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의 그늘이 점점 옅어지면서 국내 실물경기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부동산 시장은 여전히 ‘빙하기’ 상태에 놓여있다. 정부는 DTI(총부채상환비율: 한 사람의 수입 중 부채를 갚는 데 쓰는 비율) 규제 완화, 생애최초 주택구입자금 대출, 저소득층 전세자금 대출 한도 확대 등을 골자로 하는 ‘8.29 실수요 주택거래 정상화 방안’을 내놨다. 9월 서울 아파트값은 8월 27일 대비 0.1% 내렸고 같은 기간 신도시의 아파트는 0.16%, 신도시는 0.12% 각각 하락했다. 7월 한 달간 0.27% 떨어졌던 서울 아파트값이 8월 한 달 새 0.26%내렸으나 대책 발표 이후 0.1%로 낙폭이 줄어든 것이다. 그 결과 반대로 전세는 강세가 이어지고 있다. 가을 이사철의 시작과 함께 집값 하락에 대한 우려로 실수요자들을 중심으로 매매보다 전세를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서울 아파트 전세 값은 대책 발표 뒤 0.28% 올랐다. 신도시는 0.14%, 수도권은 0.49%, 전국적으로 0.33% 상승하며 전세난이 가중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달 29일 ‘부동산 시장, 대세 하락 가능성 점검’이라는 보고서를 내놨다. ‘8.29 대책’이 나온 지 한 달 만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정부가 내놓은 8.29 대책이 부동산 가격하락, 거래 감소 등 시장 위축을 해소하기에는 부족하다”며 “한시적이며 보완적 성격이 강하다”고 평가했다. 실수요자 중심의 거래 정상화에 목표를 두고 있으나 ‘대출규제 완화, 세제 및 자금 지원’ 등이 제한적 범위 내에서 내놓은 대책에 불과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부동산에 대한 기대심리 뚝 떨어지면 부동산 값 폭락하지만, 3가지 요인 때문에 아직 그런 현상은 나타나지 않아 연구소 측은 “거래량 급감에 따른 경제적 비용을 최소 15조 7천억 원에 달할 것으로 파악된다”며 “부동산 시장이 장기 침체될 경우 자산 가격이 하락하고 금융부실이 발생해 소비가 급랭하여 이는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으로 부동산 시장의 대세 하락 가능성을 가늠하기 위해서는 가격조정, 불안심리, 주택담보대출 등 다각적인 요인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먼저 글로벌 금융위기 때 한국 부동산 가격의 조정 폭이 크지 않았기 때문에 추가 하락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상황과 관련해 삼성경제연구소 측은 “가격조정부터 살펴보면 추가적인 가격조정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미국과 영국은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2008년 3분기 대비 2009년 2분기 하락폭이 미국 -3.8%, 영국-9.5%를 기록한 데 비해 한국은 2008년 3분기 대비 3009년 2분기 1.7% 하락한 뒤 빠르게 회복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주택 가격 변동이 상대적으로 작을 수 있었던 까닭은 주택담보대출 LTV(담보인정비율: 집값 중 대출 가능 비율)를 대출만기 및 지역에 따라 40~60%로 제한해 주택구입 시 자기부담 비율이 상승했기 때문이라고 연구소 측은 분석했다. 미국 74.9%, 영국 79.8%의 LTV와 비교하면 한국은 20~30%p 이상 낮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현 대출규제가 주택시장 참가자를 효과적으로 선별하는 기능을 수행해 향후 주택가격 안정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 이유로 현행 LTV와 DTI 등의 대출규제가 부동산 구매능력과 대출상환능력을 충분히 갖춘 사람을 선별하는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을 들었다. 2010년 8월 현재 한국의 주택담보 대출 연체율은 0.64%로 미국 2009년 4분기 10.2%를 기록한 것과 비교해 낮은 수준이다. 또한 최근 ‘부동산 가격의 추가 하락 기대 확산’과 ‘침체 장기화 가능성’이 맞서고 있는 것과 관련해 “자가보유비율이 낮아 잠재적 수요기반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격하락에 대한 기대심리가 부동산 시장 전반의 위축을 불러오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국은 선진국에 비해 주택 자가보유비율이 55.6%에 불과해 미국 66.9%, 영국 73.5%, EU국가 평균 72%보다 낮은 수준이다. 최근 기대심리가 다소 악화되고 있으나 외환위기 당시는 물론 이전 가격하락기에 비해서도 기대심리 하락폭이 크지 않은 실정이라고 전망했다. 연구소는 “외환위기 당시에는 부동산 시장에 대한 기대심리가 큰 폭으로 하락한 뒤 가격이 급락했다”며 “현재는 대량 실직에 따른 소득감소, 고금리에 따른 대출금 상환부담, 유동성 확보를 위한 부동산 매도 등의 형태가 나타나지 않아 기대심리 하락폭이 상대적으로 작다”고 분석했다. 주택담보대출 부실 위험은 높지 않더라도 ‘잠재적 리스크’는 존재한다고 보고 있다. 주택담보대출이 꾸준히 늘어 가계의 채무상환부담이 커지고 이는 주택처분 및 주택가격의 추가적 하락과 금융 부실 발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부동산 거래량은 줄어들고 있으나 예금은행의 가계 주택담보대출은 주택가격 급등기인 2005년~2006년도와 유사한 속도로 확대되고 있는 양상을 눈 여겨 봐야 한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가계 주택담보대출은 2009년 중 24조 5400억 원이 늘어났고, 2010년 1~7월에도 11조 1842억 원이 늘어났다. 2005년 21조, 2006년 26조 8796억 원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가계대출 중 주택담보대출 비중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향후 가계 채무 상황 부담 증가가 주택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특히 2010년 7월 가계대출 중 주택담보대출 비중은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8월의 61%보다 4.5%p 상승한 65.5%를 기록했다. 가계가 주택담보대출 상환부담 증가를 이기지 못하고 주택 처분에 나설 경우 미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과 같은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부동산 경기가 급락하거나 장기부진에 빠질 우려는 작다” 하지만 연구소 측은 주택담보대출의 LAV가 낮아 가계 채무상황부담도 적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부실화 위험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2009년 주택담보대출의 평균 LAV는 34.5%로 전년보다 1.5%p 낮아졌고, LAV 50% 이상인 대출 비중은 16.6%로 전년보다 2.2%p 하락했다. ‘8.29 부동산 대책’에서 DTI규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했으나 LTV 등 가계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건전성 규제는 지속되고 있음을 그 근거로 들었다. 연구소는 “대출규제의 효과, 가구 수 증가와 낮은 자가보유율 등 잠재 수요의 존재로 향후 부동산 경기가 급락하거나 장기 부진에 빠질 우려는 작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연구소 측은 “부동산 시장에서 지속적인 거래 부진은 ‘가계소비의 위축, 주거이동성 제약, 지방세 감소, 주택공급 감소’ 등으로 이어져 시장기능의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물 경기 부진을 면하기 위해서는 “양도세 중과를 폐지하고 주택시장의 거래 활성화를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취등록세가 지방세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0%에 달하기 때문에 거래 위축은 지방경제 활성화에도 걸림돌이 된다는 설명이다. 또한 “양도소득세는 부동산 관련 세금 중 세율이 높은 편에 속해 주택거래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주택시장의 거래 활성화를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매입 임대사업자의 대상과 기준을 낮춰 재고 주택시장에서 거래를 활성화 시킬 것을 주문했다. 이렇게 하면 저소득층의 주거안정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장기적으로는 양도세제의 시장왜곡 현상을 해소하려면 복잡한 세제를 단순화하고 일반소득과 함께 종합과세 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LTV, DTI 등의 대출규제는 유지하되 비 대출규제는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세제 감면, 분양가 규제, 재건축 규제’ 등을 풀어 거래 정상화를 도모하자는 것이다. 아울러 “부동산 리츠, 부동산 펀드 등을 확대해 가계자산의 부동산 편중을 완화하고 부동산 시장에 대한 과도한 관심을 점진적으로 해소하자”는 방안도 내놓았다. 부동산에 편중된 가계자산구조는 심리적 불안감을 확대해 부동산 시장의 과민반응을 유발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개선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연구소 측은 “부동산 시장의 투명성이 높아야 정부 정책의 실효성이 시장 안정을 가져온다”면서 “8.29 대책의 한시적 대출규제 완화는 예정대로 종료하고 거래 활성화에 필요한 규제 완화를 과감하게 시도해야 한다”고 말했다.