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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혼인’은 삶의 신비로운 사슬

공동체의 삶과 자신의 운명이 하나임을 확인하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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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79호 편집팀⁄ 2010.07.19 15:09:39

정해광 (아프리카미술관 관장·갤러리통큰 대표) 혼인을 위한 준비는 하나의 긴 과정으로서, 그 순간순간들은 여러 의례들로 특징 지어진다. 이는 젊은이들이 책임 있는 존재로 거듭 태어나는 순간을 극화하는 과정이다. 공동체의 삶과 자신의 운명이 서로 하나임을 확인하는 일련의 과정이 바로 아프리카의 혼례(婚禮)이다. 욕구를 인간의 본성으로 받아들이는 아프리카의 축제 축제는 동서를 막론하고 일상에 빠진 젊은이들의 삶을 드라마틱하게 만드는 극적 요소를 지닌다. 서로 다른 두 남녀가 만나 삶의 주연배우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희망의 무대이기도 한 것이다. 특히 전통을 중시하는 사회일수록 축제는 젊은 남녀를 공동체의 리듬 속에 들어가게 하는 것, 다시 말해 가정이라는 새로운 삶을 설계하고 열게 하는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아프리카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들에게 축제는 성적 욕구의 문제를 종족 번식이라는 본성의 문제와 관련시켜 인간을 보다 근원적으로 이해하려 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새롭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들에게 욕구에 대한 긍정은 이성의 포기가 아니다. 이성중심주의에 의하여 배제된 감성(感性)을 회복하고, 그것을 매개로 인간을 좀 더 현실적으로 이해하자는 것이다. 보편이성에 매몰되거나 신의 한 부분으로 전락되는 인간이 아니라, 욕구를 가지고 세상을 열심히 살아가는 인간, 의지를 주체적으로 사용할 줄 아는 인간, 이러한 힘의 다양성을 발견하게 하는 것이 아프리카의 축제이다. 축제에서 부킹은 혼인으로 연결되는 가교 가봉의 부비(Vuvi)족 여자들은 마을에 축제가 있을 때, 자신의 집에서 사용하던 종자함에 땅콩이나 과일들을 넣어 간다. 그녀들은 간식을 먹으면서 남자들의 춤을 구경하고 또 나름대로 평가하기도 한다. 남자 역시 춤을 추면서 여자들의 반응을 유심히 살피다가,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어떤 형태로든 신호를 보낸다. 그러다가 축제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남자는 자신이 찍어둔 여자 앞에 가서 역동적인 춤을 보여주면서 그녀의 선택을 유도한다. 별 반응이 없으면 히든 카드, 즉 성관계를 연상시키는 춤을 추면서 마지막 선택을 기다린다.

대부분의 여자는 이런 남자의 성의(?)에 웃음으로 회답하면서 과자를 권한다. 이때 종자함의 과자를 권하는 여자의 행위나 종자함에 손을 넣는 남자의 행위는 성적인 의식(儀式)과 관련된다. 과자를 먹기 위하여 남자의 손이 종자함 깊숙이 들어가는 것은 흡사 여자의 자궁에 남자의 중요한 부분을 삽입하는 것과 같다. 상대를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는 뜻이다. 이후에 여자는 종자함의 머리 부분을 들고 나가 함께 춤을 춘다. 그렇게 짝을 이룬 두 남녀는 열정적인 춤으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숲 속으로 사라진다. 그날 밤 숲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것은 큰 관심거리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아랫마을의 어느 집 딸이 윗마을의 어느 집 아들과 함께 춤을 추었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소문만으로도 양가는 서로가 하나의 운명임을 받아들이게 된다. 담뱃대는 혼인 성사 여부 가늠하는 중요한 도구 혼인을 이루기 위해서는 대개 매파를 앞세우지만, 우간다의 바토로(Batoro)족은 부모들이 협상을 주도하고 또 마무리를 짓는다. 흔히 혼담은 술자리에서 만난 두 사람 사이에서 시작되고, 그러한 사실을 자식들에게 이야기한 뒤에 양가의 부모는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간다. 먼저 남자 쪽의 부모가 여자 집을 방문하는데, 이때 흥미로운 사실은 남자의 아버지가 담뱃대를 지니고 간다는 것이다. 담뱃대는 담배를 피우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지만, 혼담의 진행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의사 표현의 수단이 되기도 하다. 여자 쪽 입장에서 남자의 부모나 그의 아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담뱃불을 붙여주지 않는 것으로 그 혼담을 깬다거나, 반대의 경우에는 남자의 아버지가 담뱃불을 받고 여자가 붙여주는 데서 예비 시아버지와 예비 며느리의 관계를 시작하자는 의도가 담겨 있다. 담뱃대가 혼담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또 다른 이유는 담배를 피우기 위하여 숨을 들이마시는 행위와 담배 연기를 내뿜는 행위, 그리고 내뿜어진 연기를 함께 마시는 행위 모두가 생명의 숨결을 함께 호흡하여 하나가 되자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결혼’ 아닌 ‘혼인’을 하는 아프리카의 젊음이들

언제부터인지 혼인이라는 말 대신에 주로 결혼(結婚)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혼인(婚姻)이라는 말이 왜 남자가 혼인할 ‘혼’(婚)자와 여자가 혼일한 ‘인’(姻)자를 합해서 썼는지 그 의도를 안다면, 결혼이라는 표현이 그리 유쾌한 것만은 아니다. ‘혼’이라는 글자는 남자를 지칭하는 것 외에 이성·보편·절대 그리고 현재라는 의미를 지닌다면, ‘인’이라는 글자는 여자를 지칭하는 것 외에 감성·특수·상대 그리고 과거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런 점에서 혼인이라는 말 자체에는 남자와 여자의 동권(同權)이나 이성과 감성의 균형 혹은 현재와 과거의 조화라는 평범한 비밀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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