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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도 ‘망욕(亡慾)의 거울’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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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87호 최영태⁄ 2010.09.13 12:01:40

최영태 편집국장 90년대에 웃기는 일이 있었다. 건설부 출입기자가 막 송고한 기사를 신문사 내근 직원이 봤다. 강남에 대규모 부동산 개발이 이뤄진다는 기사였고, 엠바고(특정 기사를 내보내기로 약속한 시점)는 다음날이었다. 이 내근 직원은 점심을 거르고 예금을 톡톡 털어 현장으로 달려갔다. 다만 몇 평이라도 땅을 사 놓자는 특급 작전이었다. 복덕방에 달려 들어가 매물을 찾는 그에게 복덕방 주인이 말했다. “어허, 이제 오는 사람이 다 있네 그래.” 이런 게 한국의 현실이다. 부동산 개발 계획이 세워지고 발표되기까지는 많은 사람이 관여하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정보를 아는 사람들은 역시 관련 공무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해당 지역의 경우 입안에서 확정, 그리고 내일로 다가온 발표일까지 수많은 단계가 있었고, 그때마다 사람들이 와서 땅을 훑고 지나갔다는 일화다. 이 얘기를 들으면서 “공무원이 이래서 무섭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정한 마음을 갖지 않고 사리사욕부터 챙기려 들면 공무원이 할 수 있는 일은 일반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고 크다. 최근 개각 인사청문회에서 공직자의 재산 형성 과정과 거짓말 사태 등을 보면서 당시 일이 떠올랐다. “일만 잘하면 됐지, 공직에 도덕성은 크게 중요한 게 아니다”는 이론도 있는 모양이지만, 이런 현실을 생각하면 ‘열심인’ 공무원이 더 무섭다. 차라리 스스로 뭔가를 도모하지 않고, 위에서 시키는 일, 또는 주민이 성화를 부리는 일만 하는 공무원이 더 좋은 공무원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세계를 휩쓴 인기 소설 ‘해리 포터’에 보면 ‘에리세드 거울(Mirror of Erised)’이란 게 나온다. 에리세드는 욕망(Desire)을 거꾸로 읽은 철자다. 한국말로 번역하자면 욕망(慾望)을 거꾸로 읽어 ‘망욕(亡慾)의 거울’이란 멋진 번역어도 나올 듯싶다. 이 거울 앞에 서면 자신의 욕망이 보인다. 해리 포터의 친구 로널드 위즐리는 거울 속에서 자신이 운동선수로 성공한 모습을 본다. 욕망이 투영된 모습이다. 1살 때 부모가 악당에게 살해당한 해리 포터는 거울 속에서 간절히 그리던 어머니-아버지의 모습을 처음 본다. 소설 속의 ‘최고 마법사’ 덤블도어는 ‘마법사의 돌(Sorcerer's Stone)’을 이 거울 속에 숨겨 놓았다. 그러나 아무도 그 돌을 보지 못한다. 욕망이 눈을 가려, 황금 따위(욕망의 대상)만이 거울에 비치고, 뻔히 놓여 있는 마법사의 돌(진실)은 아무도 보지 못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마침내 해리 포터는 그 돌을 찾아낸다. ‘찾는 데’만 열중하고, ‘쓰는 데(마법사의 돌을 찾아내 자신이 성공하려는 욕심)’에 대한 욕심을 버린 순간이었다. 이 소설이 주는 교훈은 ‘사리사욕을 챙기는 사람에게는 진실이 안 보이며, 자신을 버린 사람에게만 진실이 보인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도 이런 진실이 있을 것이다. 모두가 바라는 바람직한 미래 한국-한국인의 모습이다. 우리에게도 ‘망욕의 거울’이 있다면, 인사청문회가 그런 과정일 것 같다. 눈꺼풀을 덮은 사리사욕의 두께를 측정하는 게 바로 인사청문회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청문회 과정에서 몇 내정자가 탈락한 것은 참 잘된 결정이다. ‘망욕의 거울’에서 진실을 보지 못할 사람은 공직을 맡아선 안 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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