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그날 공연을 보셨나요? 그날은 몸 상태가 무척 안 좋았거든요. 좋을 때 보셨으면 좋았을 텐데….”
평일 오후 공연을 약 3시간 앞두고 한전아트센터 로비에서 만난 뮤지컬 배우 윤공주(28)는 기자가 이틀 전에 공연을 봤다면서 인사를 건네자 울상을 지었다. 컨디션이 형편없는 상태에서 한 공연을 보여준 데 대한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그녀의 얼굴에서 교차했다.
윤공주는 지난달 27일부터 서울 한전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올슉업>(All Shook Up)의 주인공으로 무대에 오르고 있다. <올슉업>은 미국의 로큰롤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악으로 꾸며진 주크박스 뮤지컬로, 윤공주는 2007년 초연부터 2009년·2010년 공연에 모두 올랐다. 그만큼 <올슉업>은 윤공주에게 매우 특별한 공연이다. ‘all shook up’은 ‘완전히 넋이 나간’이란 의미다.
윤공주가 연기하는 나탈리는, 아버지를 도와 자동차 정비공으로 매일 얼굴에 기름때를 묻히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은 털털한 여자지만, 언젠가 자신을 구원해 줄 운명의 남자를 기다리는 모습에서 소녀 같은 순수함이 느껴지는 여인이다. 나탈리는 자신이 좋아하는 채드의 곁에 있기 위해 남장도 서슴지 않는다.
최근 혹독한 실연의 아픔을 겪었다는 윤공주에게 <올슉업>은 그녀의 힘든 시기를 잊게 해주는 효과 만점 약(藥)이다.
“나탈리가
-가장 좋아하는 뮤지컬 곡을 꼽는다면요.
“너무 많아서 꼽을 수가 없어요. 뮤지컬 넘버는 좋은 곡이 너무 많아요.”
-이름 때문에 놀림을 많이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어째서 부모님이 공주란 특이한 이름을 지으셨는지 궁금하군요.
“제가 늦둥이거든요. ‘예쁘게 잘 자라라’란 의미로 지으셨대요. 다른 형제들은 모두 평범한 이름이거든요.”
-몸매 관리는 평소에 어떻게 하나요?
“공연을 보시면 아실 거예요. 굳이 관리하지 않아도 이렇게 무대에서 뛰어다니는데 살이 찔 틈이 없죠. 물론 쉬면 살이 찌는데, 그땐 많이 걷고 스트레칭을 자주 해요. 헬스장에 가거나 운동에 돈 쓰는 건 아깝더라고요.”
-관객의 반응이 좋을 땐 쾌감을 느낀다고 하셨습니다. 반대로 반응이 안 좋을 땐 어떤가요?
“관객은 정말 솔직한 것 같아요. 배우가 뭔가 100% 집중하지 않을 땐 반응이 없으니까요. 열심히 하는데도 반응이 없다 싶으면 더 열심히 합니다.”
-관객의 반응이 연기에 영향을 끼치진 않나요?
“두렵진 않습니다. 오히려 더 집중해서 관객이 더 빠져들게 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걸요. <올슉업>은 관객이 신나야 하는데 조용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그들이 재미없게 본다고 생각하지 않고 표현을 못 할 뿐이라고 받아들입니다.”
-깨고 싶은 윤공주에 대한 편견이 있다면요.
“예전에는 워낙 예쁜 스타일의 연기를 많이 해서 (예쁜 이미지를 깨고 싶은 편견이) 있었는데, 알돈자와 홀리를 해보니 점점 더 부족한 부분을 채워 나가고 싶은 생각뿐이에요. 새로운 모습에 계속 도전하고 싶어요.”
-이번엔 상 욕심이 없나요?
“상 받을 만한 작품을 한 게 있나 싶어요. <웨딩 싱어>로 여우조연상?(웃음). 상은 받으면 좋은데, 사실 받으면 부담만 커지고 그래요. 저는 가늘고 길게 가고 싶거든요.”
-원초적인 질문인데요, 연극영화과에 입학한 뒤에야 무대의 희열을 실감했다는데, 그렇다면 무엇이 되기 위해 연극영화과에 들어간 거죠?
“그냥 막연하게 배우가 하고 싶었어요. 부모님도 반대하지 않으셨죠. 그저 ‘하고 싶은 거 해라’라고 말씀하셨어요. 대학에도 들어가니까 너무 좋아하셨고요.”
-앙상블들에게 ‘제2의 윤공주’를 꿈꾸는 모델이 돼 있는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앙상블일 때와 주인공일 때의 마음가짐은 어떻게 다른가요?
“앙상블을 했을 때는 어릴 때고, 그때나 지금이나 열심히 하는 마음은 똑같아요. 위치는 많이 달라졌지만요. 주인공일 땐 책임이 무겁거든요. 무대 위의 열정과 순수함은 앞으로도 변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토록 하고 싶다던 <미스 사이공>이 최근 개막해 공연 중인데요, 오디션을 보지 않았나요?
“봤었죠. 그런데 안 시켜주더라고요. 대부분의 배우가 <미스사이공> 오디션을 봤을 거예요.”
-큰 좌절을 안겨 준 <아이다> 오디션은 3월 29일부터 4월 10일까지 진행되고 있는데, 도전하지 않았나요?
“하면 좋겠지만, 도전하진 않았어요. 제가 한다면 ‘아이다’보다는 ‘암네리스’ 쪽이겠죠? 저는 아이다처럼 흑인 필(feel)이 나지 않으니까요.”
-영화나 드라마 진출은 생각하지 않았나요?
“생각을 안 한 건 아닌데요, 뮤지컬도 할 게 많은데 굳이 뮤지컬을 제치고 영화나 드라마를 할 필요가 있나 싶어요. 물론 기회가 있으면 더 좋겠죠.”
-뮤지컬 배우로 자리를 잡았는데요,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작품이나 역할이 있나요?
“예전엔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요. 그저 좋은 작품을 만나 꾸준히 했으면 좋겠어요. 죽을 때까지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어요.”
-데뷔 10년차인데요, 지나온 활동을 자평해주세요.
“제가 저를 평가하는 일은 참 어려워요. 그냥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지금까지는 앞만 보고 달렸다면, 이젠 서른이니까 천천히 모든 걸 봐가면서 갈 생각입니다.”
-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