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침몰 사건 조사결과가 북한의 소행으로 드러난 가운데, 한반도 주변 4강인 미국과 일본은 전적으로 한국의 조사를 지지하는 입장을 보이는 가운데, 그동안 북한의 우방으로서 소극적 자체를 견지했던 중국과 러시아도 미묘한 변화의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우선 정부는 5월 28일 이명박 대통령과 원자바오 중국 총리 간의 한·중 정상회담과 29∼30일 한·중·일 정상회의를 마친 뒤, 이르면 다음 주 중 천안함 사건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하기 위한 공식 절차에 착수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정부는 이번 천안함 사건이 국제 평화와 안전을 저해하는 중대한 사안이라는 점에서 미국·일본과의 적극적 공조를 통해 법적 구속력을 갖는 대북결의안(resolution) 채택을 추진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주 유엔대표부 대사 명의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멕시코)에게 서한을 발송하는 방식으로 안보리 회부 절차를 개시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한· 미·일 3국은 5월 26일 오전 차관보급 ‘3자회동’을 갖고 북한의 무력 도발이 유엔 헌장 위반이자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에 중대한 위협이라는 점에서 대북결의안 채택을 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다만 새로운 추가 제재조치를 담은 결의안 채택을 추진할지, 아니면 기존의 안보리 결의인 1718·1874호의 이행을 강화하는 내용의 결의안 채택을 추진할지를 놓고는 관련국 간 협의가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정부의 한 고위 당국자는 “천안함 문제를 서둘러 안보리에 가져가 시끄럽게 하기보다는 그 이전에 조율을 잘 해놓는 게 바람직하다”며 “안보리 회부 전까지 상임이사국들과 주요 비상임이사국들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설득 작업을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백악관은 이명박 대통령의 담화가 있은 후 4시간이 채 지나지 않은 미 동부 시각 24일 새벽 1시께 대변인 명의의 공식성명(statement)을 발표했다.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새벽 “오바마 대통령은 이 대통령의 천안함 사건 처리와 이후의 객관적인 조사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다”면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4일 대북 대비태세를 확립해 북한의 추가 공격을 차단할 수 있도록 한국 당국과 긴밀히 협력할 것을 미군 사령관들에게 지시했다”고 밝혔다. 백악관이 지난 5월 19일(미 동부 현지 시각) 한국에서 천안함 침몰 조사결과 발표가 이뤄진 뒤에도 곧바로 심야 공식성명을 발표한 데 이어 신속하게 이뤄진 이례적인 심야 성명이었다. 당시 백악관은 천안함 사건을 “북한의 침략행위”라고 규정하고, 향후 대응의 큰 방향에 대해 “정의를 확보하고 추가적인 침략행위들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한국을 전폭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천안함 사건이라는 단일 현안을 놓고 불과 닷새 만에 두 차례나 성명을 발표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라는 게 워싱턴 외교가의 분석이다. 당초 백악관은 24일 낮 기브스 대변인의 정례 브리핑 때 이 대통령 담화에 대한 입장을 구두로 밝히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국제사회와 북한에 이번 일을 보는 미국의 인식과 메시지를 분명하게 나타내는 차원에서 입장 표명에 시차를 두기보다는 ‘속보성명’을 발표키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바마 외교안보팀의 이 같은 움직임은 천안함 사건을 다루는 엄중한 상황인식과 한·미동맹을 바라보는 태도를 드러내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의 미묘한 입장 변화 한편, 일본의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는 한국의 천안함 침몰사태와 관련해 5월 24일 오후 안전보장회의를 소집하여 각료들에게 북한에 대한 독자적인 추가 제재 방안을 검토하도록 내각에 지시했다. 그리고 하토야마 총리는 안전보장회의 후 이뤄진 이 대통령과의 전화회담에서 이런 내용의 천안함 사태 대처 방안을 설명했다. 두 정상은 5월 29일부터 한국에서 열리는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북한에 영향력이 있는 중국에게 북한에 대한 제재에 동참하도록 촉구한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일본 정부는 이날 안전보장회의에서, 한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천안함 침몰과 관련하여 북한에 대한 제재 문제를 회부하는 경우 미국과 공조해 지지하기로 결정했다. 일본이 북한에 취할 추가 제재 방안으로는 북한에 송금하는 경우 의무적으로 보고토록 하고 있는 1000만 엔 하한을 인상하고, 북한 방문자의 현금소지 보고 한도액을 현행 30만 엔에서 낮추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토야마 총리는 회의에서 북한에 대한 화물검사특별법의 조기 시행, 국민의 안전·안심의 확보 등도 지시했다. 이날 안전보장회의에는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외상, 기타자와 도시미(北澤俊美) 방위상 등 관계 각료와, 연립여당에 참여하고 있는 사민당 당수인 후쿠시마 미즈호(福島瑞穗) 소비자상, 국민신당 대표인 가메이 시즈카(龜井靜香) 금융상이 참석했다. 일본 정부는 당초 지난 22일 안전보장회의를 열 예정이었으나, 이명박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를 본 뒤 일본의 대응 방안을 결정하기 위해 이날로 연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러시아 정부는 5월 26일 특별성명을 통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한국 측의 요청에 따라 전문가 그룹을 한국에 파견하는 것을 허락했다고 전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 20일 천안함 침몰 원인 조사결과 발표 당시에는 안드레이 네스테렌코 외무부 대변인이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해당사국의 자제와 인내를 촉구하면서 “천안함 침몰 원인과 관련한 확실한 증거를 러시아는 갖고 있지 못하다”고 말했을 뿐 어떤 공식 입장도 표명하지 않았었다. 이에 천안함 사태의 안보리 회부를 검토 중인 우리 정부로서는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협조가 절실한 상황에서, 러시아가 우리 측 조사결과에 대해 의혹이 있다면 언제든지 전문가 그룹을 보내도 좋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러시아가 전문가 그룹을 한국에 보내기로 한 것은 그동안 신중 모드를 견지해온 러시아가 앞으로는 천안함 사태 수습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게 외교 소식통들의 분석이다. 더구나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5월 25일 이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북한에 제대로 된 신호를 주도록 노력하겠다”면서 이번 사태에 대해 한국 정부와 긴밀히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는 뜻을 밝혀 그 의미와 배경에 주목하고 있다. 한편, 중국은 아직 공개적으로 한국의 조사결과를 지지하고 있지는 않으나, 천안함 사건을 바라보는 태도에 무조건 ‘북한 감싸기’에서 벗어나 변화의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지난 5월 20일 천안함 조사결과 발표 직후에는 미동도 하지 않던 중국 측의 태도에 변화의 조짐이 감지되면서 25일 중국 외교부 장위(姜瑜) 대변인은 “누구든, 어떤 조치든,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어긋나는 행위에 대해 (중국 정부는) 결연히 반대한다”며 북한을 간접적으로 비판한 발언을 내놓았다. 그리고 중국 측의 이 같은 변화는 28일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와 이명박 대통령 간의 한중 정상회담에서 어떤식으로든 표명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