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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없는 여론조사’ 이제 그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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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173-174호 최영태⁄ 2010.06.14 16:26:18

최영태 편집국장 이번 6.2 지방선거에서 얻은 성과 중 하나는 상당히 정확한 출구조사 방식을 개발했다는 점에 있다. 지상파 방송 3사가 공동 진행한 출구조사는 과거처럼 “누굴 찍었어요?”라고 입으로 묻는 게 아니라, 투표를 하듯 ‘써서 내도록’ 했다는 점에서 효과를 본 것 같다. 그간의 출구조사가 ‘손으로 한 투표를 입으로 말해야 하는’ 이질감을 갖고 있었다면, 새 방식은 ‘손으로 한 투표를 손으로 말하게’ 함으로써 정확도를 획기적으로 높인 듯하다. 따라서 앞으로 선거에서는 이런 출구조사 방식이 표준이 될 것 같다. 문제는 여론조사다. 이번 선거에서 여론조사는 처음서부터 끝까지 ‘거짓말’을 한 꼴이 됐다. 10~15%나 크게 뒤졌다고 끊임없이 보도된 후보가 승리하거나 초박빙 승부를 펼쳤으니, 거짓말쟁이란 비난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결과는 왜 나왔을까? 크게 두 가지 원인을 뽑을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여론조사의 근본적 문제점 탓이고, 다른 하나는 여론조사 기관들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1930~2002년)는 여론조사 결과를 믿으면 안 되는 이유를 두 가지로 정리했다. ‘대답하는 사람은 대답할 자격을 갖췄다’고 가정하는 게 첫 번째 맹점이며, ‘물을 만한 질문을 물었다’고 가정하는 것 역시 엉터리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우선 자격 문제. 일부 여론조사 업체는 집·사무실 전화를 통해 조사하는 모양인데, 혼자 사는 ‘싱글 가구’가 5분의 1이나 되고 이들 대부분은 핸드폰 말고는 집전화가 따로 없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현실과 괴리된 방식이랄 수 있다. 또 ‘한가하게 여론조사에 응할 만한 사람’ 또는 ‘자신의 지지 정당을 터놓고 밝힐 수 있는 사람들’만이 여론조사에 참여한다는 문제점도 지적된다. ‘제대로 물었냐’는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여러 심리학 실험 결과를 보면, 사람은 아주 미세한 변화에도 무의식 수준에서 크게 흔들린다. ‘어 다르고 아 다르다’고 하듯, 쉽게 눈치 챌 수 없는 설문의 미묘한 변화로 얼마든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말이다. 그간 여론조사 기관·업체들이 물을 만한 질문을 제대로 물었는지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물론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이런 한계점을 다 안다. 따라서 일부 전문가들은 “이런 맹점들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한국의 여론조사 기관·업체들은 엉뚱한 결과를 내놓을 수 있는 낡은 방법에만 매달린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 말이 맞는다면 결국 ‘다 알면서 실수를 한다’는 얘기가 되는데, 그러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맹점이 있는 여론조사라는 방법을, 문제가 있는지 알면서도 밀어붙이는 여론조사 기관이 한다면 그 결과는 오차율이 널뛰기를 하는, 즉 안 하는 것만 못한 결과만 내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운용하는 사람이 엉터리면 아무리 좋은 법·제도라도 소용이 없다고 한다. 이를 여론조사에 적용하면 ‘여론조사란 기본적으로 문제가 많기 때문에 엄밀하게 해도 오차가 생기기 쉬운데, 엉터리로 하면 정말 엉뚱한 결과밖에 나오지 않는다’가 된다. 이런 여론조사라면 해롭다. 엄청나게 들어가는 돈도 아깝다. 실없는 짓은 이제 그만 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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