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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광의 아프리카 미술과 친해지기

아프리카에서 ‘우리’는 생명의 근본과도 같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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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84호 편집팀⁄ 2010.08.24 09:31:34

정해광 아프리카미술관 관장/갤러리 통큰 대표 아프리카에서 ‘우리’라는 말은 생명의 근본과도 같은 언어이다. 그래서 우리라는 말은 철학 혹은 종교에 가장 가까운 말로서 인간은 물론 동식물에게까지 확대되는 거대한 그물망과도 같은 개념이다. 탄자니아의 마콘데(Makonde)족은 하나의 나무에 수많은 사람들을 새겨 넣었다.1) 이는 그들의 관계가 하나의 그물망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한 개인은 어떤 지역에 살고 있는 자기 아닌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서 우리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개인의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기보다는, 아주 먼 사돈의 팔촌일지라도 ‘아저씨’라든가 ‘조카’라고 부른다. 수백의 아저씨나 수백의 조카를 가진 한 사람이 우리로서 존재하는 땅이 바로 아프리카이다. 아프리카에서 우리라는 범주는 살아 있는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이미 죽은 사람들 그리고 동물에게까지 확대된다. 말리의 도곤(Dogon)족은 하나의 문(門)에 여러 인물들과 동물들을 새겨 넣었다. 그들은 이 문에서 최초의 인간, 국가의 영웅 그리고 신화적인 동물을 드러냄으로써 구성원들로 하여금 깊은 자긍심을 갖게 하였다. 일상적으로 열고 닫는 문을 통하여 역사적인 소속감을 학습하게 하고, 나아가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과거의 시간으로 향하게 했다는 점에서 문 조각은 족보(族譜)와 같은 역할을 했다. 현재에 있는 사람들과 존재의 뿌리가 되는 조상들 그리고 종족의 정체성과 관련된 토테미즘을 연결시키는 거룩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이는 종족의 연대감·소속감·친화감을 가시적으로 나타내는 것으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는 물론 인간과 자연 그리고 인간과 신을 하나의 우리로서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사람들은 신을 믿으면서도 신을 절대화하지 않는다. 물론 조그마한 제단이나 공동체의 계율은 존재한다. 그러나 세상을 고통으로 선택하게 하는 거대한 성전(聖殿)이나 율법으로 인간을 가두는 성전(聖典)이 없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영적 존재에 대한 믿음, 즉 신성(神性)이나 물성(物性)을 인간의 심성(心性)에서 찾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탄자니아의 릴랑가(G. Lilanga)2)는 다양한 욕구를 지닌 인간의 모습과 신의 모습을 비슷하게 그렸다. 둘 사이에 다른 점이 있다면, 귀가 유난히 크다는 점이다. 이를 쉐타니(Shetani)3)라고 부르는데, 서구식 표현을 빌리자면 쉐타니는 악마이고, 동양식으로는 도깨비이다. 그러나 쉐타니는 악마도 아니고 도깨비도 아니다. 큰 귀는 인간의 욕구를 들어주고 싶은 신의 인간적인 모습일 뿐이다. 그의 그림에 사람이 유난히 많은 것, 이는 신마저도 인간적이기를 바라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소망을 표현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프리카 사람들이 신을 받든다는 것은 신앙의 내용, 즉 인간에 대한 사랑의 실천이다. 그리고 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것은 이데아의 범주, 즉 세계에 대한 평화의 탐구이다. 사랑을 멀리하려 하지 않고 평화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마음, 이는 여럿이 함께 추구해야 할 행복의 주요 내용이자 범주이기도 하다. * 각주 1) 탄자니아에서는 이를 우자마(Ujamaa)라고 부르는데, 수많은 사람과 동식물이 함께 어우러져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고 있다는 점에서 생명의 나무라고 불리기도 한다. 2) 탄자니아의 릴랑가(1934~2005)는 서구 미술계에 가장 널리 알려진 아프리카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전통을 중시하면서도 전통에 집착하지 않는. 즉, 마콘데(Makonde)족 조각과 팅가팅가(Tinga Tinga) 그림에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그것에 얽매이지 않은 작품 활동을 함으로써 아프리카 현대미술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가 서구 미술계의 주목을 끈 이유는 1978년 워싱턴 IMF 홀(World Bank)의 전시에서 아프리카의 신화와 일상을 동화적 심성으로 풀어내 아프리카적인 팝아트를 선보이면서 미국의 낙서화가인 키스 해링(Keith Haring)에게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3) 쉐타니의 큰 귀와 입 그리고 볼록 나온 배는 인간의 욕구를 긍정하고픈 마음의 모습이다. 공동체를 지향하는 사회일수록 개개인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의미에서 귀와 입을 크게 표현하였고, 올챙이 같은 배는 공동체의 이익만큼이나 개인의 이익도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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