제 그만 재료를 바꾸라는 얘기도 많이 한단다. “연탄재 재료이기 때문에 작품이 손에 묻고 그림을 사려는 컬렉터들로부터 ‘보존성 문제가 있으니 검증된 재료를 바꿨으면 좋겠다’는 말도 들어 바꿀까도 생각해 봤지만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얘기에 바꾸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런 점 등을 보완하려고 노력했고 지난해 말에 나만의 특별한 비법을 개발해 이제는 손에 묻지도 않는다.” 올해는 당분간 작업에만 몰두할 계획이라는 유 작가는 기억할 수 있는 최대한 어린 시절부터 화가가 꿈이었고 다른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고 한다. 그림에 몰입해 그리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웃음을 짓는 유 작가는 삶 자체가 진실된, 정직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면서 시대 흐름에 따르는 대중성보다 자신에게 맞는 작업을 해나가겠다는 강한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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