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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ENNALE]2010광주비엔날레

볼거리 많은 한 권의 장편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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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188-189호 편집팀⁄ 2010.09.27 11:27:25

변길현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2010광주비엔날레가 '만인보 (萬人譜, Maninbo)-10000 Lives'라는 제목으로 9월3일부터 11월 7일까지 66일간 광주광역시 비엔날레전시관 등에서 마시밀리아노 지오니(Massimiliano Gioni) 예술총감독(뉴욕 뉴뮤지엄 특별프로젝트 디렉터)의 기획으로 전시된다. 38살의 이탈리아계 미국인인 지오니 감독이 해마다 노벨문학상에 거론되곤 하는 고은 선생의 연작시집 만인보를 차용한 전시 형식이다. 만인보란 고은 선생의 시집 제목으로 역사적 인물들이나 시인의 가족뿐만 아니라 이름 모를 민초들의 삶까지 시로써 펼쳐낸 세계적 역작이다. 시인은 그저 사람의 삶을 그대로 써내려갔을 뿐이라고 겸손하게 말하지만, 문학평론가 염무웅이 피력하였듯이 “등장인물들의 삶이 개별적 독립성을 가지면서도 서사적 통합을 구현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하여 전시 내용도 이 세상의 모든 시각이미지를 시처럼 압축하여 담고자 하였다. 비엔날레는 31개국 134명의 작가가 참여하는 이번 전시에서 1901년부터 2010년 사이에 제작된 작품 및 문화적 유물을 선보인다. 즉, 비엔날레의 본업인 세계 현대미술의 소개라는 의무나 구속을 벗어던지고, 과감히 과거의 작품들 또는 유물들도 전시한 것이다. 그 이유는 전시주제를 구현하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지금까지의 모든 광주비엔날레 중에서 전시주제에 가장 충실한 전시이다. 기획자는 각 전시실에 대해 개성을 부여하면서도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려고 하였고, 크고 작은 134점의 출품작들을 통해 각각의 삶을 시각 이미지로 담으면서 시인의 이상처럼 만인의 삶을 서사적으로 통합하여 보여준다.

전시는 크게 7개 전시장으로 구분되어있다. 전시 기획자는 각 전시장별로 소주제를 정했다. 1실은 <이미지의 창조, 이미지의 제시>, 2실은 <이미지의 구성, 일루젼>, 3실은 <기억의 공간, 기념, 생존으로서의 이미지>, 4실은 <은유대상의 이미지>, 5실은 <기억의 이미지>, 광주시립미술관 전시실은 <자화상과 자기 재현>, 광주시립민속박물관 전시실은 <역사와 기억>이다. 전시장이 여러 곳이고 볼만한 작품이 워낙 많으므로 관람객들은 이 소주제를 미리 기억하고 방문하면 작품을 관람하기가 더 편리하고 작품 이해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기획자는 현직 큐레이터이기도 하지만 전직 미술잡지 편집장이기도 하여서, 이번 전시는 미술잡지의 특집기사처럼 잘 정돈되어 있고, 볼거리들로 풍성하다. 볼거리 많은 특집기사를 위해 20세기초부터 2010년까지 만들어진 시각예술 중에서 엄선된 작품들이 치밀한 동선을 따라 놓여져 있는데, 이중에는 세계의 주요미술관과 컬렉터가 소장하고 있는 작품을 비롯한 문화적 산물들까지 배치되었으며, 전문 작가들의 창작품과 더불어 테디베어 콜렉션, 꼭두 콜렉션, 초상화 프로젝트같은 대중문화적인 매체들까지 배치되어 섹션을 이동하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관람객들은 시각예술을 통하여 전세계 사람들의 삶의 모습들을 들여다봄으로써 한 권의 장편 시집을 읽은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비엔날레의 존재 목적을 생각했을 때, “비엔날레의 황혼을 알리는 레퀴엠”이라는 어느 미술 전문기자의 독설을 피해나가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1895년 베니스비엔날레가 생긴 이후, 비엔날레의 파생효과를 주목하여 급조된 세계의 비엔날레들은 그동안 정치사회적 이슈의 제기, 실험적인 제안, 문제 작가의 발굴, 뉴욕·베니스 등 미술 주류에 대한 반발 및 제3세계 미술의 소개 등의 역할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 세계적인 동시대 미술의 새로운 흐름을 알 수 있다는데 그 존재가치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발상 자체를 바꿔 20세기 초부터 2010년까지 인간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시각예술 작품들을 망라하였으며 따라서 기존 비엔날레의 역할을 의도적으로 무시하였다. 이것이 이번 전시가 유물적인 박물관 전시라는 평을 듣는 주요 이유이다. 또한 최근 미술계에서 비엔날레로부터 기대할 것이 없다는 말이 계속 나오고 있는 것은 기획자와 참여작가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남 좋은 일만 하고 있다는 실망감, 2000년 이후 급속도로 발전한 한국 미술관들의 전시기획과 비엔날레 전시와의 차이점을 발견하기 힘들다는 점, 그리고 더더욱 급속하게 성장한 미술시장으로의 미술계 권력이동이 그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 어쨌거나 이번 비엔날레 역시 한판의 바둑이다. 이리 두든 저리 두든 이것도 흐름이다. 이번 전시가 유물적인 박물관 전시가 되던, 비엔날레의 황혼을 알리는 레퀴엠이 되던, 이 모든 것은 고은 시인의 만인보처럼 우리 삶 속에 묻혀서 한 편의 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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