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5월 24일 천안함 침몰 사태의 대응 조치와 관련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제외한 남북교역 및 경제협력 사업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밝혀, 지난 1988년 7.7선언 이후 남북관계의 파고를 헤치며 꾸준히 성장해온 남북 간 교역 및 경제협력은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됐다. 통일부는 이미 본격적인 대북 조치에 앞서 개성공단과 금강산을 제외한 북측 지역 방북 승인을 지난 20일부터 허락하지 않고 있으며, 또한 대북 교역 및 위탁가공 업체들에 신규사업 및 물품 반출을 자제할 것을 권고했고, 연 60억 원 규모의 정부 관계부처의 자체 대북사업도 보류하라고 요청해 사실상 대북 조치에 돌입한 상태다. 더구나 북한 측이 그동안 자제해왔던 개성공단에 대해서도 통일부 소속 남북경협사무소 관계자 8명을 추방하는 등 본격적인 ‘외곽 때리기’에 나서면서 먹구름이 밀려들고 있다. 그러나 경협사무소는 개성공단과 직접 연관된 조직이라기보다 개성공단을 포괄한 남북 교류협력사업을 논의하는 기구여서 개성공단에 대해 직접적인 조치를 내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북한 측은 판문점 적십자 연락사무소와 해운 당국 간 통신선은 차단하면서도 개성공단과 금강산 통행과 관련된 경의선·동해선 채널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않고, 오히려 개성공단과 금강산 통행 예정자에 대한 출입동의서를 통신선을 통해 보내왔다. 4만 명이 넘는 북측 근로자들이 개성공단에 생계를 의지하고 있고, ‘달러 박스’로서의 개성공단의 위상, 개성공단 폐쇄 시 향후 국제적 투자유치 어려움 등을 감안해 폐쇄라는 극단적 카드를 꺼내지 못하는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지만, 북측의 향후 행동을 축소적으로 보기는 힘든 상황이다. 북측은 남북 경협사무소 관계자 추방에 이어, 남측이 대북 심리전을 개시하면 “서해지구 북남관리구역에서 남측 인원 및 차량에 대한 전면 차단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어, 이는 개성공단 출입을 막을 수도 있다는 사실상의 엄포로 풀이되고 있다. 문제는 북측의 반발에도 우리 국방부가 5월 24일 오후부터 시작한 대북 FM 방송, 전단지 살포 재개에 이어, 2주 후에는 군사분계선(MDL) 지역에 확성기를 설치해 라디오 방송을 내보낼 계획이어서, 북측이 실제 행동에 옮길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이다. 이렇게 되면 2008년 ‘12.1조치’와 지난해 3월 되풀이됐던 북측의 개성공단 통행 차단이 현실화될 수 있어, 현재 남북 간 소통이 사실상 완전히 막힌 상황에서 사태는 더욱 심각하게 진행될 수 있다. 즉, 북한 측에 있는 우리 인원 수백여 명이 발이 묶이는 사실상의 준억류상태에 놓일 수 있다는 우려이다. 최근 북측 지역에 체류하는 우리 국민은 일일 체류 인원수에는 차이가 있으나 개성공단에 800여 명, 금강산에 10여 명이 상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 철도 협력사업도 ‘전면 올스톱’ 우리 정부는 제주해협을 비롯한 우리 측 해역을 운항하는 북한 선박의 운항을 전면 금지키로 했으나, 자세히 보면 묘한 대목이 있다. 남북해운합의서 자체는 그대로 두면서, 합의서 규정에 근거해 북한 선박의 우리 측 통행을 전면 금지키로 한 것이다. 남북해운합의서 부속합의서 1조 2항의 ‘허가를 거부하는 경우에는 그 타당한 이유를 밝혀 통지한다’는 규정이 활용됐다는 게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이는 앞으로 남북관계 복원에 대비해 대북 제재 강도를 조절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현실적으로 개성공단에 진출한 우리 기업에 미칠 영향과 개성공단 및 금강산 지구에 상주하는 우리 국민의 ‘신변안전’을 감안해 우리가 먼저 조치를 취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북 전문가는 “정부가 북 선박의 항행금지 조치를 취하면서도 남북해운합의서를 살려둔 것은 향후 6자회담 등과 맞물려 남북관계가 복원될 때를 대비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제주해협은 북측 선박이 동해와 서해를 오가는 지름길이며, 북한 선박으로서는 제주 남쪽 공해상으로 돌아가는 항로보다 대략 53마일의 항해거리와 4시간 이상의 항해시간(12노트 항행 기준)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제주해협을 통과하는 북측 선박이 연간 200척에 육박하는 가운데 제주해협 진입금지에 따른 북측의 연료비 등 추가 비용이 연 60만 달러에서 100만 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추산이다. 남북해운합의서는 2001년에 북한 상선 4척이 제주해협을 무단 통행한 사건을 계기로 남북 간 협의를 거쳐 2004년 5월에 채택됐고, 이듬해 8월 1일 정식 발효돼 그해 8월 15일 남포를 떠난 북측 9000t급 화물선 ‘대동강호’가 처음으로 제주해협을 통과하기도 했다. 그리고 남북해운합의서 발효 이후 올해 4월까지 남북을 오간 북한 선박 운항 횟수(편도기준)는 1390회로, 이 가운데 177회는 제주해협을 통과했으며, 북측 항구에서 제주해협을 통과해 북측 항구로 운항한 횟수도 676회로 집계되고 있다. 그러나 천안함 사건 여파로 남북관계가 급경색되면서, 가뜩이나 위축된 ‘남북 간 철도 협력사업’은 전면 중단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관계자들의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다. 5월 27일 철도시설공단에 따르면, 오는 9월 말 완공을 목표로 동해선 남측 철도 연결구간인 저진역에 남북 철도화물 수송 등에 대비한 ‘공용 야드(화물적치장)’를 건설하고 있으나, 무용지물로 전락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지난 2005년부터 476억 원이 투입돼 현재 91.3%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는 이 공용 야드에는 12만6590㎡의 터에 남·북 화물 게이트, 컨테이너 적치장, 식물검역창고, 관리동 등이 들어서게 돼, 완공 시에는 남북 간 화물 및 여객 수송은 물론 향후 시베리아횡단철도(TSR) 등 대륙철도와의 연계 운행에 대비하기 위한 물류 전진기지 역할을 하게 된다. 하지만 동해선을 통한 철도화물 수송물량이 전혀 없는데다, 지난 2008년 7월 이후 금강산 관광사업마저 중단돼 여객수송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며, 더구나 동해선 저진역 이남 지역에는 철도 선로가 부설돼 있지 않아 국내 기존 철도와의 연계 수송도 불가능하다. 이런 가운데, 천안함 관련 조치로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 교역 및 교류가 전면 중단돼, 이 철도 공용 야드는 사실상 활용이 어려울 전망이다. 그리고 개성공단 내 물자 수송을 위해 지난 2007년 12월에 개통된 경의선 문산-판문(봉동) 남북 화물열차도 운행 재개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지난 2007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개성-신의주 철도 개보수 사업’도 추진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 2007년 12월 남북 철도 관계자들이 개성-신의주 구간에서 합동조사를 편 이후 개보수 착수시기 등에서 의견 접근이 이뤄졌으나, 천안함 사건으로 추진 동력을 잃게 됐다. 한편, 정부가 북한에 대한 단호한 대응 조치를 예고하자, 대북 경제협력 기업들은 향후에 미칠 영향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웠다. 특히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은 정부가 개성공단만큼은 유지할 것이라는 쪽에 기대를 걸면서도, 북한의 대응에 따른 통행제한 등 피해가 불가피할 수도 있을 것으로 우려했다. 개성공단에서 전자부품 공장을 운영하는 개성공단기업협회 유창근 부회장은 “지금까지 어려움 속에서도 상생 협력하면서 흔들림 없이 잘해왔다”면서 “마지막 남은 남북 교류의 통로가 단절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의류제조업을 운영하는 옥성석 부회장은 “생산현장은 예전처럼 잘 돌아가고 있으며, 주문이 취소되는 등의 애로사항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며 “그러나 만약 북한이 대응 수단으로 통행을 제한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다면 작년처럼 어려운 상황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또한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현대아산 직원들은 정부의 발표 내용을 지켜보면서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러한 와중에 금강산 관광 독점사업권을 침해하는 중국 측 움직임에 촉각을 바짝 곤두세우고 있다. 더구나 최근 통일부 등을 방문하면서 지원을 호소했던 금강산 관광지구의 현대아산 협력업체들도 더욱 맥이 빠진 모습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