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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예쁜 그림에서 섬뜩함이 느껴지시나요?

헛된 욕망으로 메마른 사회를 지적하는 김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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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87호 김대희⁄ 2010.09.13 11:28:14

‘인간의 이기적 욕망과 잔인함’이란 말은 그 단어만으로도 어둡고 암울함을 나타내기에 충분하다. 이를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어떨까? 유화를 사용한 전통적인 회화에 나무 상자와 아크릴을 이용해 작품을 완성하는 김여운 작가는 과학문명의 발달이 오히려 현대사회를 욕망과 욕심으로 가득 채우며 정신적으로 메말라가게 하고 있음을 비판하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러나 깔끔한 화면에 귀여운 동물이 그려졌다면 처음부터 섬뜩하거나 암울함을 느끼기도 어려울 것이다. 김여운은 누가 봐도 귀여운 강아지, 고양이, 토끼 등 동물과 함께 독수리, 부엉이 등의 새를 통해 현대사회에 희생당했고 지속적으로 희생당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연약한 동물에 빗대어 표현한다. 최근 그녀가 가진 개인전 전시명도 ‘희생자의 집’이었다. “대부분 인간은 약자엔 강하고 강자엔 약해지죠. 사회적 원리이기도 한 것 같아요. 작품 속 어린 동물들을 상자 안에 가둔 것도 그와 같은 이치에요. 속박당하고 희생당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힘없고 연약한 동물들로 표현했어요. 사실 우리는 모두 약자이면서 강자예요. 여기 상자 속 어린 동물들은 이름 없이 모두 번호를 붙였어요. 박탈감을 느끼기도 하고, 존재감도 없죠. 마치 감옥과도 같다고 볼 수 있어요.” 처음에는 단순히 예쁘고 귀엽게만 보이던 김여운의 작품을 가까이 다가서서 보면 생명체들이 좁은 아크릴 상자 속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들이 갇혀 있는 투명 상자는 억눌림과 고독 그리고 동물들의 사물화를 강조한다. 그녀는 그림 속 상자를 통해 자신보다 약하고 가녀린 존재들을 속박하면서 강자에게 비굴하고 약자에게 잔인한 인간의 비열한 속성을 비유적으로 나타낸다.

“어린 시절 아버지께서 새 2마리가 있는 새장을 사주셨어요. 1년이 지나 우연한 계기에 새 한 마리가 도망을 갔죠. 사실 그때 처음으로 갇혀 있다는 의미와 억압을 느꼈어요. 새장 속 새는 당연히 그 안에서 적응하며 살았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때의 사건이 무의식 속에 존재해 있었어요.” 코끼리 상아와 사슴 박제를 그린 작품 또한 그냥 예쁘게 그린 그림이 아니다. 김여운은 인터넷 검색을 하던 중 사슴 박제를 보고 충격과 함께 분노를 느꼈다. 동물도 하나의 생명체인데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사슴의 박제를 보고 즐긴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코끼리 상아를 보면서도 그 코끼리가 죽는 모습 등 인간의 욕망에 희생된 슬픈 코끼리의 마음을 함께 담았다. 김여운 작가는 “예쁜 모습만 보는 현실이 문제”라고 말한다.

그녀는 이렇게 알고 보면 암울하고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지만 그것을 표현할 땐 예쁜 그림으로 그린다. 거부반응이 들지 않는 귀엽고 극사실적인 화면에 순수함과 진실을 보여주고자 흰색을 많이 쓴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좋아한 김여운은 늘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고, 무엇인가를 그리고 완성했을 때 기쁨을 느꼈다. 그 기분은 지금까지도 여전하다. 하지만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 잠시 그림을 멈춘 적이 있다. 대학 미술교육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림에 대한 어떤 기준도 없고 그리기 싫은 걸 그리게 하는 등 그림에 대한 흥미가 떨어진 이유였다. 한때 2년간 휴학도 하며 고시공부를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이후 국제갤러리에서 인턴 큐레이터로 1년 10개월 정도를 보내면서 많은 그림을 보다 보니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그림이 어떤 그림인가를 깨닫게 됐고, 이를 계기로 다시금 그림에 욕구를 느껴 붓을 잡게 됐다. 그때의 경험이 지금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다시 그림을 그리면서 졸업 전시에 4개의 문을 그렸어요. 그 문은 현실을 탈출하고자 하는 탈출구인 셈이죠. 문과 창문 등은 인간의 이기적 욕망에 희생된 장소로서 현실의 잔인함을 나타내죠. 문이나 창밖으로 보이는 공간은 우리가 가고자 하는 이상적인 세계예요. 그 중 우주는 인간의 나약함과 미약함을 깨닫게 하는 장치로 작용해요. 광대한 우주 속 먼지만큼 작은 점에 불과한 지구에 사는 인간의 그릇된 욕망과 욕심을 지적하고 싶었어요.” 앞으로도 이상과 현실의 희생자들이 함께 공존하는 방으로써 자신의 집을 그려 나갈 것이라고 한다. 현재의 작업은 머릿속에 있는 구성의 아주 미약한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그녀는 “평생 그려가야 할 작업이다. 지금과 앞으로 30년이 지나 그린 그림이 서로 동떨어져 있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그림이 된다. 최근 혼자 갇혀 있는 것에서 벗어나 늑대와 토끼 두 마리가 함께 있는 그림을 그렸는데 작품명이 ‘42번 상자, 인간은 모든 인간에 대한 늑대이다-홉스’로 동등한 상황 속에 있지만 토끼에게는 불리한 상황을 나타냈다”고 말한다. 평면작가이면서 설치작가인 김여운은 기존의 틀에 박힌 캔버스를 탈피하고자 가구와 그림을 하나로 만든다. 가구 디자인도 자신이 직접 한다. 바닥에 놓고 보고, 어디든 걸 수 있는 그림이자 하나의 인테리어로서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특히 우주 그림의 경우 ‘천장에 걸어도 좋은 작품’이라고 웃으며 말한다. 인간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하는 김여운은 동물을 사랑하는 순수하고 진실 된 마음으로 동물, 문, 상아 같은 사물의 고유한 본질적인 느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속박된 자유’라는 메시지를 은유적으로 담아 전하고자 노력한다. 그녀는 “눈으로 바라보기에는 예쁘지만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현실의 숨겨진 이면을 작품으로 보여주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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