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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필요한 것은 철면피 후츠파 정신”

청와대가 600권 구입한 ‘창업국가’ 펴낸 윤종록 연구원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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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188-189호 양지윤⁄ 2010.09.29 13:09:56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유대인 샤일록은 ‘철면피’의 극치를 보여주는 캐릭터다. 고리대금업자인 그는 돈을 빌리러 온 안토니오에게 약속한 날까지 돈을 갚지 못하면 ‘1파운드의 살’을 가져간다고 계약서에 명시했다. 비록 극중이긴 하지만 이 끔찍한 요구를 한 샤일록은 이스라엘과 유대인을 부정적으로 인식시키는 데 기여했다. 실제로 이스라엘어에는 철면피의 의미를 포함하는 ‘후츠파’라는 단어가 있다. 뻔뻔함, 오만함을 가리킬 때 쓰는 이 단어에는 재밌게도 또 다른 숨겨진 뜻도 있다. ‘놀라운 용기, 대담함, 당돌함’ 등이 그것이다. 이렇게 해석의 범위가 열려 있는 단어인 후츠파는 이스라엘 경제정책의 성공 비결을 푸는 열쇠라고 할 수 있다. 윤종록 벨연구소 특임연구원(전 KT 부사장)은 그 성공의 비결을 전파하는 메신저로 자임하고 나섰다. 댄 세노르와 사울싱어가 지은 ‘창업국가’(Start-Up Nation)를 한국어로 옮기고, 과학기술에 기반해 높은 성장률을 구가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경제정책을 국내에 적극 알리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에도 이 같은 소식이 전해져 출간되자마자 윤 연구원이 번역한 책을 600권이나 구입해갔다고 한다. 윤 연구원은 “이스라엘 민족은 역사적·지리적으로 절박함을 안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오기 있는 국민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후츠파는 이러한 민족성과 합쳐져 오늘날 이스라엘의 성공을 이끌어내는 데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자원이 넉넉하고 노동력이 풍부한 선진 국가는 굳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지 않고, 있는 것을 그대로 가공해도 별 문제가 없는 반면, 이스라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지 못하면 당장 생존 문제와 직결될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그는 단호하게 말한다. “자원이 있는 나라와 자원이 없는 나라의 국가경영 방식은 달라야 하며 한국은 여유 있는 나라를 따라가기보다는 이스라엘 같이 열악한 국가의 성공담에 주목해야 한다”고. 자원이 없는 이스라엘은 GDP 순위는 세계 30위에 불과하지만 지적 재산권 보유량은 세계 3위를 기록할 정도로 브레인 파워가 막강하다. 이는 경제적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자원 없이도 부를 창출할 수 있는 사회구조가 돼 있다는 의미다. 부총리실 산하에 최고의 과학기술집단인 OCS(Office of Chief Science)에 150명 요원을 두고 교육, 과학, 산업, 인력 정책 전반에 참여시킨다. 구체적인 액션 플랜을 만들어 정부의 정책으로 입안하고 실행하는 역할을 하는 전문 과학기술 행정기관이다. OCS는 90년대 초부터 ‘요즈마’라는 이름의 펀드를 10여개 만들어 벤처창업에 불을 지피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윤 연구원은 “한국에서도 김대중 정부 시기 벤처 창업을 장려하는 정책을 펼치며 자금을 지원한 적이 있는데, 요즈마 펀드는 이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했다. “한국에서 벤처 펀드는 그저 눈먼 돈에 불과했지만 이스라엘에선 OCS가 확실한 가이드라인을 갖고 거품이 끼지 않도록 관리했기 때문에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한국의 벤처투자 정책은 부실로 끝났지만 ‘악착같은’ 이스라엘의 요즈마 펀드는 국부 95% 창출하는 대히트 기록한 이유는? 요즈마 펀드는 기업과 국가가 각각 절반씩 연구 투자비를 조성하는 매칭 펀드 형태로 시작한다. 창업 뒤 기업이 성공하면 정부는 창업 기업에게 정부 지분을 살 권리를 준다. 이런 방식으로 탄생한 △역삼투압 원리를 이용해 최소 에너지로 해수를 담수화 하는 기술 △석유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며 원자력 발전을 위한 안전기술 개발 △사이버 세상의 안전문제를 책임지는 보안 알고리즘 등은 이스라엘 경제의 95%가 과학기술에 의해 지탱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스라엘 국민은 자원이 없어도 특허권과 기술을 대대손손 물려줄 수 있는 저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윤 연구원은 “인간의 두뇌를 얼마나 잘 활용하고 관리하면 성공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실증적 사례”라며 “한국 정부도 일자리 창출에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이스라엘처럼 비즈니스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이끌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에서 추구하는 일자리 창출 사업은 기존 사업이 성장하더라도 일자리 창출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윤 연구원은 또 이스라엘 고유의 독특한 군사 문화도 과학기술 기반의 경제성장에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직업인으로서 사회에 진입할 때 ‘어느 대학 출신인지’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지만 이스라엘에서는 ‘어느 부대 출신인지’가 훨씬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이스라엘 인터넷 구직란을 보면 ‘8200부대 출신을 원한다’는 글이 많이 올라온다. 8200부대는 신체, 학습능력, 성격 등 모든 면에서 요구 조건을 충족시키는 젊은이들을 20명 선발해 최고의 과학기술을 가르치고 전문가로 키운다. 이보다 한 차원 높은 ‘탈피오트’ 부대도 유명하다. 지난 6월 초 LG전자가 “이스라엘의 탈피오트 부대를 배우자”는 캠페인을 벌여 국내에도 알려진 이 부대는 복무 기간만 최소 9년에 달하는 엘리트 양성기관이다. 이스라엘은 가장 뛰어난 인재들을 모아 1년 안에 대학 정규 과정의 수학, 물리학 공부를 마치게 하고 전략과 전술적 요구 사항을 끊임없이 제공하여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른다. 이 부대 출신들은 이스라엘 최고의 대학교수가 되거나 가장 성공한 기업의 창업자가 되는 등 그들의 능력을 사회에 환원시키고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군대는 자율성이 떨어지고, 개인보다 집단의 규율이 엄격하게 적용되는 조직이다. 이스라엘은 남녀 모두 군대에서 국방의 의무를 져야 할 정도로 한국보다 더 강력한 병영국가 체제로 운영되지만, 오히려 군대가 개인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발휘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윤 연구원은 “이스라엘 군대만큼 계급의 수가 적은 국가도 드물 것”이라며 “이스라엘의 하사관은 한국 군대로 따지면 중령 정도의 권한을 가지므로 부대를 지휘하고 결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이스라엘 군대는 엄격한 계급 중심이 아니기 때문에 간섭이 없고 창의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라고 덧붙였다. 1967년 6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벌어졌던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데는 매일 작전을 점검하고, 각 위치의 담당자들이 책임을 점검하는 피드백을 끊임없이 주고받은 바탕이 있었다는 지적이다. 한국 군대였다면 성공과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는 작업이 곧 책임 소재의 여부로 번질 수 있어, 이런 피드백 과정이 원활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성공 신화 중 어떤 점을 ‘벤치마킹’해야 할까. 윤 연구원은 “대통령에서부터 교사에 이르기까지 항상 생존법이라는 키워드를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스라엘은 두뇌에 기반한 경제를 일구는 과정에서 과학과 경제를 한 팀으로 묶어 협력하는 정책을 펼쳤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총리 명함에는 ‘과학기술산업자원노동경제 파트 기획부분 총리’라는 다소 긴 문구가 새겨져 있다. 정부는 한계에 부딪힌 일자리 창출만 외칠 게 아니라, 비즈니스 창출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펼쳐야 자연스럽게 일자리 창출도 따라온다는 주장이다. 한국 군대는 ‘젊은이 창의력’ 죽인다며 젊은이들이 안가려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이스라엘 군대는 엘리트 양성소 된 까닭은? 그는 또한 일자리 문제로 고통에 빠진 젊은 세대에게는 “무엇에든 몰입해 없는 것을 만들어 내라”고 제안했다. “정부가 일자리를 창출해 줄 때까지 마냥 기다려서는 안 된다”며 “기존에 있던 것을 그대로 모방하면 받아주지 않는 곳이 많지만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 낸다면 배척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는 지금의 지식경제 사회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윤 연구위원은 “인터넷 이전과 이후 시대에는 극명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 사용이 보편적으로 자리잡기 전까지만 해도 자본가와 노동자는 생산에서 나온 잉여가치를 나눠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지식경제사회에서는 창조적 소수가 가치를 만들고 여기에서 나오는 이익은 가치 생산에 기여하지 못한 이들에게 분배되지 않는 문제를 안고 있다는 해석이다. 경제 성장과 분배의 에코 시스템이 어떻게 뿌리를 내리는가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예를 들어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빌 게이츠는 컴퓨터용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엄청난 부를 쌓았지만 그가 쌓은 부에 비례하는 만큼의 고용창출을 이루는 데는 한계가 있다. 세계적 부호인 워렌 버핏 또한 빌 게이트와 같은 경우다. 윤 연구원은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이 재단을 만들어 기부를 하는 것은 부의 편중이 돈과 명예를 교환하게끔 만든 상황”이라며 “이러한 구조는 잡 찬스(job chance, 취업 기회)를 사라지게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현상에 흥미를 느낀 윤 연구원은 경제학의 관점에서 이와 같은 문제를 어떻게 정당화 할 것인지에 대한 ‘인터노믹스’ 관련 책을 올해 말 완성 목표로 써볼 계획이다. 또 올 연말 벨 연구소 특임연구원 활동이 끝나면 이스라엘 히브리대학에서 과학기술을 장려하는 이스라엘 법을 연구해볼 계획도 가지고 있다. 히브리 대학은 서울대학교보다 작은 규모지만 지적재산권으로 연간 벌어들이는 돈만 1조 2천억 원에 달한다. 이스라엘 연구에 정력을 쏟아 붓고 있는 윤 연구원은 “후츠파의 긍정적인 측면을 알게 되면서 어디든, 무슨 일이든지 간에 부딪칠 수 있는 자신감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9월 초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중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가던 중 한국을 깜짝 방문했다. 네타냐후 총리를 만나보고 싶어 하는 윤 연구원의 후츠파 정신에 총리도 후츠파로 응했다. 윤 연구원은 “이스라엘에서 후츠파는 ‘선의의 끈’ 구실을 하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무한한 신뢰를 주게 된다”며 “올해 말 히브리대학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은 것도 바로 이 후츠파 덕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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