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경영진 간에 벌어진 진흙탕 싸움에서 일단 먼저 웃었다. 신한금융지주 이사회는 지난 14일 열린 이사회에서 신상훈 사장이 던진 반대표와 이날 화상으로 참석한 재일교포 사외이사 히라카와 요지의 기권표를 제외한 전원이 만장일치로 신 사장에게 직무정지 처분을 내리는 데 찬성했다. 신 사장이 이사회에서 직무정지 처분을 받으면서 라 회장이 1회전의 승자가 되는 모습이다. 하지만, 검찰조사가 이제 막 시작됐기 때문에 최후의 승자가 누가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전쟁의 서막…‘은행이 지주사 사장을 고발’ 신한금융지주 사태가 본격적으로 외부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8월 말 금융감독원이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에 대한 자료를 신한금융지주 측에 요구하면서부터이다. 그러나 금감원이 라 회장에게 자료제출을 요구한 지 열흘도 채 안 지난 이달 2일, 신한은행이 신상훈 신한금융지주 사장을 ‘배임 및 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면서 사건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당시 신한은행 측은 신 전 행장의 친인척 관련 여신에 대한 민원이 접수돼 조사한 결과, 950억 원에 이르는 대출 취급과정에서 배임 혐의가 있었고, 채무자에 대해서는 횡령 혐의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신한은행은 또한 이희건 명예회장에 대한 자문료와 관련된 횡령 혐의도 문제 삼았다. 특히 이 회장의 자문료에 대해 신한은행은 2001년과 2004년에만 정상적으로 고문료가 입금됐을 뿐 다른 해에는 이 명예회장이 모르는 별도의 계좌로 입금된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은행은 2005년에 이 계좌에 돈이 입금된 지 한 달 만에 2000만 원 이하 현금이 여러 차례 인출됐고, 2007년 이후로는 수표로 인출된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에는 통장을 해지하면서 직원 명의로 분할해 예치했다가 인출과 해지를 반복한 기록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신 사장 측은 〃여신관련 위원들이 대출을 결정하며 행장은 결제선 상에 없다〃며 〃불법 대출이 어떻게 가능하겠나〃고 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 사장은 〃대출자가 친인척도 아니며, 아는 사람이라고 해서 압력을 넣었다고 주장하는데 어느 정도의 압력인지를 봐야 한다〃고 말한 뒤 〃(대출받은) 회사가 연체 때문에 워크아웃 중이지만, 부실 때문에 은행에 끼친 손실은 없을 것〃이라며 말했다. 그는 또한 〃대출이 잘못되면 다 책임을 져야 하느냐〃며 강하게 반발했었다. 하지만, 신한금융지주 이사회는 이와 관련해 빠른 행보를 보였다. 재일교포 사외이사인 정행남 재일 한인상공회의소 고문이 지난 7일 라응찬 회장을 전격 방문해 이번 사태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이어 이틀 뒤인 9일에는 이번 사태의 이해 당사자인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과 신상훈 사장, 이백순 신한은행장이 일본 나고야를 방문해 재일교포 이사들을 만나 설명회를 열었다. 한편, 이사회를 앞두고 이 행장이 “신 사장이 자진사퇴를 하면 고소를 취하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신 사장도 그동안의 ‘3인 공동퇴진’을 주장하던 입장에서 “라 회장은 자리를 지키고 이 행장과 내가 자진사퇴를 해야 한다”고 주장해 변화의 기류가 감지되기도 했으나, 결국 예정대로 이사회가 열릴 때까지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14일 오후 2시 태평로 사옥에서 개최된 신한금융지주 이사회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 진행됐다. 이날 이사회는 라 회장과 신 사장 측 사이의 거듭되는 공방으로 진통을 겪었다. 전성빈 이사회 의장의 개회사로 시작된 이사회에서 라 회장과 신 사장, 이백순 행장의 모두 발언에 이어 원우종 신한은행 감사와 컨설팅회사 담당자 등 라 회장 측 참고인이 신 사장의 배임과 횡령 의혹에 대해 1시간가량 설명했다. 신 사장 측에서는 신 사장과 함께 배임 혐의로 고소된 이정원 신한데이타시스템 사장과 전 여신관리부장인 김 모 본부장 등이 1시간여 동안 무혐의를 호소했다. 이희건 명예회장의 자문료 위해 개설된 계좌에서 15억 넘는 돈이 흐지부지 빠져나가 돈의 정확한 사용처 등에 검찰 조사 시작돼 이희건 명예회장의 고문료 횡령 의혹에 대한 설명을 위해 전-현직 신한은행장 비서실장과 양측 변호사들도 배석했다. 라 회장 측은 새 여신관리시스템을 통해 발견한 증거와 공소장에 명시하지 않은 여러 건의 부실 대출 사례 등을 제시하고 신 사장의 불법 행위가 명백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이정원 사장은 본사 건물 밖에서 기자들과 만나 〃여신 담당 대리에서 부행장까지 20여 년간 여신심사를 담당한 경력이 있어 소신껏 결정한 것〃이라며 〃당시 행장인 신 사장이 여신 의사 결정에 참여하거나 서명한 것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횡령 의혹과 관련해 신 사장 측은 설명 자료에서 〃고소권자인 이 명예회장의 동의나 협의 없이 자의적으로 이뤄진 부당한 고소이며, 이 명예회장이 아들을 통해 고소 취하를 요청했으나 묵살됐다〃고 주장했다. 신 사장 측은 또 〃명예회장 동의 아래 은행업무 관련 비용 등으로 사용했으며 개인적으로 착복했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하고, 라 회장을 통해 자금을 이 명예회장에게 건네줬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라 회장 측은 이 명예회장의 자문료를 공금으로 사용했다고 밝힌 신 사장 측의 답변이 횡령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라며, 여기에 라 회장을 끌어들이는 것은 근거 없는 물귀신 작전일 뿐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이사회는 5시간이 넘는 긴 회의 끝에 신상훈 사장에게 ‘직무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리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전성빈 신한금융이사회 의장은 “현재 상태로서는 시장의 걱정과 불확실성이 심해 신 사장이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며 “이사들이 의견을 모아 추락한 신한의 위상과 브랜드 네임을 회복하고 과거보다는 미래를 위한 결정을 내리는 차원에서 신 사장의 직무정지를 결정했다”고 언급했다. 이사회의 결론에 대해 신 사장은 이사회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서운한 점이 있지만 이사들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혐의를 빨리 벗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백순 회장은 16일 행내 방송을 통해 〃도덕적 부족함이 발견된 이상 선배이고 직위가 높다고 해서 넘겨버릴 수 없었는데 이사들이 고소 사유를 이해하고 올바른 결정을 내려줬다〃며 〃누가 이기고 지는 게 아니며 법적 판단은 검찰에 맡기고 조직의 빠른 안정이 최우선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신한금융지주는 17일 경영정상화를 위한 실무작업반을 발족하고, 배임 및 횡령 혐의로 고소된 신 사장의 직무정지와 관련한 조직 내 갈등을 봉합하고 직원들의 사기를 높이는 방안을 마련하게 된다. 일단 이사회는 신 사장에게 ‘직무정지’ 처벌을 내렸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아직 검찰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신한사태 3인방 중 누구에게 불똥이 튈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동안 검찰은 신한금융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내부의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사태를 관망하며 기초 조사에 치중하는 모양새를 보였지만, 이사회가 공을 검찰로 넘긴 만큼 이제 실체 규명을 위한 수사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서울중앙지검은 2일 접수된 신 사장 등 7명에 대한 ‘횡령-배임' 고소 사건과 5개 시민단체가 낸 라응찬 신한금융 회장에 대한 ’금융실명제법 위반' 고발 사건을 모두 금융조세조사3부(이중희 부장검사)에 맡겨 동시 수사 중이다. 검찰 수사 시작되면서 2라운드 곧 시작. 라응찬 회장의 금융실명제 위반 혐의 등 ‘망신 신한’ 이미지 벗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주목 게다가 현재 검찰과는 별도로 금감원도 라 회장의 실명제법 위반 혐의를 조사하고 있어서 검찰은 금감원의 조사 결과도 참고하겠다는 방침이다. 일단 검찰은 지난 16일 횡령 논란에 휩싸인 이희건 명예회장의 자문료가 빠져나간 흐름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검찰은 신 사장이 이 명예회장에게 지급할 경영자문료 중 15억 6600만 원을 횡령했다는 신한은행의 고소에 따라 경영자문료 관리 계좌들의 출금 내역을 은행으로부터 제출받았다. 검찰은 2005∼2009년 이 명예회장 명의로 계좌를 개설했다가 자문료를 인출한 뒤 계좌를 폐쇄하는 과정이 매년 반복되는 등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계좌가 운용된 정황을 포착하고, 자문료 계좌의 관리업무를 담당했던 은행 관계자들을 불러 계좌 운용방식과 자문료의 실제 사용처를 확인 중이다. 또한, 라 회장의 ‘차명계좌 의혹'과 관련한 금융실명제법 위반 혐의 사건에 대해서는 조만간 고발인을 불러 고발취지를 들어보고 수사 범위를 결정키로 했다. 연이은 의혹 제기와 이로 인한 지주사 사장의 직무정지 처분 등 신한금융지주는 최근 한 달도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자존심에 씻기 어려운 상처를 입었다. 이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경영진 간의 ‘진실게임’을 마무리 짓고, 모든 의혹을 깨끗이 털어내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금융계 인사들은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