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미래에셋증권 은퇴연구팀장 2010년 이후부터는 그동안 퇴직금의 사외 예치 수단이었던 퇴직보험과 퇴직신탁이 효력을 상실하고, 기존의 퇴직보험·신탁이 갖고 있던 단점을 보완한 선진 제도인 퇴직연금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될 전망이다. 퇴직연금을 도입하고 이를 운영할 때 회사와 근로자는 기존의 퇴직보험·신탁에서는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부분을 고려하여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가장 적합한지 간략하게 안내하고자 한다. 먼저 회사의 입장에서 살펴본다면, 퇴직연금을 도입할 때 가장 중요한 결정 사안은 바로 퇴직연금 사업자의 선정이다. 2010년 8월 현재 53개 퇴직연금 사업자가 노동부에 등록되어 있다. 퇴직연금 사업자로 등록하기 위해서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재무건전성 요건, 인적 요건, 물적 요건을 갖춰야 하므로, 퇴직연금 사업자로 등록되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국가에서 정하는 최소한의 요건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최소한의 기준을 만족했더라도, 회사나 사업장이 존립하는 동안 함께할 동반자를 단순하게 거래 및 이해관계에 따라 선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론 회사와 근로자의 필요에 따라 사업자의 변경도 가능하다. 그러나 기존 퇴직연금 규약을 바꿔야 할 뿐만 아니라, 확정기여형의 경우 원래 사업자와 변경될 사업자의 상품 구조가 다르다면 근로자에게 불이익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이 밖에도, 사업자 이전을 위해서는 회사와 근로자에게 큰 기회비용도 수반된다. 따라서 처음부터 사업자를 선정할 때 다양하게 검토하여 신중히 선택해야 한다. 사업자를 선정할 때 주요하게 고려해야 할 사항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째, 퇴직연금 사업자가 소속된 업계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 퇴직연금 사업은 거의 모든 금융업계(증권·생명보험·손해보험·은행)에서 영위할 수 있다. 업계별 속성에 따라 자산운용·고객관리·마케팅·컨설팅 방법 등에 차이가 있다. 따라서 각각의 특징을 잘 파악하여 회사와 근로자에게 적합한 업계를 선별하고 그 안에서 후보 사업자를 분석한다. 둘째, 퇴직연금 사업자의 역량을 검토해야 한다. 사업자의 본질적인 서비스 능력을 보는 것이다. 퇴직연금 사업자의 역량은 크게 자산운용 역량, 퇴직연금 제반 시스템(Record Keeping System)의 수준, 퇴직연금 컨설팅 역량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자산운용 역량은 최적의 상품 제공 능력과 장기적으로 높은 상대 수익률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는 금융권별 협회 홈페이지에 사업자별·상품별 수익률이 공시되므로 쉽게 비교할 수 있다. 제반 시스템의 수준이란 퇴직연금과 관련한 다양하고 차별화된 정보를 쉽고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시스템 수준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컨설팅 역량은 맞춤식 퇴직연금 운영을 위한 전문 지원 인력의 구성과 규모를 의미한다. 셋째, 퇴직연금에 대한 사업 의지와 투자 규모를 감안해야 한다. 퇴직연금 사업은 전문가의 확보, 자체 시스템의 구축, 전용 상품과 특화 서비스의 개발 등 엄청난 투자가 지속적으로 필요한 분야이다. 따라서 금융기관의 우월적 지위나 보유한 영업망의 크기, 기업 지배구조에 의해 확보된 시장 등에만 의존하여 사업을 영위할 경우, 고객인 회사와 근로자의 진정한 이익에 기반을 둔 상품과 서비스 제공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다. 이 밖에도, 우수한 퇴직연금 사업자를 선정하기 위해서는 사업자의 재무구조, 퇴직연금 사업 경험, 고객만족도, 계약 조건 등과 같은 다양한 분야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확정기여형·확정급여형 선택 기준 근로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우선적으로 ‘확정기여형’과 ‘확정급여형’ 중 어떤 유형이 적용될 것인가가 매우 중요하다. 회사에서 이미 퇴직연금 유형을 정했다면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으나, 아직 도입하지 않았거나 복수로 도입했다면 근로자는 자신에게 적합한 제도의 유형을 선택하거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예상 임금인상률과 예상 투자수익률을 비교하여, 임금인상률이 더 높을 것으로 예상될 경우 확정급여형이 유리하고, 투자수익률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면 확정기여형이 유리하다. 하지만 근무 성과에 비례한 연봉제의 확산, 임금피크제의 도입과 같은 임금 체계의 변화와 평균 근속 연수가 단축되는 현실(평균 5.9년, 2007년 기준)에서는 근로자의 입장에서 임금상승률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퇴직연금 유형을 선택할 때 임금상승률과 투자수익률 외에 다양한 시각에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첫째, 일반적으로 금융상품의 특성을 이해하고 개인 금융자산 운용 경험이 풍부한 근로자는 확정기여형이 확정급여형보다 적합할 수 있다. 반면, 개인 금융자산 운용 경험이 많지 않고 금융자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직접 운용 지시를 하기가 부담스러운 근로자의 경우, 확정급여형이 보다 유리할 수 있다. 왜냐하면 확정기여형 퇴직연금 자산의 운용 주체는 근로자이고 확정급여형은 회사이기 때문이다. 둘째, 남은 근로 기간이 약 10년 이상으로 긴 근로자는 확정기여형이 보다 유리할 수 있다. 근로 기간이 많이 남아 있을수록 향후 이직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에 따른 평균임금의 변동성은 커진다. 또한 중소형 회사의 경우 대기업보다 도산할 가능성이 높아 퇴직금 체불 위험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확정급여형은 60%까지만 사외 적립을 의무화하고 있으나, 확정기여형은 100% 전액 사외 적립을 하도록 하고 있어 퇴직금을 떼일 염려가 전혀 없다. 반면, 남은 근무 기간이 길지 않고, 근무 회사가 안정적이며, 임금이 줄어들 가능성이 낮을 것으로 판단되면 확정급여형을 선택하는 쪽이 노후 자금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준다. 셋째, 퇴직연금 이외에 다른 은퇴 자산이 거의 없다면, 확정기여형이 보다 유용할 것이다. 왜냐하면 확정기여형은 근로자의 추가 부담이 가능(확정급여형 불가)하여, 사용자가 납부하는 부담금 외에 성과급이나 목돈이 생기면 근로자가 얼마든지 추가적으로 부담(추가 부담 납입한도 없음)할 수 있으며, 연금저축과 합산하여 300만 원까지 소득공제도 받을 수 있다. 반면, 노후 준비를 위해 다른 금융자산이 있고, 특히 변액연금이나 펀드와 같은 실적배당형 상품에 주로 투자하고 있다면, 위험 분산 차원에서 확정급여형이 보다 유리할 것이다. 넷째, 확정기여형은 근로자가 운용 성과에 대한 책임을 직접 부담하므로 위험이 클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으나,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확정기여형에 대한 투자 규제는 확정급여형보다 높고, 퇴직연금 사업자가 적립금 운용 방법을 제시할 때 예금·국채 등과 같은 원리금 보장 운용 방법을 하나 이상 포함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퇴직연금 사업자가 제공하는 모델 포트폴리오나 자산 배분 컨설팅을 통해 원리금보장형과 실적배당형 상품을 적절하게 배분하면 안정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확정기여형을 선택하는 근로자는 확정급여형보다 퇴직연금 사업자 선정에 더 많은 관심과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왜냐하면 근로자의 퇴직 시점까지 오랜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적립금 운용에 대한 각종 정보와 지원 서비스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퇴직연금은 근로자의 노후 보장을 위한 초장기 맞춤형 제도이다. 따라서 제도를 도입할 때에는 위에 언급한 부분 이외에도 회사와 근로자의 다양한 상황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또한 퇴직연금 자산을 운용할 때에도 단기 수익률이나 변동성에 성급하게 반응하지 않고, ‘장기투자’ ‘적립식투자’ ‘분산투자’라는 자산운용의 기본 원칙을 지키며 유지하는 자세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