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이 세상과 또는 대중과 소통하는 유일한 창구는 자신의 작품이다. 음악가가 노래로, 소설가가 글로써 얘기하듯, 화가는 그림으로 자신의 생각과 이야기를 전한다. 그 표현 방식도 천차만별이다. 회화 작품부터 조각·영상·사진·공예 등등 수없이 많은 방식으로 소통한다. 하지만 바느질로 대중과, 그리고 더 나아가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작가가 있다. 이하 작가는 그림 위에 천을 덧붙여 바느질로 꿰매는 작업으로 독특한 작품을 만든다. 사실 작품을 직접 보기 전까지는 바느질로 작품을 만든다는 말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장 먼저 컴퓨터로 정교한 그림을 그린다. 이렇게 정교하게 그려진 그림은 천에 디지털 프린트를 한 후, 인물이나 꽃·나비 등을 오려내고 캔버스 위에 촘촘히 손바느질해 꿰맨다. 이때 프린트된 천과 캔버스 사이에 솜을 넣고 꿰매어 약간 불룩한 입체적인 형태가 된다. 마지막으로 보존성을 위해 투명 물감으로 코팅하면 작품이 완성된다.” 이 작가의 말을 들으면 참 쉬운 듯 느껴진다. 하지만 작품에 새겨진 바늘 한올 한올에 쉽지 않은 정성이 가득 담긴 작업임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천을 이용한 꿰매기 작업은 2차원적 평면에서 3차원의 입체적인 작품이 되면서 실제로 보면 마치 그림 속의 인물이 튀어나올 듯한 생명을 불어넣는다.
이 작가는 미대를 나왔지만, 처음부터 미술 작업을 하지는 않았다. 사실 작가는 1997년 무렵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신문사에서 시사만화를 담당했던 만화가였다. 그러나 시사성을 가지고 당면 과제를 메시지로 돌려 풍자하는 데에 부족함을 느낀 나머지, 시사만화가에서 힘든 길이지만 당당히 순수예술가로 거듭나고자 했다. 미술 작업에 손을 댄 계기는 애니메이션을 공부하러 미국에 갔다가 뉴욕의 광대한 예술을 접하면서 자극을 받아 시작하게 됐다. 이 작가는 “본래 전공은 조각이었고, 평면보다는 입체적인 회화 작업을 연구하다 보니 솜을 넣고 바느질하는 입체적인 작품을 하게 됐다. 그동안 뉴욕에서 두 번, 한국에서 세 번 전시를 했는데, 손바느질로 만든 입체적인 회화 작품에 물감 한 방울 없다 보니 기존 회화 개념을 벗어난 걸로 보는 사람이 많다. 때문에 관심도도 높고 호불호가 확실히 나뉘는 느낌이지만, 내 작품이 이러한 논쟁거리가 된다는 사실에 만족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 작가가 다루는 작품 속 이야기는 단 하나, 바로 인간과 사회, 더 나아가 인류의 순수한 화합과 평화다. 어찌 보면 심각한 이야기로 어두운 내용이 들어 있지만, 그림 자체는 상당히 밝고 화려하게 그려졌다.
그는 “주된 관심사는 글로벌 개념의 인간과 사회다. 그렇다고 거창하게 세계평화를 외치는 건 아니다.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나쁜 녀석이 근본적으로는 인간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종교문제·이념문제·문화차이·인종차이 또는 작은 욕심 때문에 인간이 다른 인간을 미워하는 행위는 참 슬픈 일이다. 인간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이며, 평화와 사랑 안에서 가장 행복한 모습이 될 수 있다. 인간은 강하고 특별한 존재다”라고 말했다. 이어 “인간에게 적이 있다면 불황과 갈등을 만들어 자신들의 이익을 탐하는 자본 권력자들과 정치 권력자들일 수 있다. 하지만 인간들은 그걸 인식하지 못한다. 다른 종교, 다른 국가, 다른 인종을 아름답게 그려 서로를 아름답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 작업의 목표다. 이를 위해 컴퓨터로 각국의 꽃미남 병사들과 유색 인종이 주인공인 그림을 그린다”고 설명했다. 이는 인간이 가진 폭력적이고 이기적이며 탐욕스런 모습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작가의 철학에서 나왔다. 그는 예술가는 잘못된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할 줄 알아야 하며 그 사회에 소속된 인간을 지배하는 편협한 이념이나 관습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이 작가는 앞으로 국제적인 문제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할 생각이라고 한다. “한반도에도 남북 간에 문제가 있지만, 동남아·중동·아프리카·남미 등등 국가에서 기아와 폭력, 정치문제 등 심각한 문제들이 많다. 왜 그들이 싸우고 굶어 죽고 전쟁을 하는지 공부할 필요가 있다. 작품의 주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작품을 좀 더 화려하고 예쁘게 표현할 재료도 연구할 계획이다. 그 재료엔 첨단 디지털의 힘이 포함될 수 있다. 기존의 물감은 가급적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고, 물감 만드는 회사의 사장님에게는 죄송하다”고 위트 섞인 농담도 건넸다. 가벼운 느낌이 드는 디지털 그림과 아날로그적인 꿰매는 행위와의 불협화음을 통해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이 작가는 “누군가가 누군가를 미워하는 행위들이 사라졌으면 한다. 세상의 모든 이들이, 세상의 모든 이들을 위해, 다시 모든 세상의 문을 열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들었다. 앞으로 전략적으로는 대중들과 바로 만날 수 있는 전시를 계획한다는 이 작가는 “최근 개인전을 하면서 작품 만드는 일이 생각보다 엄청나게 힘든 일이라는 점을 뼈저리게 깨달았다”며 “공인 비슷한 사람이 되었다는 두려움과 희열감도 동시에 맛본 전시였다”고 환한 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