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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광의 아프리카미술과 친해지기

아프리카에서 병(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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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86호 편집팀⁄ 2010.09.06 16:55:57

정해광 아프리카미술관 관장·갤러리 통큰 대표 아프리카에서 사자(死者)는 인간의 삶에 깊숙이 개입하지 않으며, 통치자는 자기 밑에 있는 사람에게 지나친 복종을 강요하지 않으며, 노인은 젊은이를 함부로 대하지 않으며, 부모는 자식을 자기의 소유물로만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공동체가 인간 간의 관계의미 혹은 균형을 깨뜨려 사회적 약자를 만들어 내면, 그때 스며드는 것이 바로 병이다. 아프리카의 ‘도덕성’은 사회적이고 현상론적이다. 신은 역설적이게도 인간에게 행운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불행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우연히 일어나는 재해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일은 직간접적으로 신비스러운 힘이 작용하여 선한 목적 내지는 악한 목적과 관련되어 나타난다. 따라서 신비스러운 힘은 그 자체로는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어떤 개인에 의하여 악하게 사용되면 그것은 악으로 경험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프리카의 도덕성은 영적이라기보다는 사회적이고, 존재론적이라기보다는 현상론적이다. 결과적으로 아프리카에서의 인간은 본질적으로 선하거나 악한 것이 아니다. 다만 공동체가 지니고 있는 관습과 규약을 준수하면 선이고 그렇지 못하면 악이다. 잘못 그 자체는 결코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가 내포하고 있는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인간의 도덕성을 지켜주고 감시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 있는 살아 있는 사자나 통치자, 장로, 부모라는 사회적 규제이다. 이러한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의미가 자연적 혹은 사회적으로 균형을 잃게 될 때 확산되는 것이 바로 병이다.

인간관계의 불협화음에서 병이 발생하는 아프리카 아프리카에서 개인 간의 관계는 지극히 밀착되어 개개 구성원은 다른 구성원 앞에 쉽게 노출된다. 이러한 협동적인 사회는 역설적이게도 사랑과 증오의 중심이 되기도 하고, 기쁨과 슬픔, 신뢰와 회의 그리고 관용과 질시(嫉視)의 공간이 되기도 하다. 건설과 파괴가 동시에 일어날 수 있는 역설적인 자리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불행한 일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잘못된 현상을 일으키게 한 악의 대행자나 사회적 약자를 희생양으로 만들어 공동체의 슬픔을 해소하려 한다. 콩고민주공화국 바콩고(Bakongo)족의 은콘디(nkondi) 조각이 바로 그런 슬픔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는 매개체이다. 온몸에 금속조각을 총총히 밖아 놓은 은콘디는 ‘사냥꾼’을 뜻하는 말이다. 범죄자를 식별하고, 마을의 서약을 어긴 이들을 찾아내어 처벌하는 심판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실재보다 상상적인 힘에 의존하여 어느 한 사람을 고립시킨다는 데 있는 것이다. 이때 공동체의 적으로 지목된 사회적 약자는 자신의 분을 이기지 못하고 주술사를 찾아가 자기를 모함한 사람들에게 앙갚음한다. 그러면 보복을 당한 사람은 즉각 다른 주술사를 찾아가 사술(邪術)을 부린다. 이런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가운데 불특정 다수는 극심한 공포감에 휩싸여 돌이킬 수 없는 마음의 병을 얻게 되고 급기야는 몸의 병마저 얻게 된다.

정신의 부적과도 같은 아프리카의 조각 나이지리아의 고로(Goro)족에게는 병든 사람을 치료하는 조각이 있다. 이 조각은 가슴 부분에 있는 두 개의 구멍이 서로 통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는 약사가 약을 조제할 때 손쉽게 섞이게 하는 편리성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살아 있는 사자와 인간, 통치자와 신하, 장로와 젊은이 그리고 부모와 자식이 하나의 몸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위아래로 약초를 섞는다는 것은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한을 푸는 해원(解寃)의 과정과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위대한 약사는 병든 자만을 치료하지 않는다. 병을 제공한 사회적 강자 혹은 여러 관습이나 규약도 함께 어루만진다. 약을 조제한 후에 반을 나누어서 대지에 뿌리는 행위가 바로 그런 까닭이다. ‘작은 수호자’라는 뜻을 지닌 남지족의 조각에 달린 다양한 장신구들은 그들의 소박한 소망에 닿아 있다. 동물의 뼈와 뿔은 위협적인 존재로부터 생명을 보호하게 하는 부적과도 같은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한 개인의 능동적인 수렵 활동이 부의 축적과 관련하여 풍요로운 삶을 이루는 데 중요한 조건임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근래 공예품으로 팔리는 조각을 보면 예전에 구한 것과는 달리 화폐의 역할을 하는 조개껍질이나 옛날 동전이 등장한 것도 현실에 대한 욕구를 반영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조각의 몸통을 감싸고 있는 수백 개의 구슬과 작은 돌들의 집합은 여전히 공동체의 결속이 우선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개체로서의 구성원이 공동체라는 하나의 끈으로 맺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개인은 이를 바탕으로 심리적 안정을 꾀하면서 건강한 몸과 마음을 공동체의 목적과 일치시켜 나가자는 의도를 담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남지족의 인형조각에 달린 장식물들은 병의 예방은 물론 시대적인 조류와 관련하여 한 개인의 행복을 종족 전체의 집단적 소망과 관련시키려는 정신의 부적과도 같은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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