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태 편집국장 한국인들 사이에 유명한 책이 있죠. 바로 연암 박지원이 쓴 ‘열하일기(熱河日記)’입니다. 워낙 유명한 책이지만 엄청 두껍습니다. 최신 번역판(김혈조 교수 번역)은 500페이지가 넘는 책이 세 권입니다. 230년 전(서기 1780년)에 연암이 중국 황제를 알현하는 조선 사신 일행을 따라가면서 썼다는 이 두꺼운 책을 과연 읽어야 하나 하는 생각에 그간 요리조리 이 책을 피해 다녔습니다. 완역본을 읽기보다는 ‘이 책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주요 내용만 파악하려 들다가, 결국 완역판을 손에 들었습니다. 완역본이니 큰 흐름과는 상관없는 자잘한 내용도 많습니다. 그런데, 원본을 읽으니 역시 맛이 다르군요. 소개서와는 달리, 연암의 체취가 그대로 느껴집니다. 이런 게 바로 원본을 읽는 맛임을 새삼 느낍니다. 그 아득한 옛날에 그가 청나라 곳곳을 휘젓고 다니면서 써놓은 글들은 참으로, 오늘날 인터넷 정보검색이란 엄청난 수단을 장착하고 중국을 방문해도 웬만한 글쟁이가 근처에도 못 갈 정도로, 낱낱이 자세하게 당시 청나라의 문물과 사람을 보여줍니다. 연암의 글을 읽으니 “아, 이 사람은 내 선배 기자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가 일기에 쓴 글은 자세한 숫자와 데이터로 현지 사정을 보여주는 ‘스트레이트 기사’부터, 자기 생각이나 감정을 풀어내는 칼럼 또는 기자수첩 같은 글들, 잠입기자처럼 술집·여염집에 몰래 들어가본 이야기들, 웃기려고 쓴 코미디 같은 글들, 울리려고 쓴 탄식까지, 정말 ‘일급 저널리스트’가 풀어낼 수 있는 온갖 기교와 글 종류를 망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자’라는 직종이 없던 그 당시에, 조선의 일급 지식인이며 양반 중의 양반 출신인 그가 이처럼 자기 한 몸 사리지 않는 ‘취재 열정’을 발휘하고, 길에서 말을 타고 가며 먹을 갈아 글을 쓰고 현지 문물을 그림으로 그린 이유는, 책의 곳곳에서 감지되지만, ‘통곡할 만한 자리’라는 글에서 가장 잘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만주 벌판을 지나던 연암은 툭 터진 벌판에서 “좋은 울음터로다. 한바탕 울어볼 만하구나!”라고 외칩니다. 옆에 있던 사람이 “웬 울음?”이라고 묻자, 그는 “답답하고 울적한 감정을 확 풀어버리는 것으로 소리쳐 우는 것보다 더 빠른 방법은 없소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좁은 조선반도 안에서 양반들이 백성 모두가 잘사는 나라를 만들 생각은 안 하고, 이랬다저랬다 별의별 핑계를 들이대며 다른 사람을 착취하고 죽이는 모습을 ‘호랑이의 꾸짖음(虎叱)’이라는 글로 비판한 연암은, 경제 수준이나 제도·문물이 조선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앞서 나간 청나라를 거리거리에서 확인합니다. 조선 사람들이 ‘오랑캐가 세운 나라’라며 우리끼리는 청나라를 업신여기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청 황제의 부름에 꼼짝 못할 뿐 아니라, 사는 형편이나 경제 수준은 현격한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확인한 그의 가슴에는 ‘답답하고 울적한 감정’이 가득 찼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만주 벌판에서 통곡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넘겨짚어봅니다.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 이렇게 청나라의 앞선 문물과 제도를 속속들이 보여주면서 개선점을 제시했지만, 그런다고 조선은 달라지진 않았죠. 그리고 130년 뒤(1910년)에 조선은 패망합니다. 230년 전 참담한 조선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 실성한 사람처럼 보고서를 써댄 ‘박지원 대선배’의 글을 보면서, 그리고 오늘날 우물 안 개구리처럼 답답하고 울적하게 살아가는 한국의 현실을 보면서,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왜 이렇게 작고 속 좁게 사는지 묘한 동일감을 느끼면서 저도 ‘한바탕 울어볼 만한 좋은 울음터’를 찾아보고 싶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