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재오 특임장관이 정치권에 이어 종교계와 경제계인사들을 두루 만나는 등 정계복귀 이후 보폭을 상당히 넓히고 있다. 이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 국정기조로 제시한 ‘공정사회’ 구호의 전도사 역할을 자임하며 실질적인 ‘국정 2인자’로 자리매김하는 모양새를 보이는 그에게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이 장관이 주요 국정 현안을 논의하는 각종 당-정-청 회의의 핵심 멤버로 참석하는 것은 물론 ‘실세 장관’으로서 내각의 군기반장을 할 태세를 보이고 있어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의 지난 9월 7일 청와대 정례회동에 이 장관이 정부를 대표해 유일하게 배석한 것을 두고 정가에서는 “상징적인 일이며 그 자리에 이 장관을 참석시킨 것은 정치적 의미가 크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이 장관이 이 정례회동의 ‘고정 멤버’임을 못 박고, 당-청 관계에서도 핵심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이 대통령의 의중이 드러난 만큼, 앞으로 당-정-청의 핵심 지도부가 국정 현안을 논의하는 ‘9인 회의’ 등에서도 주역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이재오, 장-차관에게 ‘마부위침’ 자세 강조 앞서 지난 9월 5일 청와대에서 열린 장·차관 워크숍에서도 ‘이재오의 힘’은 확인됐다. 이 장관은 이날 워크숍에서 ‘마부위침(磨斧爲針: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이라는 한자 성어를 인용하면서 장-차관들을 독려했다. 그는 “이번 정기국회가 정부의 중점 법안을 통과시킬 마지막 적기라고 생각하고 장-차관은 마부위침의 자세로 임해 달라”고 당부하면서 “친서민과 공정사회 법안 통과에 최선을 다해 달라”고 독려했다. ‘마부위침’은 이백(李白)이 산에 들어가 공부하다가 공부에 싫증을 내고 돌아오던 길에 한 노파가 바위에 열심히 도끼를 가는 모습을 보고 감명을 받아 다시 학문에 힘썼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이 장관의 이 발언은 표면적으로는 장-차관들이 ‘정치 국회’ 대응에 만전을 기해달라는 말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가 현 정권의 실세이고 연장자라는 점에서 이명박 정권 후반기 출범과 함께 내각을 다잡기 위한 발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그가 지난 7.28 재보선에서 원내로 진출하면서 위상이 더욱 강화된 만큼 앞으로 내각의 군기반장 역할도 마다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는 발언으로도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이 장관은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장-차관들이 여야를 가리지 말고 의원들을 찾아가 관련 법안 처리를 위해 노력과 성의를 다 해달라는 뜻이었다”며 “장-차관들이 국회 대응을 건성으로 하지 말고 정성을 다하라는 취지의 말”이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그리고 이 장관은 이날 워크숍 분위기와 관련해 “(문제가 된 각료 내정자나 각료가) 다 사퇴한 만큼 이제 좀 내각이 활성화돼서 공정한 사회를 위해 나아가야 한다는 의지가 강했다. 이제 해보자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국회의원을 불러 모으는 특임장관” 이 장관은 9월 6일 김무성 원내대표 등 한나라당 원내대표단 20여명과 마포의 한 음식점에서 3시간 가까이 비공개 만찬을 가진 데 이어 다음날인 7일 저녁에는 고흥길 정책위의장 등 정책위의장단 18명과도 자리를 함께 했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정치권과의 소통에 본격 시동을 거는 모습이다. 이와 관련해 한 당직자는 “전임 특임장관(주호영)은 의원들의 모임들을 따라다녔지만, 이 장관은 실세답게 의원들을 불러 모은다”고 평가했다. 이 장관은 4선인 김무성 원내대표와 나란히 앉아 여당 생활 2년 만에 야당 의원이 된 ‘아픔’과, 야당 시절 정권교체를 위해 어떤 토대를 쌓아왔는지 등을 말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이 장관은 원내대표단이 당-정-청 소통의 한 주축이라는 인식을 갖고 이번 정기국회의 원만한 진행에 역할해 줄 것을 당부했고, 정치권의 최대 화두인 ‘공정사회’가 화제에 오르자 “잣대가 정확해야 공정한 사회 아니겠느냐”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이 만찬자리에서 한때 친이계와 친박계 좌장 역을 맡았던 이 장관과 김 원내대표는 진한 ‘러브샷’을 나눴고, 이 장관이 자신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90도 인사’를 선보이자 김 원내대표도 똑같이 허리를 숙여 화답하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이 장관은 다음날 정책위의장단과 가진 2시간30분 동안의 만찬자리에서도 당-정-청 소통을 강조했으며, 고흥길 정책위의장은 “당-정-청이 일체가 돼야 이명박 정권이 성공하고, 한나라당과 이 나라가 산다”고 호응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같은 ‘이재오의 힘’은 이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뢰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이 장관 측은 “이 장관은 '이명박 정부를 성공시키는 게 특임장관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정부에 대한 충성심과 애정이 크고 이 점을 대통령이 좋아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2008년 총선 낙선 이후 한때 위축됐던 이 장관이 7·28 재·보선 당선과 특임장관 임명을 계기로 ‘정권 2인자’로서의 위상을 회복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지난 ‘8.8 개각’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정권 2인자 발탁’이라는 점 때문에 이 특임장관 내정자에 대한 8월 23일 인사청문회는 여야 간 최대 격전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싱겁게’ 끝나버렸다. 청문회의 ‘단골메뉴’인 큰소리가 한 차례도 나오지 않았던 데는 이 내정자의 ‘낮은 자세’가 한몫을 했다. 청문회 직전 운영위원들에게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한 이 내정자는 청문회 내내 자세를 낮췄으며, 특히 민주당의 주 공격수인 박지원 원내대표의 지적에 대해서는 “죄송하다” “알겠다”며 짤막하게 대답했고 민감한 사안에는 즉답을 피했다. 또한 운영위원장에게는 “답변 좀 해도 되겠습니까”라고 묻는 ‘예의’까지 표하자 야당의 공세도 무뎌지기 시작했다. 청문회를 잘 넘긴 이 장관은 8월 30일 오후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가진 특임장관 취임식에서 “대통령의 국정철학인 소통과 화합이 공직사회는 물론이고 모든 국민에게 잘 전달되도록 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성공한 대통령, 성공한 정부를 만드는 것이 특임장관실의 임무”라고 밝혔다. 이어 이 장관은 “특임장관실은 다른 행정부서와 다르다”며 “국민의 뜻과 생각, 그리고 공직 사회의 여론이 가감없이 대통령에게 잘 전달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장관은 “이명박 정부 아래서 일류국가로 들어가는 길을 열어놔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정치와 공직사회, 기업이 청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그는 “특임장관실은 전 직원이 같은 생각으로 같은 곳을 바라보는 자세로 근무해야 한다”며 “지난날은 다 버리고 ‘이재오 장관식 생각’ ‘이재오 장관식 근무’로 체질을 바꿔 달라”고 당부했다.
이 장관은 “공부했던 모든 지식도 현장에서 검증되지 않으면 쓸모없는 지식”이라며 “나라 전체가 우리의 현장이고 대통령 생각이 미치는 곳, 대통령 눈길이 가는 곳, 대통령 발길이 가는 곳이 다 우리의 현장”이라며 현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여러분이 저와 함께 일해서 일류 국가를 만들고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들어가는 데 시대적 소명을 다 했다는 자부심과 가치관을 가질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재오 “야당 대표 찾는 것이 특임장관의 첫 임무” 이 장관이 취임 뒤 복숭아 20상자를 들고 8월 31일 오후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서울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에서 열린 민주당 국회의원 워크숍이었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를 만나 신임 인사를 하면서 “잘 부탁합니다”며 90도 인사를 하자 박 원내대표는 “축하한다. ‘특임 총리’가 오시니까 취재 언론이 많다”며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이 장관은 “오늘 아침 국무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야당 대표에게 제일 먼저 인사하라. 첫 번째 특임이다’고 말했다”고 소개한 뒤 “야당 원내대표는 하늘처럼 모셔야 한다. 나도 야당 원내대표를 두 번 해봐서 잘 안다”고 몸을 낮췄다. 이에 박 원내대표는 “나도 장관을 두 번 해봐서 장관 좋은 것 다 안다”며 “좋은 것을 아는 사람이 (야당의) 어려운 것을 도와줘야죠”라고 말했다. 이어 박 원내대표는 이 장관의 인사청문회를 거론하며 “뭘 찾아보려고 해도 찾을 수가 있어야지. 왜 이렇게 시원찮게 살았느냐. 부동산 투기도, 위장전입도 못하고…”라고 ‘핀잔’을 주자 이 장관은 “제가 좀 부실하게 자랐다”고 웃으며 화답하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이후 두 사람은 배석자 없이 10여 분간 독대했다. 이처럼 취임 뒤 활발한 소통 행보에 나서고 있는 이 장관은 지난 9월 2일에는 김영삼-전두환 전 대통령, 그리고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를 예방했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 민주투쟁으로 투옥 당한 바 있는 이 장관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연희동 자택을 방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물론 그는 이 자리에서도 90도로 허리를 굽히는 등 몸을 낮추는 행보를 멈추지 않았다. 이 장관은 이런 ‘예방 정치’를 통해 일종의 ‘해결사’ 역할을 마다않고 있다. 이 장관은 지난 9월 2일 이희호 여사를 예방한 자리에서 “‘김대중 자서전’을 김정일 국방위원장한테 전하고 싶은데 여의치 않다”고 부탁하자, 이런 내용을 당일 곧바로 통일부에 전달했다. 이에 이종주 통일부 부대변인은 “특임장관실의 연락을 받고 자서전 전달 여부와 방법, 시기 등을 검토하고 있다”며 “조만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즉각 반응을 나타냈다. 또한 이 여사는 이 장관에게 “지금 쌀이 남아돌고 심지어 가축 사료로 쓰이고 있다는데 대북 쌀 지원으로 굶주린 이웃을 돕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며 “이명박 대통령에게 잘 말씀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이 장관은 “최근 청문회 때도 야당 의원들의 질문에 개인적 생각으로는 지원을 해야 한다고 답변했다”며 “앞으로 정부에서 염두에 두고 잘 협의를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종교계-경제계 만나 ‘공정사회 전도사’를 자임 이 장관의 소통과 화합을 위한 행보는 9월 3일 정진석 추기경을 예방하는 등 종교계 지도자들을 잇달아 방문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청 주교관에서 정 추기경을 예방한 자리에서 이 장관은 “이명박 정부가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 성공한 정부가 되려면 각계, 특히 종교계 지도자의 말씀을 잘 경청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며 조언을 구했고, 정 추기경은 “일반인이 바라는 것이 있다면 (지도자들이) 국민의 행복을 위하고, 국민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 추기경은 “국민의 마음이 불편할 때는 (사회가) 불공평하다고 느낄 때”라며 “공평하다고 느낄 때 그것이 행복의 요건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정 추기경은 “그래서 각계각층의 지도자들, 특히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가들에 대해 국민이 더 민감하고 가혹한 평가를 하는 것”이라며 “공평하게 해달라는 마음이 표출”이라고 덧붙였다. 정 추기경은 “정치인이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분으로 국민에게 비춰질 때 자발적으로 지지하지 않겠느냐”며 “국민은 정치하는, 권력을 가진 분들에 대해 누구를 위해 권력을 쓰는지를 늘 주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이 장관은 수첩을 꺼내 메모하며 “정부에 있는 사람들이 명심해야 할 말씀”이라고 대답했다. 이 장관은 이어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한양원 원장을 예방했으며, 김장환 목사, 이광선 목사, 최근덕 성균관장 등을 방문한 데 이어 9월 6일에는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 임운길 천도교 교령, 김주원 원불교 교정원장을 잇따라 예방했다. 이 장관의 서민 행보도 이어진다. 그는 첫 출근 날부터 “고위 공직자들 스스로 서민적 생활을 해야 한다”는 지론에 따라 지하철로 출근하고 있다. 9월 3일 출근길에서는 옆자리에 앉은 시민이 “승용차를 산 뒤 8년째 거의 타지 않는데 보험료는 꼬박꼬박 낸다”고 하자 그는 “승용차를 탄 거리를 기준으로 보험료를 책정하면 어떻겠느냐”라고 즉답했고, 그 시민은 “참 좋은 생각”이라고 했다. ‘지하철 출근은 쇼’라는 지적에 대해 트위터를 통해 반박했던 그는 이날도 기자들에게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높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며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을 비난하거나 서운해 할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 장관의 ‘광폭행보’는 정치권, 종교계를 거쳐 경제계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그는 9월 8일 재계와 중소기업 인사들을 만나 ‘공정’과 ‘상생’이라는 이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 장관은 이날 오전 서울 삼성동 한국무역협회를 방문해 사공일 무역협회장과 환담했으며, 오후에는 여의도를 찾아 전국경제인연합회 정병철 부회장, 중소기업중앙회 김기문 회장을 연이어 만났다. 이 장관은 이 자리에서 공정한 사회 실현을 위해 대기업들이 중소기업과의 거래관행을 개선하고 상생에 적극 나서 달라는 당부와 함께 재계의 건의사항 등을 청취했다. 중소기업중앙회장과 만난 자리에서는 중소기업들이 처한 인력난을 비롯한 각종 경영 애로사항 등을 들었다. ‘정권 2인자’로서 ‘총리급 장관’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 장관의 재계 방문은 이날 아침 청와대에서 대-중소기업 상생 방안을 놓고 이 대통령과 중소기업 대표들의 간담회가 열린 직후에 이뤄졌다. 이와 관련해 특임장관실 관계자는 “공정사회에 대한 부분을 강조하고 그 의미를 전파하는 동시에 업계의 의견을 듣고 정부에 전달할 부분이 있는지 챙기고, 필요한 경우 후속조치를 추진하게 될 것”이라며 “아무래도 경제계 방문 자리인 만큼 일자리 창출이나 대-중소기업 상생 문제 등에 대한 대화가 주를 이뤘다〃고 전했다. 이처럼 여기 저기 인사를 다니는 것에 대해 이 장관은 “종교계, 경제계 등에 취임 인사를 다니며 단순히 인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많이 듣는다. 모두 소통과 화합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민생 현장은 다 갈 것이다. 그것이 특임장관이 할 일”이라고 덧붙여 ‘특임’의 끝이 어디까지일지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