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위기는 기회다’라는 말을 하지만, 위기 상황에서 재기의 기회를 노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개의 경우 위기 순간에 직면하면 위기를 이용할 엄두를 내지 못해서다. 그러나 오너 경영자에게는 위기 순간이 재기의 발판이 되기도 한다. 불투명한 사업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강력한 리더십과 조직 장악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작년 6월 초 포스코경영연구소(포스리)에서 내놓은 보고서 ‘도요타자동차 오너 복귀와 그 시사점’은 전문경영 체제를 도입한 기업이 오너 경영 체제로 복귀하는 것에 주목하면서 그 배경과 각 체제의 장단점을 비교했다. 이 보고서는 당시 무려 14년 만에 경영에 복귀한 도요타 가문의 ‘황태자’ 도요타 아키오 사장 취임을 맞아 나온 것인데, 그 뒤 도요타의 대몰락이 시작돼 결국 ‘오너 복귀의 문제점’을 예언한 결과가 됐다. 최근 미국에서 대량 리콜 사태를 빚으며 미국 하원 공청회에까지 출석해 굴욕을 당해야 했던 아키오 현 사장은 2009년 6월에 취임했다. 그는 도요타자동차의 전신 도요타자동직기세작소를 설립한 도요타 사키치의 증손자로, 도요타를 세계적 기업으로 끌어올린 3대 사장이자 현재 명예회장으로 있는 도요타 쇼이치로의 아들이다. 아키오 사장 취임이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의 관심을 받았던 까닭은 1995년 도요타 다쓰로 사장을 끝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도요타 창업가 일족이 14년 만에 경영에 다시 참여했기 때문이다. 그의 복귀는 일종의 ‘복고’인 셈이다. 당시 일본 언론은 도요타자동차에서 대정봉환(大政奉還, 일본을 실제적으로 통치해온 군부가 1867년 모든 권력을 천황에게 돌려준 사건)에 비유할 정도였다. 자본주의 선진국에서는 오너 경영 계속 줄지만 유독 한국에서는 물러났던 오너가 속속 복귀. 글로벌 스탠다드는 ‘위기 극복은 전문경영인’이지만 한국에서만은 ‘제왕 돌아와야만 극복된다’? 그가 사장으로 취임한 배경에는 2008년 가을에 터진 리먼브러더스 파산과 세계적 금융위기와 엔고 현상이 맞물리면서 낮은 판매실적을 개선해야 한다는 도요타의 위기의식이 있었다. 그러나 위기 대응을 명분으로 복귀한 오너 경영인은 그 뒤 또 다른 위기를 계속 낳는 결과를 연출했다.
전 세계적으로 도요타자동차의 품질신화를 금 가게 한 가속페달 문제는 3년 전 이미 보고된 사항이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문제가 된 것은 아키오 사장 취임 뒤였다. 결국 아키오는 보고를 받고도 모른 척했을 뿐 아니라, 초기 대응에도 실패했다.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보다 대외적 발언을 사사키 신이치 부사장에게 맡겼다. 미국 교통운송부 장관이 나서 “아키오 사장과 직접 면담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하면서 미국 내 부정적 여론은 더 강해졌고, 아키오 사장은 마침내 리콜 사태 발생 2주가 지난 2월 5일 떠밀리다시피 하며 사죄에 나섰다. 위기 구원투수로 등판한 아키오 사장이 역으로 병살타를 유도한 결과가 된 것이다. 이를 두고 일본 월간지 ‘문예춘추’ 4월호는 아키오 사장의 경영 능력에 의문을 제기했고, 오너 경영의 한계를 면밀히 지적했다. 그러나 열도가 한발 늦었다. 한국의 포스코경영연구소(포스리)는 이미 작년 6월 아키오의 취임 때 벌써 도요타의 위기를 예견했기 때문이다. 당시 포스리는 ‘도요타자동차 오너 복귀와 그 시사점’이란 보고서를 내놨다. 포스리는 이 보고서에서 불황기 오너 경영이 급부상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전문경영과 오너 경영의 장단점을 비교했다. 또 도요타자동차 문제에만 갇혀 있지 않고 국내 오너 경영으로까지 논의를 확대했다. “소유구조에는 정답이 없으며 각각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보완하는 접근이 바람직하다”고 시작하는 보고서는 “자본주의 역사가 길고 주식시장이 잘 발달된 국가들은 전문경영의 비중이 높고, 그 외 아시아와 일부 유럽·중남미 국가들은 오너 경영의 비중이 높은 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2008년 포천 글로벌 100대 기업의 소유구조 현황을 살펴보면, 오너 경영 기업은 20개사로 전체의 36%, 전문경영 기업은 35개사로 64%를 차지한다(도표 참조). 그중 오너가 직접 경영하는 기업 10곳 중 삼성전자·LG·현대자동차·SK지주 등 한국 기업이 4곳이나 된다. 한국은 해방과 한국전쟁을 겪은 뒤 정부와 일부 재벌이 산업화를 주도하면서 오너 경영이 뿌리를 내렸다. 그러나 기업의 성장과 부침에 따라 소유구조도 점차 변화하고 있는 추세다. 오너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한국과 일본에서도 그 변화가 감지된다. 산요전기의 경우 창업 2세인 이우에 사토시의 경영 실패와 3세인 이우에 도시마사의 분식결산으로 창업 60년 만에 창업가 일족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파나소닉에 매각됐다. 한국도 IMF 전후 전문경영 기업의 비중이 1980년 8%에서 2005년 12%로 늘고 있다. 도요타의 대몰락 시작되기 전 나온 포스코경영연구소 보고서는 “아이폰으로 대표되는 21세기 경제에서 오너 경영인 복귀한다고 기업 살아난다는 보장 없다” 포스리 보고서는 “재벌 가문의 전횡적 오너 경영이 외환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오너 가문의 입지는 위축되고, 영미식 지배구조가 글로벌 스탠다드로 인식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파악했다. 오너 경영은 ‘주인 있는 기업’의 특징인 강한 리더십과 책임경영이 장점인 반면, 독단적 경영이 견제되지 못할 경우 경영권 오남용과 사익추구 행위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게 단점이다. 전문경영은 경영인이 효율적이면서도 투명한 경영을 한다는 장점이 있으나, 경영자가 주주의 이익에 어긋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하거나 자신의 사익을 추구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 단점으로 꼽힌다. 따라서 “오너 경영과 전문경영은 각각의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특정 소유구조가 더 우월하다고 주장하기는 힘들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경영위기 때마다 구원투수를 자임하는 오너 경영에 회의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IBM의 루 거스너나 닛산의 카를로스 곤처럼 회사를 위기에서 구해낸 전문경영인의 사례가 많기 때문에, 오너 경영이 위기극복에 반드시 유리하다고 주장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또 1995년 취임한 도요타자동차의 오쿠다 히로시도 시장점유율 하락과 실적 악화 등의 위기상황에서 창업자 가문을 대신해 스피드 경영을 펼쳐 2년 만에 순이익을 3배나 신장시킨 예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사례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위기상황’이 거꾸로 재벌 총수들의 복귀 기회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복귀가 ‘오너 귀환’의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2007년 10월 김용철 전 삼성그룹 변호사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삼성그룹 50억 비자금’ 폭로 기자회견을 가지면서 특검 수사를 받게 됐고, 2008년 4월 22일 대국민 사과를 한 뒤 경영일선에서 퇴진했다. 그러나 퇴진 선언 2년을 못 채운 2010년 3월 24일, 23개월 만에 전격 복귀했다. 삼성 측은 ‘도요타 사태’가 이 회장의 경영복귀 선언에 영향을 미치게 됐다고 전했다. 박찬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화학부문 회장도 지난 3월 15일 금호석유화학 이사회에서 대표이사 회장으로 재선임돼 귀환했다. 박 회장은 지난해 7월 말 형인 박삼구 금호그룹 명예회장과 갈등을 겪으며 퇴진했지만, 8개월 만에 돌아왔다. 최근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오너 경영자의 리더십에 의지해 회사를 정상궤도에 올려놓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최근 퇴진한 재벌 총수들이 속속 제자리를 찾고 있는 가운데, 시민단체들은 일제히 비난성명을 발표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복귀한 24일 참여연대는 논평을 내고 “스마트폰 시대로 대변되는 현재의 글로벌 전자시장은 오너 1인의 비정상적 기업지배를 위한 통제와 관리라는 구시대적 경영으로는 결코 경쟁력을 가질 수 없는 환경”이라며 “기업지배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영체제로의 복귀는 ‘글로벌 삼성’의 기회가 아닌 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개혁연대도 이건희 삼성 회장의 귀환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삼성이 이건희 회장의 복귀 명분으로 내세운 ‘도요타 사태’를 거꾸로 복귀 반대 이유로 제시한 것이다. 삼성은 ‘외부와 소통 부재’ ‘내부의 폐쇄적 의사결정 구조’ 탓에 잘못된 의사결정을 포착하고 수정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작동되지 않는 문제가 있는데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오너 경영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전혀 대책이 아니라고 지적한 것이다. 그래서 개혁연대는 “삼성의 지배구조문제는 사업상의 위험을 제어하기보다 오히려 증폭시키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고 비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자동차 결함 은폐 의혹, 늑장 대처와 사과로 도요타자동차는 큰 타격을 입었다. 지난 4월 21일 경제잡지 포브스가 발표한 ‘2010년 세계 유력기업 순위’에서 도요타자동차는 지난해 3위에서 올해 360위로 추락했다. 위기를 기회로 복귀한 오너 경영자가 꼭 성공적으로 구원투수가 되라는 법은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삼성을 비롯해 오너 일가가 복귀를 선언한 국내 기업들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부분이다. 포스리 보고서도 이와 비슷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 “최근 불황을 맞아 오너 경영체제가 다시 주목받고 있으나, 과거의 폐해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의사결정의 과감성과 책임성을 최대한 살리되, 경영자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인정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