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는 2002년·2006년 월드컵 광고에서 경쟁사에 밀려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했다. 돈은 돈대로 쓰고 성과는 거두지 못한 뼈저린 경험이었다. 이에 지난해 KT-KTF 합병 이후 ‘역발상’을 경영철학으로 삼고 있는 회사 방침에 맞춰 이번에는 ‘혁신(innovative)·창의성(creative)’에 부합하는 광고 소재를 찾으려 애썼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열광 때도 KT(구 KTF)는 월드컵 공식 스폰서였다. ‘코리아팀 파이팅’이란 구호로 대대적인 월드컵 광고 공세를 펼쳤지만, 당시 KT의 광고 내용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반면, 경쟁 상대인 SK텔레콤은 2002년 거리 응원을 주도했다. 붉은악마를 스폰서했고, 윤도현 밴드가 부른 응원가 ‘오 필승 코리아’가 대박을 터뜨렸기 때문이었다. KT가 광고에 ‘월드컵 공식 스폰서는 우리’라고 대문짝 만하게 글자를 박아 넣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SK텔레콤의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에 맥을 추지 못했다. 당시나 지금이나 월드컵 공식 후원사가 아니면서도 월드컵 광고에서 대박을 친 SK텔레콤의 전략은 ‘매복 마케팅’의 전형이랄 만하다. 매복 마케팅이란 월드컵 같은 대규모 행사에서 공식 스폰서가 아니면서도 규제를 피해 영리하게 자사 광고를 연계시키는 전략이다. 붉은악마와 손을 잡아 월드컵 마케팅을 펼친 SK텔레콤의 전략은 주효했고, 그 영향은 올해 월드컵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공식 후원사가 아닌 SK텔레콤이 2002년 월드컵에서 대박을 친 것을 의식해서였을까.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KT는 붉은악마를 후원하고 길거리 응원에 투자했다. 당시 꽃미남 밴드로 인기 최고였던 ‘버즈’와 붉은악마가 참여한 응원가를 제작했다. 경쟁사인 SK텔레콤은 2006년에도 윤도현 밴드와 손잡고 ‘애국가’를 응원가로 개작했다. 이동통신의 두 공룡이 2라운드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독일 월드컵에서 한국의 16강 진출이 좌절되면서 2002년의 영광은 재연되지 못했다. 2002·2006년 월드컵 광고에서 경쟁사에 판판이 깨졌지만 올해는 재미·크리에이티브로 승부
이런 부진함을 KT는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서 한 방에 털어냈다. 올 3월부터 ‘황선홍 밴드’ 시리즈 광고가 나오면서 광고 자체가 인기였을 뿐 아니라, 응원가도 단연 황선홍 밴드가 불렀다는 ‘승리의 함성~’이 인기다. 상황이 이렇게 역전된 데는 그간의 실패를 뒤집는 발상의 전환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초절정 인기 스타를 광고 모델로 쓰는 한국 광고 현실에서, KT의 월드컵 광고는 인기 연예인 한 명 없이 2002년 월드컵 신화의 주역 4인방을 끌여들였다. 첫 골을 넣은 황선홍을 필두로, 중거리 슛을 성공시킨 유상철, 붕대 투혼의 최진철, 그리고 ‘타이거마스크’의 김태영까지 네 명이 모여, 후배를 응원하기 위해 ‘황선홍 밴드’를 만든다는 스토리다. 이들 4인방은 남아공에 출전하는 태극전사 후배를 위해 망가지는 모습을 서슴지 않았다. 미끈한 정장을 입고 어설픈 ‘황새춤’을 추거나, 응원가를 녹음하면서 ‘삑사리’를 내는 음치 최진철까지, 이들의 모습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난다. 비장함 대신 경쾌함을 광고 콘셉트로 잡은 배경을 KT 통합이미지 담당 최나리 대리는 “후배들을 열심히 응원하는 아저씨들의 모습을 새로운 각도로 조명하면 흥미를 유발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시작한 광고”라며 “황선홍 밴드가 주축이 돼 응원법을 직접 보여주는 콘셉트를 잡았다”고 설명했다. 올해 KT의 월드컵 광고에 대해 이희복 상지대 언론광고학부 교수는 “이번 월드컵은 KBS·MBC가 빠지고 SBS만 중계방송을 해 월드컵 마케팅에 제한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의외의 성과가 예상되기도 한다”며 “황선홍 밴드 시리즈 광고는 남아공 월드컵 출전 선수를 광고 모델로 잡지 못해 택한 전략일 수 있지만, 재미·크리에이티브 측면에서 성과를 거두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