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박준희가 작가로 변신해 처음 펴낸 <음악 또라이들>에는 굴곡진 삶을 산 음악가 9명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 중 가슴을 뜨겁게 내리치고 눈시울을 붉게 만드는 한 가수의 이야기가 있다. 바로 가수 현진영(39·본명 허현석) 이야기다.
1990년 ‘현진영과 와와’로 데뷔한 그는 <흐린 기억 속의 그대> <현진영 GO 진영 GO> <두근두근 쿵쿵> 등 히트곡을 발표하며 90년대에 큰 인기를 누렸다. 처음 그가 등장했을 때만 해도 낯선 후드 티(두건 달린 셔츠)와 헐렁한 바지 차림으로 격렬한 춤을 추면서 노래하는 그는 가요계의 이단아였다.
그러나 시대는 곧 그를 알아봤다. 바로 가요 프로그램 1위를 석권하며 톱스타로 급부상했던 것이다. 거리에는 그의 노래가 울려 퍼졌고, 장기자랑에서 현진영 식의 옷과 춤과 노래는 최고 인기 아이템이었다.
그러나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대마초와 필로폰 투약 등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려 하루아침에 수감자 신세가 됐기 때문이다. 이후 ‘현진영=대마초 가수’란 대중의 인식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꼬리표처럼 그를 따라다니고 있다.
그러나 <음악 또라이들>에 등장하는 현진영의 진짜 모습은 이런 일방적인 편견을 없애준다. 책은 그를 문제 가수가 아니라 고통받고 성장하는 인간으로 다시 보게 한다. 현진영이 한국 최초의 전자 재즈 오르간 연주자 허병찬 씨의 아들이라는 점부터, 모친의 발병으로 이어지는 불행들. 중학생이란 어린 나이에 생계에 뛰어들어 가수로 데뷔하기까지의 과정.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고통 때문에 시도한 두 번의 자살 기도. 주위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우연히 시작한 대마초. 고달픈 수감 생활과 오랜 방황. 2006년
-중학생이란 어린 나이에 생계를 책임지겠다는 생각을 한 게 참 대견한데요, 그만큼 의지할 곳이 없었나요? “집안을 책임지겠다고 생각해서 일한 건 아니었어요. 정말로 가난한 집이었으면 동사무소에서 쌀이라도 지원받을 텐데, 저희 집은 전세이긴 하지만 아파트에서 살았거든요. 그런데 어머니 병 치료에다 아버지도 아프시니, 그 삶을 유지할 수가 없었어요. 어렸지만 전기 요금, 전화 요금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어서 일하게 된 거죠.” -첫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 이수만 대표의 이야기도 책에 자주 나오는데요, 그는 현진영 씨에게 어떤 사람인가요? “은인입니다. 제가 가수가 되는 교육을 받을 때 생활비도 대주고 많이 도와주신 분이에요. 지금까지도 정말 존경하고요.” -최근 SM엔터테인먼트가 아이돌 가수와의 계약 문제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데요, 이에 대해 SM 출신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솔직히 지금의 아이돌 가수들이 배가 불렀다고 생각해요. 제가 SM 소속일 때는 아마 지금의 아이돌보다 계약 조건이 더 나빴을 거예요. H.O.T나 JTL 등이 소속사를 상대로 계약 해지 소송을 거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그들의 욕심이 과하다고 생각했어요. 회사나 이수만 대표의 입장은 전혀 생각하지 않은 행동이니까요. 자신들이 그만큼 되려면 회사에서 어마어마한 자금과 인력·시간·노력을 투자하잖아요. 그런데 계약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소속사를 옮긴다느니 그런 소리를 들으면 투자자는 뭘 먹고 살란 말인지 모르겠어요. 어째서 보아는 SM과 계약을 연장하는 걸까요? 이는 가수와 회사 간에 믿음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회사도 보아가 등을 돌리지 않을 거라고 믿기 때문에 그녀에게 아낌없이 투자하는 거고요. 제가 지금까지 SM 시절을 못 잊는 이유는 내 음악을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게끔 지탱해줬기 때문입니다.” -요즘 자살하는 연예인이 많습니다. 자살을 두 번이나 시도했다 살아난 사람으로서 자살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별로 없어요. 예전에 자살을 주제로 한 <100분 토론>(MBC)에도 나갔지만, 동문서답했던 기억이 나네요. 당시 매니저가 가만히 앉아 있으면 된다고 해서 음반이나 홍보할 요량으로 출연을 결정한 건데, 갑자기 손석희 아나운서가 저한테 질문을 해서 당황했어요. 그리고 정말 ‘또라이’로 보일 만큼 엉뚱한 말만 늘어놨죠. 정말로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싶었어요. 제가 삶과 죽음의 경계를 경험해본 사람이기 때문에 남의 죽고 사는 문제를 정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인데, 참으로 위험한 발상이죠. 이에 대해 정의를 내릴 수 있는 건 절대신(神) 외에는 없어요. 정확한 내용도 모르면서 그들의 죽음에 대해 말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지금의 삶에는 어느 정도 만족합니까? “누구나 그렇듯이 100% 만족하진 못합니다. 만족하려고 노력할 뿐이에요. 더욱이 제 목표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얻거나 스타가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아마 죽을 때까지 만족하지 못할 겁니다.” -올해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음반 발매 예정은 6월인데, 더 오래 걸릴 수도 있어요. 녹음은 거의 마친 상태인데, 살도 빼야 하고 준비할 게 많아서요. 또 새로운 매니저도 구해야 하고요.” -결혼 계획은 없습니까? “올해는 없어요. 저도 저대로 바쁘지만, 사실 저보다 여자 친구가 더 바쁘거든요. 5년 동안 준비한 쇼핑몰을 5월에 드디어 오픈할 계획이라 정신이 없나 봐요. ‘씨이니쓰’(szinesz)라는 이름의 수제화·여성의류 쇼핑몰인데, 많이 방문해주세요(웃음).” -현진영 씨의 최종 꿈이 궁금합니다. “꿈은 두 가지가 있어요. 한 가지는 우주인이 되는 거고, 다른 한 가지는 막장인생을 살다가 지금의 상태로 돌아오는 거예요. 솔직히 이 두 가지 모두 이루기 힘든 꿈이죠. 막장인생은 저의 음악이 어떻게 변할지가 궁금해서 한 번 살아보고 싶은 거예요. 고난이 있을 때마다 제 음악은 눈에 띄게 변했거든요. 그렇지만 정말 완벽한 막장인생은 살아보지 못했어요. 지금은 대리만족을 위해 서울역에서도 자보고, 찜질방에 가서 아줌마들 이야기도 들어보고 있어요. 노숙자들의 이야기를 극한상황에서 듣다 보면 그냥 듣는 것보다 50~100배 이상 다가오거든요. 그들의 이야기는 제 음악을 변화시켜요.” <인터뷰 후기>… 현진영과 인터뷰를 한 4월 8일은 그에게 매우 힘든 날이었다. 법원이 연예기획사 제이에스 엔터테인먼트가 현진영을 상대로 낸 레슨비 등 반환청구 소송에서 ‘현진영은 제이에스에 4600여만 원을 지급하라’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이 났다는 기사가 인터넷에 도배된 날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속은 약속이다’면서 약속을 지켜준 현진영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와의 인터뷰는 약 3시간 동안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현진영의 파란만장한 삶을 더 알고 싶어 진행한 인터뷰이지만, 이야기를 나누면서 현진영이 흔하디 흔한 싱어 송 라이터가 아니라 ‘진정한 뮤지션’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제임스 브라운’(미국의 리듬 앤드 블루스 가수·작곡가)처럼 자신의 음악에 있어 하나의 교과서가 되고 싶다는 그의 소망이 이뤄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