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광 (아프리카미술관 관장·갤러리통큰 대표) 아프리카에서 사자(死者)는 살아 있는 사자(living-dead)이다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오늘이라는 사사(sasa)의 시간으로부터 어제라는 자마니(zamani)의 공간으로 서서히 옮겨가는 하나의 ‘과정’이다. 그래서 사자(死者)는 그가 생전에 알고 지냈던 친구들이나 친척들 그리고 유족들에 의하여 살아 있는 사자(living-dead)로 남게 되는 것이다. 짐바브웨의 은데벨레(Ndebele)족 사람들이 가장의 시신을 방문이나 대문으로 내보내지 않고 벽과 울타리에 구멍을 뚫어 내보내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이다. 이는 죽은 사람이 집안에서 완전히 떠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행위이다. 살아 있는 사자의 이름이 기억되는 한, 그는 죽었지만 정말로 죽은 것이 아니다. 그는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이다. 육신은 죽었지만 생전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영(靈)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혼인을 중시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혼인을 통하여 친인척을 늘리고 자신을 기억할 자손을 낳음으로써 자신의 영속성을 이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혼인은 한 사람이 오랜 기간 동안 여러 사람의 기억에 머무르게 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인 것이다. 따라서 아프리카에서 혼인하지 않는다는 것은 죽음에 정복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죽음은 미래가 아닌 과거를 향한 시간에서 완성된다 살아 있는 사자는 사사의 시간 안에 영원히 머무르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죽어가 아무도 남지 않게 되면, 살아있는 사자는 자마니의 공간으로 침잠하여 완전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살아 있는 사자는 ‘잊혀짐’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하나의 영(靈)으로 전화됨으로써 비로소 죽음을 완성하는 것이다. 영이 되는 것이야말로 삶의 마지막 단계로 개인적인 불사(不死)의 상태에서 집단적인 불사의 상태로 들어가는 즉 신적 존재와도 같게 되는 것이다. 말리의 도곤(Dogon)족 신화에 나오는 레베(Lebe)는 죽음이 인간세계에 도입되기 전에 살았던 나이 많은 노인이었다. 어느 날 그는 지쳐버린 자신의 육체로부터 해방되기 위하여 최고신 암마(Amma)를 찾아가 죽음을 요청했다. 그렇게 해서 레베는 죽었지만, 그의 가족들은 그가 잠들어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시체를 땅속에 묻어 두었다. 여러 해 뒤에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하여 무덤을 팠을 때 유골 대신에 뱀이 발견됐고, 그 뱀은 사람들을 따라갔다. 이후에 도곤족 사람들은 다른 차원의 불멸성을 획득한 레베를 자신의 조상신으로 여기고 뱀을 숭배하게 되었다.
죽음은 삶의 의미를 확장하여 이데아를 되새기게 한다 조상숭배의 이데아는 삶의 이상, 즉 자마니의 세계로 들어가려는 개인과 종족의 염원이 일치되면서 불멸성 그 이상의 무엇을 제시하게 된다. 그것은 한 종족의 축적된 지식과 기억 그리고 생명의 기원에 관한 것으로 삶을 다른 차원으로 전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죽음을 삶으로서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감싸 안으려고 했던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죽음은 삶의 리듬을 방해하기도 하지만, 어느 한 편으로는 삶의 의미를 확장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집 안마당에 무덤을 만들어 놓은 것, 이는 죽음마저도 삶의 이데아로 실천하려는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